액션영화마니아에서 이젠 액션영화의 장인이 된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2’로 돌아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주먹이 운다’(04), ‘부당거래’(10), ‘베를린’(12), ‘베테랑’(15), ‘모가디슈’(21), ‘밀수’(23) 등 그의 작품을 숨 가쁘게 따라온 영화팬이라면 서울경찰철 강력수사대 서도철 형사의 스크린 귀환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듯. 류승완 감독을 만나 서도철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보았다. 마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라도 듣는 것처럼 감독의 달변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Q. 개봉을 하루 앞두고 사전예매만 50만을 넘어섰다. 지금 심정은?
▶류승완 감독: “보통 언론/배급시사는 개봉 2주 정도 앞두고 열리는데 이번 작품은 1주일 앞두고 시사회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정신이 없다. 개봉되고 나서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Q. 흥행에 대한 부담감인가?
▶류승완 감독: “영화란 것이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것이다 보니 손익분기를 넘어야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동시에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줘야 한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이 되는지 궁금하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다른 이유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영화가 자기생명력을 가지기도 하더라. 이제 이 영화가 어떻게 살아갈지 지켜보는 입장이다. 이젠 내가 더 이상 손을 못보고, 작품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한다.”
Q.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었다. 몇 달 사이 추가로 작업한 것이 있는지. 편집과정에서 달라진 것은?
▶류승완 감독: “엔딩에 나오는 쿠키 영상은 칸에서는 뺐다. 칸에서는 전작이 소개되지 않았기에, 한국관객이 아니라면 눈치 채지 못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뺀 것이다. 토론토에서는 이 버전으로 상영되었다. 칸 이후 다양한 포맷작업을 추가했다. 아이맥스, 4DX같은 것. <밀수>와 <모가디슈>때 돌비시네마 애트모스 작업을 했었는데 이번엔 돌비 비전을 처음 해 보았다. 스페셜관마다 특성이 있더라. 아이맥스의 장점이 스크린의 압도감이나, 사운드의 파워가 좋다면 돌비에서는 섬세한 사운드가 느껴진다. 초반 주부도박단 장면에서 백그라운드의 보조출연자의 대사까지 다 들린다. ‘이 오빠도 잘 생겼어~’하는 대사가 세세하게 들린다. 음악이 공연장에서처럼 분리되어 들리더라. 사운드작업은 국내 최고의 사운드디자인을 하는 모노콤에서 공을 들였다. 영화란 게 본질적으로 ‘본다’는 것이지만 이젠 ‘보고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듣는 것의 풍성함을 이번에 만끽할 수 있다. 아, 물론 일반관도 기본적으로 믹싱이 잘 되었다. 극장마다 조금씩 다르니 취향에 따라 고르시면 될 것이다. 이번에 4DX에서는 빗속 격투 장면의 효과에 만족도가 높다고 하더라.”
Q. 그 장면, 빗속 격투장면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마쥬 같더라.
▶류승완 감독: “그 영화 당연히 너무 좋아한다. 제 안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영화이다. 시작부터 마지막 까지 장면 하나하나를 다 복기할 수 있다. 액션 장면을 찍으면서 자연의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좋아하고 만들어 보고 싶었다. 비도 뿌리고, 눈도 내리는 장면을 많이 찍고 싶지만 다 예산과 결부되는 것이다. 데뷔작에서 엔딩 신에 눈이 내린다. 그날 눈이 내려서 얻어 걸린 것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그렇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에서도 자연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요짐보>나 <7인의 사무라이>보면 감독이 바람까지 통제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그런 것을 해 보고 싶었다. 처절한 결투 장면. 겨울비를 잘못 맞으면 살을 파고 들어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함, 추위를 뚫고 나오는 열기. 이번에 비의 요소를 끌어오면서 그런 것을 구현해 보고 싶었다. 촬영 여건이 좋지는 않다. 영등포 시장의 건물에서 1주일 이상 작업했다. 강수기를 세팅할만한 공간이 아니어서, 장비를 따로 개발해 옥상에 올려야 했다. 배우들도 너무 잘 해주었고, 제작부와 미술부가 엄청 고생한 게 맞다. 요즘 건물은 옥상 배수가 잘 되어 기대하는 찰랑거림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배수구를 막고, 낮부터 물을 뿌렸다. 비속에서의 액션 디자인, 찰방거리는 효과는 전적으로 무술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방수텐트를 덮고 슬라이딩하는 액션을 디자인한 것이다. 저도 처음 보는 액션 스타일이어서 신났다. 민강훈을 연기한 안보현을 체포하기 위해 5명의 형사가 각각 움직인다. 히어로 영화 볼 때마다 절대강자를 둘러싸고 맞서는 동선이 있다. 그 장면 찍는 날 엄청 추웠다. 방수슈트까지 입어서 몸의 움직임 둔해진다. 배우들이 힘들었다. 큰형님인 황정민 배우는 투덜대면서도 파이팅 있게 잘 끝났다.”
Q.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모인 슬럼가의 모습은?
▶류승완 감독: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그 정도까지 슬럼화된 곳은 없다. 영화적인 장치이다. <베테랑2>는 <모가디슈>를 모로코에서 찍고 돌아와서 스토리 각본을 진행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마약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았다. 코로나 거치면서 마약 문제가 심각해진 것 같다.”
Q. 이 영화에는 사이버렉카나 사적 제재의 문제도 다룬다. 감독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인가.
▶류승완 감독: “<베테랑> 개봉 때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터졌었다. 영화 만들 때는 사회적 이유와 결부될 것이란 생각은 못했었다. 사회현상에 대한 저의 태도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부당거래>(10)에서는 언론의 위험성을 이야기했었다. 그 전에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내 영화에 많이 담았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정의와 신념의 문제를 다루면서 일반적인 대결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서도철 개인의 싸움일 수도 있다. 빌런을 상정하여 한 대 쥐어박고 처벌하는 게 액션영화에서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것 보다는 서도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무지성으로 잡아넣는 쾌감이 아니라, 계속해서 갈등을 겪고, 선택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빌런의 이야기는 서도철이 선택을 어렵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빌런의 삶, 영향력, 바라보는 시선, 주위의 변화가 중요했다. 우리는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사안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을 했던가. 마녀사냥 당해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슈가 생기면 또 다른 이슈로 넘어가고. 그런 작은 역사의 반복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Q. 복잡한 심사의 서도철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류승완 감독: 감독: “서도철은 말을 험하게 하고 욕도 하고, 나쁜 놈을 쥐어박지만 선을 지킨다. 그만큼 보수주의자, 원칙주의자이다. 형사로서, 사법집행자로서 그 원칙을 지키는 서도철의 모습은 1편에서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잠재된 폭력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사람이다. 서도철은 촉과 감으로 수사하는 사람인데 위험할 수 있다. ‘직업인’ 서도철이 직업윤리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아마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마지막에 아들에게 사과를 못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반성하고 어른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역설적으로 해치 같은 범죄자를 추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치를 보여줄 때의 거울 반사나, 서도철의 그림자, 장면을 연결할 때 서도철의 얼굴과 박선호의 옆얼굴을 디졸브 시키는 방식이 다 그런 목적이다.”
Q. 류승완 영화에서는 액션을 더 많이 기대할지도 모른다.
▶류승완 감독: “1편 촬영 때 호흡이 너무 좋았다. 그런 현장에서는 속편을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편 크랭크업하면서 서도철의 의상을 보관시켰었다.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준비한 것이다. 이미 몇 가지 스토리 라인이 있다. 전편의 경우 처음에는 배급사나 투자사들에게 일등(1순위)영화는 아니었다. 우리도 400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3배 넘는 흥행스코어를 올렸다. 우리는 영화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그 영화가 ‘짤’과 ‘밈’으로 돌고 뉴스나 시사풍자에서도 사용되니 부담이 되더라. 그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출발 자체가 사회적 이슈를 대하는 저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너무 화가 나니 영화로라도 풀고 싶었다. 제 안의 분노는 가해자에 대해 살의까지 느끼고, 저주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충격을 준 몇몇 사례에서는 뒤에 가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 경우 진짜 가해자로 밝혀진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분노)의 온도가 낮더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판단한 것인데 그것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호벽을 치더라. 사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전해준 것을 보고 판단했던 것이다. 내 안의 분노가 정당한가? 왜 분노했을까. 예전엔 신념이 확고한 사람에 대한 존경이 있었는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고한 신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 신념과 정의에 대한 질문이 없는 무지성의 경우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했다. 9년 전에 극장에서 <베테랑>을 본 사람들은 그동안 어느 정도 성장했을 것이고, 그 때 못 본 새로운 세대에도 유의미한 질문이 될 것이다. 대중장르의 액션영화로 만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서도철을 뜨겁게 응원하고, 장르영화의 본질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관객과 밸런스 게임을 공유하고 싶었다.”
Q. 서도철과 박선우의 밸런스 게임은?
▶류승완 감독: “장르영화 문법에서 중요한 빌런의 서사를 버렸다. 그런 건 쉬운 설명이 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서도철의 내면의 갈등이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려는 본능이 있다. 서도철의 성장과정이 중요하고, 그가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서스펜스와 딜레마를 딛고 일어서서 행동할 때의 박진감이 중요하다. 전작에서는 악역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높았다. 빌런의 서사를 만들고, 그가 왜 그런 인간이 되는지는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마지막에 빼버렸다. 너무 빌런에 포커싱 되니까. 이 영화는 서도철에게 포커싱되어야 하는 영화이다. 빌런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류의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툭 까놓고 시작한다. 1편과 조금 다른 톤앤매너로 관객들에게 최대의 경험을 주려고 세팅했다.”
Q. 서도철은 일종의 ‘서민의 영웅’인가. 박선우가 아니라 그가 흑화될 가능성은 없을까.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류승완 감독: “물론 서도철이 서민이기에 같은 서민으로서 응원할 수 있다. 계급적 구분이 될 수 있다. 그것보다는 서도철의 사정을 잘 봐야할 것이다. 서도철에게는 자기가 지켜야할 일상이 있다. 해치에게는 자기가 지켜야할 일상이 없다. 뭔가를 지켜야할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이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서도철이 집으로 돌아오고, 반성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서도철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세계평화가 아니다. 피곤한 자기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단지 돈을 벌어야하고, 애들 학교에 보내야하는 치열한 자기의 일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런 삶이 고귀하다. 원칙을 지키고,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좋은 것이다. 고리타분하고 꼰대 같은 소리겠지만 그런 게 갈수록 중요하다. 도덕과 윤리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 사람, 그런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다.”
Q. 속편의 가능성은?
▶류승완 감독: “일단 이 영화가 잘 되어야지. 손익분기점을 넘겨야지 가능하다. 서도철 관련하여서는 트리트먼트가 나온 게 있고, 해치와 관련해서도 그의 탄생을 볼 수 있는 시나리오도 있긴 하다.”
Q. 서도철의 아들은 학폭 피해자인가?
▶류승완 감독: “1편에 대사에도 나오고, 서도철의 기록에도 나오는데 반성의 의미가 있다. 우진이는 중학교에선 가해자였을 것이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자기보다 더 센 아이를 만나 피해자가 된다. 그럴 경우 어디 가서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냥 폭력을 그리려고 했다면 마지막에 선우를 그냥 죽게 둘 것이다. CPR(심폐소생술)을 할 필요도 없이. 저의 의도는 재미를 위한 폭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상처투성이인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이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하는 대화의 본질이 그렇다.”
참, 뉴스화면 관련해서는 “여러 방송사에 요청했는데 KBS가 제일 먼저 응해주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도 하게 해주었다.”란다.
황정민(서도철), 정해인(박선우), 오달수(오팀장), 오대환(왕형사), 장윤주(봉형사), 김시후(윤형사)와 진경(이주연), 신승환(정의부장), 정만식(전석우), 권해효(강수대 총경), 변홍준(서우진), 안보현(민강훈) 허준호(경찰청장)가 출연하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13일 개봉했다. <베테랑>1편은 1341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었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