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야심한 밤, KBS 1TV에서는 [한국영화 클래식]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달 17일 <소나기>를 시작으로 <장마>, <월하의 공동묘지>, <어머니의 영광>이 차례로 방송되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한국영화의 ‘클래식’은 하한선(?)은 어디까지일까? 물론, 조승우-손예진의 <클래식>은 아니다. 임권택? 유현목? 김기영? 신상옥? 매주 어떤 영화가 편성될지 기다려진다. [한국영화 클래식]은 한국영상자료원에 필름으로 남아있는 오래된 한국영화를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정성들여 디지털로 깨끗하게 복원한 버전으로 만난다. 지난 주 방송된 김기 감독의 <어머니의 영광>은 1973년에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이다. 주인공은 나훈아이다. ‘테스’의 가황(歌皇) ‘나훈아’말이다! 영화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감동의 스포츠 멜로드라마’이다.
영화에서는 1973년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어디서, 어떻게 훈련하였고, 그들의 정신자세는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이랑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73년 우리나라의 1인당GDP가 400달러에 불과했다. 올해 추정치는 4만 달러라고 하니 격세지감 대한민국의 그 시절, 그 스포츠, 그 영화인 셈이다.
시장통에서 생선 가판을 하는 ‘미망인’ 오 여사(황정순)의 외아들 강태호(나훈아)는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오늘도 태릉선수촌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훈련 중이다. 축구팀 코치(장동휘)는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며 선수들을 주마가편(走馬加鞭) 독려한다. 훈련이 끝나면 집으로 선수들을 불러 배불리 밥을 먹이며 가족적인 분위기. 태호와 코치의 딸 진숙(나오미)과는 좋은 감정도 생긴다. 그런데 이란과의 경기에서 태호가 컨디션 난조를 보인다. 경기에서 진 것이 자신의 결정적 실수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태호가 병원에서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된다. 결핵성 신장염이란다.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라 생각한 태호는 방황한다. 어머니에게도, 코치에게도, 진숙에게도 사실을 숨기고 사라진다. 다들 그가 여자에 빠져서 저렇게 되었다고 오해한다. 공사판에서 힘겹게 마지막 삶을 불사르다가 결국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경기장에서 하늘을 원망하다 쓰러진다. 그제야 사람들은 태호의 병세를 알게 되고, 엄마는 그에게 콩팥을 제공한다.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태호는 이란과의 재대결에서 멋진 설욕전을 펼친다.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 태호는 우승의 월계관을 차지하고, 엄마와 부둥켜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올림픽이 다가오면 뉴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태릉선수촌(지금은 진천으로 옮김)의 그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황량하다. 훈련방식은 체계적이다거나, 과학적이다거나, 운동선수의 인권은 아직 자리 잡기 전의 모습이다. 오직 ‘피, 땀, 눈물’그리고 ‘애국심’으로 선수들을 채근한다. 중병에 걸렸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의료시스템은 없다. 다 죽어가는 선수의 뺨을 때리고, 윽박지를 뿐이다. (1인당 GDP 400달러 시대!) 훈련 끝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오직 승리로써 국민에게 성원을 보답해야한다“고 말하던 코치는 이란 전에서 지고 나서는 한바탕 한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가 겨우 이거야? 국민의 성원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거란 말이냐! 앞으로 어떤 면목으로 국민을 보겠느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란 말이야. 국민에게 만분의 일이라고 용서를 비는 뜻에서 토끼뜀!“ 어머니도 아픈 아들에게 계속 ”국민과 국가의 영광“을 읊조린다. 대한민국은 그런 1970년대를 거치며, 그런 트랙을 돌며, 그런 고난의 시간을 거치며 파리올림픽의 영광까지 왔는지 모른다. 그 시절의 운동선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가황 나훈아는 꽤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기러기남매>(71)와 <친구>(72)에서는 가요계의 전설적 라이벌인 남진과 동반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스타 캐스팅’은 충무로의 대표적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제목이) 기억되는 나훈아 출연영화는 윤소정, 장미희와 공연한 <삼일낮 삼일밤>(1983). 정윤희와 나온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82)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진숙 역을 맡은 배우 나오미는 1951년 전남 목포 출신으로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신성일에게 발탁되어 <연애교실> 데뷔한 뒤 74년 결혼할 때까지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흔히 오드리 햅번과 비교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참, TBC를 거쳐 KBS의 아나운서로 오랫동안 스포츠의 명캐스터 고(故) 서기원 아나운서(1937~2023)의 축구중계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어머니의 영광 ▶감독:김기 ▶원작/각본:고성의 ▶출연:나훈아(태호) 장동휘(장코치) 황정순(오여사) 나오미(진숙) ▶제작:남화흥업주식회사/서종호 ▶개봉:1973년 2월 24일 을지극장 ▶KBS1TV [한국영화클래식] 2024년 9월 7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