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한국영화클래식] 시간에는 1967년 극장에서 개봉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가 방송된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포스터나 영상자료원 유튜브 등을 통해 관람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은 호러물’로 인식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적 가족구도 속에서 본처와 첩의 관계, 재산을 차지하려는 음모와 독살과, 염산을 이용한 테러 등 꽤 다양한 방식으로 흥미로운 공포영화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고지순한 희생정신, 한(恨)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복수체제, 사필귀정의 주제의식까지 어디하나 놓칠 것 없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정수인 셈이다. [KBS 한국영화클래식]에서 방송되는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이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비교적 깨끗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는 56년 전 한국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산등성이 하나를 가득 채운 수많은 무덤과 비석이 보이는 공동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한밤에 청사초롱이 도깨비불처럼 허공을 날아다니고, 무덤 하나가 둘로 쩌~억 갈라지더니 관 하나가 솟아오른다. 그 관이 열리고, 안에서 여자가 벌떡 일어선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소복 입은 그 여자는 ‘택시’를 탄다. 그 사이에 얼굴 한 쪽이 흉한(마치 염산 테러라도 당한 듯한) 남자가 “나는 40녀 전에 변사였었다.”면서 변사 톤으로 영화를 ‘내레이션’한다.
때는 일제 말기. 한수(박노식)와 춘식(황해)은 항일학생운동을 하다가 순사에게 잡혀간다. 춘식의 여동생이자 한수의 애인이었던 명선(강미애)은 이들의 옥바라지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기생이 된다. 감옥에 갇힌 한수와 춘식은 둘 다 옥고를 치를 필요가 없다며 춘식이 모든 것을 뒤집어 서기로 한다. 한수는 장안 제일의 갑부가 되어 명선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듯하다. 그러나 여러 모로 고생한 명선이 폐병을 얻게 되고, 병 간호를 위해 찬모(饌母) 난주(도금봉)가 집에 들어온다. 난주는 고약한 심보의 소유자이다. 의사 태호(허장강)와 짜고 병약한 명선에게 약을 먹인다. 그리고 사악한 음모로 자결하게 만든다. 그러고도 모자라 한수를 유혹하여 안방마님이 되고, 한수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어린 아기마저 독살시키려한다. 세상 원통한 명선은 무덤 속에서 깨어나서, 무덤을 가르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한 맺힌 명선의 복수가 시작된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7년의 한국 공포영화, 대중영화가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무덤이 갈라지고, 관이 튀어나오는 신박한 인트로를 시작으로, 무덤에서 나온 여주인공이 ‘걷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서 조금 떠올라 공중부양 이동하는 장면은 공포심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권철휘 감독의 영화적 창의력은 곳곳에서 돋보인다. 청사초롱의 이용, 불길한 징조로서의 고양이 등장, 독약과 염산의 적절한 활용 등은 정교한 공포영화 장치이다. 그리고 가장 특이했던 것은 명선이 자살 한 뒤, 관을 앞에 두고 산발한 여인네들이 ‘곡’을 하는 장면은 문화사적으로도 남을 만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한 시대 한국영화를 풍미했던 대배우들이다.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인물 도금봉은 미녀배우들로 가득한 한국영화에서 독보적인 악역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엄마로 등장하는 정애란 배우는 TV탤런트로도 많이 알려진 인물. MBC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마을회장 최불암의 엄마로 기억된다. 박노식 배우도 충무로의 액션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박준규이다. 황해 역시 왕년의 액션배우, 아들이 전영록이다.
권철휘 감독은 2007년 사망했다.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혀있다. 그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억될 만한 한국영화클래식 작품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부제:기생월향지묘) ▶감독/각본:권철휘 ▶출연: 강미애, 박노식, 도금봉, 정애란, 황해, 허장강 ▶제작:심준섭/제일영화주식회사 ▶개봉:1967년 8월 25일 ▶KBS1 한국영화클래식 8월 31일(토)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