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위한 식탁
오늘(30일) 밤 방송되는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 시청자를 찾는다. 식탁에는 누가 초대되었고, 식탁 위에는 어떤 (사연의) 메뉴가 준비되었을까. 김보람 감독은 우리 사회에 편견과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여성의 ‘생리’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담은 작품 <피의 연대기>(2018)>로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김보람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다시 한 번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거식증’(拒食症)과 ‘폭식’ 증세에 대해 다룬다. 딸은 왜 음식을 거부할까, 그리고 또 왜 그렇게 마구 먹어대며 자신의 몸을 학대할까. 김보람 감독은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엄마의 사연을 좇는다.
영화는 채영이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채영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 보라는 이야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이제부터 지난 날 채영에게 생긴 일들을 곱씹어보기 시작한다. 채영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겪어야했던,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과 극기의 순간을 그림과 글로 남긴다. 어느 순간 식사를 거부하는 섭식장애(거식증) 진단을 받고 입원한다. 그런데 퇴원한 뒤에는 이제 오히려 폭식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무슨 이유일까. 채영의 위태로운 몸 상태를 지켜보는 엄마 상옥의 마음은 쓰릴 뿐이다.
우선 엄마 상옥이 딸이 겪고 있는 거식증과 폭식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나 오해에 대해 잠깐 언급한다. “거식증이 그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다. 도덕적인 해석을 하니까. 어디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데 하는 식으로. 또, 몸매 신경 쓰느라, 다이어트 하다가 걸린 병 아니냐 하는 도덕적 비난도 있다.”고. 아마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채영의 경우를 보면서,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어쩌면 마음의 병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채영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엄마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경치 좋은 무주에 내려와서 자연인의 삶을 누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집안에는 크든 작든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목청을 높였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결혼하고, 채영을 낳고, 삶을 모색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는 없다. 아버지의 존재는 완벽히 부재한다) 상옥은 어린 채영은 이웃에 맡겨두고 무주의 한 대안학교 기숙사의 사감으로 하루 종일 바쁘다. 채영은 언제나 혼자였고, 밤늦게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며 마음의 병을 쌓아간 것이다. 텅 빈 방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기다림의 연속. 어린이의 외롭고, 절박한 고독감은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최미혜, 김단비, 이예린)으로 잘 표현된다.
그런데, 채영과 상옥의 대화를 통해 좀 더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 할머니의 존재. 엄마는 ‘그 엄마’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딸도 그런 엄마의 엄마, 즉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의 고구마와 함께 시작된 폭식의 기억도 떠올린다.
엄마는 어느 순간, 자신의 과거와 언젠가 놓쳐버린 순간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타로‘ 카드를 보는 엉뚱한 장면에서 관객들도 느끼게 된다.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 엄마와 딸이라면. 그들의 뒤에는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관점과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원히 한국을 떠날 듯이 호주로 갔던 채영이 돌아오고, 엄마와 딸은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다. 할머니를 위한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다. 전도 붙이고, 생선도 굽고, 나물도 장만하고. 할머니의 방식으로 만든 두부 요리도 식탁에 올린다. 엄마와 딸은 식탁에 앉아, 먹는다. 그리고,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엄마와 딸은 그렇게 먹고, 마시고, 과거를 씹으며, 삶을 이야기한다. 그게 투병기이든, 완치기이든, 그냥 밥상의 소소한 대화이든.
작품에 삽입된 엄마의 민주화투쟁의 기록은 1989년 3월 17일 방송된 MBC뉴스 ’의원회관점거 근로자구속영장‘이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감독:김보람 ▶출연: 박채영,박상옥 ▶애니메이션/모션그래픽: 최미혜, 김단비, 이예린 ▶개봉:2023년 10월 25일/91분/12세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