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욱 감독이 ‘킬리만자로’(2000)와 ‘무뢰한’(2015)에 이어 세 번째 작품 <리볼버>로 돌아왔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연출부와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조감독을 거쳐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를 쓴 그의 이력서를 보면, 확실히 뭔가 대단한 작품을 내놓을 것 같은 예감이 ‘미학적’으로 든다. 그는 딜레마에 빠진 경찰이나, 집단에서 배제된 악당, 쉽게 말하자면 어두운 영역에서조차 소외당한 인물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조직과 사회, 관계에서 소외된 인물은 애처롭게 자기의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자존심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 댄다. 이번 작품 또한 그렇다. 전도연은 누구로부터 내쫓기고, 어떻게 자신의 알량한 이름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것일까. 7일 개봉된 <리볼버>의 전직 여형사 하수영 이야기이다.
하수영(전도연)은 형사였다. 강력계 형사로 ‘물 좋은 강남’의 기업형 술집을 ‘나와바리’로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커리어를 유지했을 것이다. 분명 조직 내에서 이어오는 라인에서 적당히 눈감고, 위기를 관리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을 것이다. 그중에는 임석용(이정재)도 있다. 어느 날 감사의 표적이 되고, 조직의 안전을 위해 혼자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교도소로 간다. 분명 가기 전에 ‘충분한 돈과 괜찮은 아파트’를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만기출소 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술집마담(임지연) 뿐. 자신의 역할, 존재감이 제로가 된 하수영은 약속된 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한다. 손에는 ‘리볼버’와 ‘삼단봉’만이 쥐어져 있다. 쏘든지, 때리든지, 아니면 자기가 죽든지.
오승욱 감독의 전편들처럼 이번 작품 속 전도연은 비장미 넘치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리볼버>는 원래 하수영의 완전한 추락과 그 상황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일 것이다. 하수영의 추락과 재기의 현장에는 적과 아군이 즐비하다. 그리고, 강호가 늘 그러하듯이 적인 듯 아군인 듯, 마지막에 어디로 총구를 겨눌지 모르는 인물이 가득하다. <리볼버>는 그런 다양한 인간군상을 탁월하게 잡아낸다. 전도연은 임지연과 함께 적과 아군을 색출하는 역할을 한다. 김준한과 지창욱은 그 전쟁터에 화약을 끝없이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정만식과 김종수가 깨알 트리거가 된다.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며 전도연의 마지막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총과 ‘무뢰한’의 칼을 거치며 ‘리볼버’에서는 은빛 탄환의 우아한 비행을 기대했다면 오승욱 감독은 여지없이 관객을 배신한다. 리볼버는 맥거핀이고, 복수는 판타지일지 모른다. 영화는 비리 형사, 미친 악당, 잔머리 굴리는 술집마담이 뒤엉켜 자존심 싸움을 펼치지만 결국 고즈넉한 강원도 산사에서는 정중동의 결정만이 남을 테니.
▶리볼버 ▶감독:오승욱 ▶출연: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김준한 김종수 정만식 전혜진 이정재 정재영 ▶제작:사나이픽처스 ▶제공/배급: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2024년 8월 7일개봉/114분/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