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소리 소문도 없이 조용히 개봉되고 사라진 영화 중에 김록경 감독의 <잔칫날>이란 작품이 있다. 아버지의 기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한 남자의 사연을 통해 정말 힘들게 살고 있는, 살아가야하는 청춘을 만난다. 예사롭지 않은 그 데뷔작을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김록경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기대될 것이다. 이번엔 또 어떤 힘든 삶을 독립영화에 꾸역꾸역 우겨넣어 ‘영화가 삶이요, 삶이 영화임’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줄까.
영화 ‘진주의 진주’는 영화를 준비 중인 감독 진주(이지현)의 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진주가 찍으려는 영화는 당연히 저예산 독립영화일 것이다. 그 영화는 배경이 되는 카페가 중요하다. 아마도 자신의 꿈과 희망, 미래가 펼쳐질 곳이리라. 그런데 힘들게 섭외한 그 카페가 촬영을 며칠 앞두고 철거된다. 난감한 진주. 다행히 아는 선배의 소개로 진주로 내려간다. 그곳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는 주환(문선용)을 통해 적당한 촬영장소를 소개받을 참이다. 진주의 눈에 띈 곳은 길목에 위치한 고즈넉한 ‘삼각지 다방’이었다. 진주는 첫눈에 “바로 이 곳이야!”라며 좋아하지만 그곳도 곧 철거될 예정이란다. 알고 보니 이곳은 지나 50년 동안 이 지역 예술가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아지트였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카페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듯 철거의 운명에 놓인다. 진주 감독은 어쩌다보니 진주의 ‘토착’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철거 반대운동’에 끼어들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오래된 다방을 접어야하는 주인과, 50년 예술가의 안식처를 주장하는 사람들. 과연 그 중간에서 진주는 자기의 새 영화를 찍을 수는 있을까. 진주에 내려간 진주는, 진주를 품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원주의 ‘아카데미극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원주의 오래된 단관극장 아카데미는 ‘낡은 건물’이라서 철거해야한다는 측과 ‘오래된 기억’을 보존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대립했었다. 결국 시의 뜻대로 철거되었다. 도시화, 현대화되면서 철거되고, 재개발되고, 사라져가는 옛것들이 많다. 그 ‘오래된 추억’에 사로잡혀 마치 알박기 식으로 매달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 또 한 쪽에선 우아하게 오래된, 낡은 건축물에 새 가치를 입혀주는 ‘재생건축’을 말한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사례로 들면서. 아니면 유럽의 오래된 주택들의 보존 방식을 소개한다. 여기 진주에 그런 곳이 있다. 근사한 스타박스도 들어선 진주에 ‘쌍화차에 날계란을 풀어줄 것 같은’ 다방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곳이 힙하다고, 핫스팟이라고 소문이 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진주 감독이 찍으려는 작품은 그런 옛 추억을 소환하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기억이 있고, 창작의 기쁨을 처음 느꼈던 환희의 공간인 것이다. 그 공간은 시간과 함께 희미해져가고 결국엔 포클레인에 찍혀 무너져내려가는 것이다.
경남 ‘진주’에서 찍은 영화이기에 남강과 촉석루, 논개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지만 영화는 근사하게, 아름답게, 정묘하게 재단장된 역사 유적지 뒤에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의 보존가치에 대해 논한다. 낡은 집은 헐고 새 집을 지으려는 사람, 그 낡은 집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 그리고, 단지 그 낡은 집이 지금처럼 있었으면 하는 사람. 물론, 사라진 그 공간에는 근사한 스타박스라도 들어설지 모른다. 쌍화차 마시던 나이든 사람들 대신 인스타그램의 젊은이들이 프렌치바닐라라떼를 마시고 있을지 모른다. <진주의 진주>는 시간분쇄기에 빠진 공간을 이야기하는 애잔한 독립영화이다.
▶진주의 진주(Jinju’s Pearl) ▶감독/각본:김록경 ▶출연:이지현 문선용 임호준 이정은 김진모 길도영 오치훈 허웅▶애니메이션:류진호 ▶제작:겸 필름▶배급:씨네소파 ▶개봉:2024년 7월24일/12세이상관람가/8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