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섬) 위에는 구룡(九龍)반도가 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이 땅을 점령하면서 이곳은 애매한 곳이 되어버린다. 청(淸)은 이곳에 성채를 세우고 영국군을 감시했지만 곧 쫓겨나고 그 빈 공간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려와서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후, 청이 무너지고, 일본이 쳐들어오고, 중국이 공산화되고, 홍콩이 영국식민지가 되어버리고, 다시 영국이 물러가는 동안 이 곳은 그야말로 희한한 별천지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빈민가, 우범지대, 타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몇 편의 홍콩영화에서 이 기이한 공간을 보여주었다. 이곳은 결국 1994년에 중국에 의해 완전 철거된다. 바로 1980년대의 이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홍콩 정보서(鄭保瑞/정바오루이/Soi Cheang) 감독의 <구룡성채:무법지대>(원제:九龍城寨之圍城)이다. 물론 범죄 느와르이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의 부천을 찾은 정보서 감독을 만나 영화로 부활한 '구룡성채'에 대해 물어보았다.
Q. 정 감독은 마카오 출신으로 어릴 때 홍콩으로 건너왔다. 감독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구룡성채는 어떤 곳인가. 그동안 소개된 몇몇 홍콩영화를 통해 이 곳은 아주 위험한 동네로 인식되는데.
▶정보서 감독: “한국관객이랑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그곳은 어두운 곳이고, 무법천지이며, 더러운 곳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릴 때 그곳에 간 적이 없다. 이 영화 촬영할 때 스태프가 자기가 어릴 때 근처에 살았었는데도 한 번도 간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곳에 치과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곳에는 이른바 ‘야매’의사가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Q. 홍콩영화라면 황금시대를 지났다고들 말한다. 홍금보, 고천락, 임현제를 기억하는 영화팬으로서는 그들이 2선에 서고, 뉴페이스가 대거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해 아쉽기도 하다. 신구교체를 생각하신 것인지,
▶정보서 감독: “원래 원작을 보면 청년 위주의 스토리이다. 주인공이 청년이기에 캐스팅도 그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 전부터 홍콩에는 실력 있는 신인배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런데 없는 게 아니라 관객 앞에 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신인배우를 등용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백 프로 맡기기에는 불안하니까 경험 있는, 실력 있는 배우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고참배우들은 후반부에 가서 죽거나 다친다.”
Q. 배우들의 액션 연기는 어땠는가.
▶정보서 감독: “홍금보 배우는 워낙 유명한 분이시고. 이번 영화에서 악당 왕지우(王九)를 연기한 우윈룽(伍允龍)은 어릴 때부터 무술을 한 배우이다. 나머지 출연자와는 체력이나 액션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나머지 배우들은 연습을 많이 했다. 배우들이 열심히 했고, 또한 영화는 ‘마술’이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영화적 기술을 넣어 완성시킬 수 있었다. 우윈룽 배우는 이번에 작업하며 처음 알게 된 배우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세 차례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면이 보이더라. 밝고 귀여운 모습이 있었다. 출연계약 맺기 전에 가발도 씌워보고, 분장도 시켜보았다. 많은 배우가 그런 것을 안 하려고 하는데 우 배우는 흔쾌히 선글라스도 끼고 그랬다. ‘너랑 이미지가 달라. 관객들이 못 알아볼 수도 있어.’라고 했더니 ‘괜찮아요’고 그랬다.”
Q. 극중에서 연 띄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장면에서 감독이 원한 바가 있을 것 같은데.
▶정보서 감독: “옥상(배란다)에서 구톈러(古天樂)가 연을 날리며 린펑(林峯)과 나누는 대화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이다. 영국은 중국정부와 홍콩의 회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때였다. 당연히 구룡성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과 관련하여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당시 홍콩사람은 다 그랬다. ‘넌 영국사람이야’라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고, 중국에 귀속되고는 ‘넌 중국사람이야’하면 ‘그런가?’하며 헷갈렸다. 홍콩사람들에겐 귀속감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바람에 흔들리다 연처럼 떨어지는 신세 같았다. 어디에 정착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를 담았다.”
Q. 홍콩영화에서는 액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놀라운 액션신이 많이 나온다. 액션연출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술감독을 맡은 타니가키 켄지(谷垣健治)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정보서 감독: “켄지는 무술감독으로서의 영화작업을 홍콩에서 시작했다. 20년 전부터 홍콩영화를 좋아했고, 홍콩에 와서 무술지도를 했다. 그 사람 광동어를 나보다 더 잘한다. <살파랑>, <도화선> 등 견자단과 작품을 했고, 이후 많은 홍콩영화에서 훌륭한 결과물 내놓았다. 일본에서 자기만의 영화도 만들었고. 둘이 알고 지낸 지는 꽤 오래 된다. 연배가 많은 다른 무술감독들이 특수효과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켄지는 그런 부분도 능숙하다.”
Q. 원작소설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만화를 다시 영화로 옮겼다. 원작이랑은 얼마나 다른가. 영화 작업하면서 원작자와 의견을 나눴는지. 완성본을 보고 뭐라 하던가.
▶정보서 감독: “수치로 따지자면 원작에서 20프로 정도 가져왔다. 인물관계를 많이 가져왔는데 신분에 대해서는 수정을 많이 했다. 원작과 아예 다른 부분은 이미지이다. 옷 같은 것. 만화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서 그대로 영화로 옮기게 되면 ‘중2병’이라며 관객들이 싫어할 것이다. 보면서 민망할 것 같아서 아예 넣지 않았다. 소설과 만화, 그리고 영화는 각기 독립된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꼭 필요했던 것은 시대배경이다. 만화에서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그 시대에 맞는 인물설정이 필요했다. 원작자와 회의할 때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어봤었다. ‘오케이!’ 작가도 만족했고, 수정한 부분을 이해하더라.”
Q. 19살에 방송사 스태프로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다고 했는데, 영화 쪽 일을 하려고 한 계기는? 그 때부터 영화감독의 꿈이 있었는지.
▶정보서 감독: “어릴 때 그런 꿈이 없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안했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예술을 좋아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어떤 계기로 말단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고, 그게 재밌었다. 일하고 돌아오면 엄마와의 대화가 그런 것이었다. ‘오늘 뭐 했어?’하면 ‘와, 총 맞은 모습을 세 번 봤고, 임산부가 교통사고 나는 것 봤어요.’라고. 영화판 일은 몽환적이다. 현실과 달라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스태프 일이 항상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일 하면서 기회가 생기면 바로 촬영하고 그랬다. 스태프를 하면서도 ‘감독이 될거야’ 이런 게 없었다. 26살에 조감독 하면서, TVB 방송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업계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창작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Q. 정보서 감독의 작품을 보면 조금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다크사이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는가. 홍콩사회에 비관적이라서 그런가?
▶정보서 감독: “나도 몰랐던 부분인데 아마 어릴 적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마카오에서 태어나서 홍콩으로 넘어온 뒤 불공평한 일을 많이 겪었다. 아버지는 집을 세놓았는데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었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고, 이런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는가.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안 좋은 방향으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세상 살면서 불공평한 일을 보면서, 어두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Q. 중국에서도 영화를 찍었었다. 홍콩영화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보서 감독: “미래는 미지(未知), 모르는 것이다. 1980년대에 홍콩영화는 전성기를 맞았었다.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홍콩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형태가 필요할 것이다. 경험 있는 감독과 신예들이 함께 탐색해야할 것이다. 앞으로 홍콩영화가 아시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질지 모르지만, 전성기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룡성채:무법지대>는 지난 5월 1일 중국과 홍콩에서 개봉되었다. 홍콩에서는 1억 1천만 홍콩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홍콩영화사상 역대 2위의 흥행기록을 세웠고, 중국에서는 6억 8400만위앤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구룡성채’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홍콩 신세대 배우들의 화려한 액션을 보고 싶다면 곧 한국에서도 극장개봉하는 이 영화를 보시길. 홍콩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참, 극중에서 홍금보가 읽고 있는 만화는 황옥랑의 <용호문>이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