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막을 올린 제28회 부천국페판타스틱영화제(BIFAN)에는 ‘엑스라지’라는느 섹션이 있다. ‘장편 영화가 포착하지 못하는 폭넓은 이야기와 세계관을 담은 단편 영화만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섹션’이라고 소개한다. 그럼, 그냥 다른 단편 섹션이랑은 뭐가 다르지? 그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웨이브 BIFAN 온라인상영관으로 하나를 골라보았다. 정기연 감독의 <자율주행이 너무해>라는 27분짜리 단편이다. 제목부터 ‘시대정신’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듯하다. 여전히 ‘급발진사고’가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요즘 ‘자율주행차량’은 과연 안전할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나른한 오후, 중년여성 미숙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TV에서는 자율주행차량에 대해 오토무브 모빌리티의 연구원이 나와 인터뷰 중이다. ”자율주행차량은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고 강조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숙은 졸다가 눈을 뜬다. 그리고 이제 같은 연배, 중년여성들과 커피샵에 모여 ‘폭등’ 중인 오토무브 주가 창을 보며 한 마디씩 한다. ”요즘 대세는 자율주행이야.“ 세상은 온통 자동이다. 청소기도, 스마트폰도, 세탁기도. 미숙은 ”그렇구나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네“하다가 깜짝 놀란다. 이젠, 운전할 필요도 없단다. 로봇이 알아서 다 한다고. ”그럼 택배하는 우리 아들놈은?“ 미숙 아줌마는 이제 걱정이 태산이다. 여기저기 뉴스는 온통 자율화 기능으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소식뿐.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조차 오트무브 연구원이 나타나서 ”어이, 거기 조심하시라고. 자율주행의 무서움을 보여줄게. 당신 아들은 곧 빈털터리가 될 거야!“란다.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인 엄마의 마음을 몰라준다. 이제 엄마는 행동으로 나.선.다.
영화는 평범한 중년, 중산층, 표준가정의 삶을 영위하고 있던 미숙씨가 급변하는 세상의 새로운 트랜드인 ‘자율주행차량’에 과도하게 몰입되면서 펼쳐지는 코미디이다. 상황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아마도 ‘IMF사태’나 이후 주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을 위협하는 신기술, 신동향, 신무기의 등장은 ‘온실 안 화초’같았던 그들의 삶을 뒤흔들 개연성은 충분하다. 과도한 우려나, 너무 앞선 걱정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가하게 있다 보면 어느새 세상은 ‘비디오대여점’ 신세가 될 수 있고 ‘386PC’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숙은 과감한 행동에 나선다. 그것은 새로운 러다이트운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희화화시킨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율주행차량이 몰고 올 미래 노동시장의 구조개편보다는 범죄의 흉기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스티븐 킹의 ‘크리스틴’이나, 코로나시기에 개봉된 <모놀리스>라는 작품을 볼 때 그런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정기연 감독의 <자율주행이 너무해>는 끝맺음도 재기발랄하다. 걱정 많은 엄마가 다소 과격하게 ‘미래의 주력산업’을 저지한 후, 그 딸은 또 다른 TV뉴스를 보게 된다. ”AI의 발달은 화이트칼라의 구조조정을 과속화시킬 것“이란다. 어떡해야 하나. 챗GPT에게 자폭법이라도 물어봐야하는지. 딸은 코를 실룩거린다. 독립영화 <물비늘>에서 열연을 펼쳤던 중견배우 김자영이 코믹하고도, 절박한 연기를 보여준다.
▶자율주행이 너무해 (Scary Self-driving) ▶감독/각본/편집:정기연 ▶출연:김자영(미숙) 권슬아(은아) 김윤후(영태) 이진영(동재) 이순풍(택시기사) 오사라(옥정) 김용재(연구원 정종실) ▶촬영/조명:김재홍 ▶음악:이신희 ▶배급:인디스토리 ▶상영시간:27분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