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요즘 같은 세상엔 이런 물음에 심각하게 답을 생각하게 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어떤 행복 안전망을 치고 있는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은 어느 정도의 상태를 행복하다고 여기는지. ‘국민 행복’이나 ‘만족도’를 이야기할 때 몇 가지 ‘국제적’ 지표를 인용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탄’이라는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는 그 나라를 말이다. 아마 중국과 인도 접경 근처, 티베트 부근에 있는 작은 나라일 것이다. 티베트불교/라마교의 왕정국가이다. 대부분 산악지역이며 초가집 같은 데 살고 있으며, 이케아 같은 대형마트도 없는데 다들 안분지족 하는 행복한 영적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럴까. 부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부탄 영화감독이 만든 부탄영화이다. 지난 주 개봉된 <교실 안의 야크>이다. ‘야크’는 솟과에 속하는, 버펄로 같이 생긴 짐승이다.
부탄 수도 팀푸에서 할머니와 사는 유겐은 사범학교 출신으로 일정 기간 교직에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유겐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호주로 가서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부탄의 교육부 장관은 그런 유겐에게 정신 차리라며 오지 ‘루나나’로 발령 낸다. 그곳에서 한 학기만 지내보라고. 그래서 유겐은 버스 타고 하루, 그리고 1주일간 꼬박 산을 걸어 넘어서 멀고 먼 루나나에 도착한다. 해발고도 4800m의 이 깡촌 마을엔 당연히 전기도 안 들어오고, 핸드폰도 안 터진다. 학교 건물은 곧 허물어질 것 같고, 학생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하다. 도시에서 온 젊은 선생님을 향한 눈빛만이 반짝이며 향학열에 불탄다. 칠판도 없고 변변찮은 책걸상도 없고, 받아쓸 종이도 몽땅 연필도 없는 이곳에서 불만에 가득한 유겐 선생님은 견뎌낼 수 있을까. 겨울이 오면 이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유겐 선생은 이곳에서 동심으로 가득한 아이들과 숫자를 배우고 글자를 익히며, 마을 사람을 통해 목동의 노래를 배운다. 영화 제목처럼 교실 안에는 야크 한 마리가 선생님과 같이 생활한다. 추위를 피하고, 선생님에게 일용할 우유를 제공한다. 손으로 뚝딱 만든 칠판에 쓰인 숫자들, 글자들. 그리고 먼 도시에서 친구들이 부쳐준 학용품으로 이들은 지식을 습득하고, 선생님을 통해 도회와 세계의 모습을 전해 들으며 내일을 꿈꾼다. 정작 젊은 선생은 ‘이곳에서 내 청춘을 다 보낼 순 없다’고 매일 다짐하겠지만.
영화는 심훈의 <상록수>나 이병헌의 <내 마음의 풍금>만큼 계몽주의 청년 교사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청춘의 열정을 펼치기에는 부탄이 좁다고 생각하기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고 싶은 갈망뿐이다. 하지만 열악한 그곳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사람! 순박하기 그지없는 이곳 사람들과 부대끼며 삶의 의미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 만든 영화답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게 결론을 알면서도 끝까지 눈을 못 떼고,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 <교실 안의 야크>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한국 관객에게는 비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풍요로운 교실 안에서, 사제의 정 같은 것은 명작극장에서나 보았음 직한 현실에선 말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태양열로 어렵게 전기를 얻고, 핸드폰이 안 터지니 넷플릭스도 보지 못하는 이곳에서 청년교사 유겐은 ‘세계 1위’의 행복감을 느낄까. 만약 문명의 지표가 행복의 지표라면 부탄은 끝에서 순위를 매겨야 할 것이다. ‘문명에서 소외된’ 이곳 아이들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푸른 들판에서 맘껏 뛰어노는 것? 선생님이 훌쩍 떠나며 학교는 멈춘다. 아이들은 그 부모들처럼 내일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작가이자, 사진가인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데뷔작 <교실 안의 야크>는 우리가 상상하는, TV다큐에서 보아온 그런 자연풍광이 펼쳐지는 뻔한 스토리의 힐링드라마이다. 그런데, 다 알면서도 보면서 내 마음의 힐링을 확인하게 된다. 행복은 단순하다. 와이파이가 펑펑 터지지 않아도 된다. UN에서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표에 흔들리지 않는, 잔잔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행복한 삶일지 모른다. 2020년 9월 30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