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레오 카락스 감독의 작품 중에 <나쁜 피>(1986)라는 꽤 난해한 영화가 있다. 근미래의 파리, 'STBO'라는 정체불명의 질병 바이러스가 사람들은 감염시킬 때 연인들은 위험에 처한다는 드라마였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같은 제목의 단편영화가 소개 되었다. 송현범 감독의 <나쁜피>이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랭보의 시에서 가져온 ‘나쁜 피’는 에이즈 시대의 단절에 대한 혼란스러운 관계를 그렸다. 굳이 비교하자면 송현범 감독의 <나쁜 피>는 에이즈도, 드라큘라도 아닌 코로나 펜데믹이 만든 상상과 공포의 인간관계이다.
영화는 근미래의 한국을 그린다.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적혈구를 파괴시키는 신종 바이러스 PT3가 등장한다. 이 질병의 유일한 치료법은 젊은 피를 수혈 받는 것이다. 1100만명의 고령층 환자와 90만명의 헌혈이 가능한 청년들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될까.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피를 매개로 한 잔인한 거래가 시작된다.
기형적인 구조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나이 든 사람들은 마치 마약이라도 구하듯 돌아다니며 돈뭉치를 던지며 피를 달라고 애걸한다. 청년들은 ‘전당포' 같이 생긴 공간에서, 쇠창살이 처진 창구 뒤에서 흥정을 한다. 한 노인이 300만원을 주고 피 한 팩을 받아간다. "나중에 다시 올테니 10팩만 준비해달라"고. 주아는 “피가 그렇게 막 생기는 게 아니에요”란다. 여자의 팔뚝에는 마약주사라도 맞은 듯 온통 멍자국이다. 자신의 피를 뽑아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후유증이 없을 수 없다. 벽에 걸린 시계조차 흐릿하게 보인다. 매혈 단속이 있을 거란다. 정부에서는 돼지 피를 이용해서 피를 만들고 있단다. 3차 임상가지 간 그 '가짜 피'를 수혈 받으면? "기본 체온이 41도라는 것, 그 차이뿐이래.”란다. 그렇게 매혈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좀비가 몰려오고 폭동이 일어날 듯하다. 주아는 쓰러지고, 한 할머니가 친절하게 수혈을 해 준다. "왜 그리 피를 많이 뽑았어? 당신 같은 젊은 사람이 살아야 우리 같은 노인네가 살지. 여기 이 피를 좀 수혈했어.”란다. 돼지피이다. 주야의 눈이 빨개진다.
영화는 간단하다. 에이즈든 코로나든 대규모 감염증상이 인류사회를 덮쳤을 때의, 제어가 가능한지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공포감을 상상력으로 치환한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특수성이 한 몫을 보탠다. 혈연사회의 한국에서, 피로 이어온 관계에서 그 순혈성이 무너질 때의 공포감이 더해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단순한 코로나 공포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공포심을 경고하는 작품일지 모른다.
송현범 감독의 단편 <나쁜피>는 이번 부천영화에서 두 차례 상영되었고, 웨이브에서 온라인특별상영되고 있다.
▶나쁜피(Bad Blood)▶20분▶감독:송현범 ▶각본:송현범,임민아 ▶출연: 홍화연(주아) 이주찬(영태) 전소현(미경) 고동업(태진) 이정민9노인)이도경(엄마) ▶상영시간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