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호러, 고어, 판타지 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다. 그 상영목록에는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포함되어 있다. 한예종 전문사로 재학 중인 목충헌 감독의 장편(61분) <철봉하자 우리>이다. 과연, 동네 뒷산 공터에 설치된 철봉을 어떻게 판타스틱하게 스크린에 옮기질 궁금하다.
영화는 뜻밖에도 코로나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모두가 마스크 쓰고 있고, 거리두기, 띄어 앉기를 해야 했던, 격리되어 물리적으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던 그 시기 말이다. 식당과 카페의 자영업자들은 낙심해서 문을 닫고, 모두가 생계를 걱정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문화아카데미에서 진행하던 문화강좌도 타격을 입는다. 수강생을 모을 수 없으니. 온라인강좌로 속속 도입되던 때이다.
석주(손수현)는 그런 코로나 시기에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온라인강사'의 동영상을 검수(!)하는 편집아르바이트이다. 강사들이 자기 딴에는 재밌다고 하는 농담을 세밀하게 거르는 작업이다. ‘어떤 올바름을 유지하는 동영상 편집자’이다. 당연히 '성 인지 감수성'의 담벼락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관계자가 넌지시 이런 말을 할 정도이다. "적절하게 해야 해. 너무 많이 자르면 페미 같아 보일 수 있으니." 석주는 이런저런 동영상을 보다가 종이접기 강사 맹지(송예은)의 강의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우연히, 실내 클라이밍 장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코로나 시기, 별다른 인간관계도 없던 두 사람, 특히 뾰족한 삶의 계획도 없던 석주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친구로. 그리고 룸메에트로. 그럭저럭 코로나 시기를 헤쳐 나온 두 사람. 코로나가 끝나가자 오히려 관계가 흔들린다. 이제 일자리를 잃게 된 석주는 '도배'를 공부한다.
영화는 손수현, 송예은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로 아름다운 한 편의 우정극이 완성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케미는 어느 순간까지는 '퀴어'인가 생각이 들도록 차분하고, 우아하고, 섬세한 밀당이 이어진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극한의 외부 요인에서도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술도 마시고, 주정도 피우고, '망할 놈의' 남친 이야기도 끼어들고. 세상풍파는 다 겪은 것 같은 둘의 우정극이 끝까지 유지될까. 코로나가 어찌하지 못한 관계가, 코로나가 끝나서는 어떻게 될까. 둘의 우정을 단단하게, 섬세하게 전해준다.
이 영화는 예소연 작가의 단편이 원작이다. <계간 문학들> 2024년봄호에 실렸단다. 아마 영화 본 사람들은 서점으로 달려갈 듯하다. 목충헌 감독은 원작의 정서와 두 여배우의 케미를 놀랍도록 잘 스크린에 펼쳐놓았다. 감독은 코로나라는 극한상황,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민감한 지뢰밭을 아름답게 피해간다. 우정은 '틴터'가 아니라 '철봉대' 앞에서 완성되는 모양이다. (원작에서는 '크로스핏'인 모양이다)
▶철봉하자 우리 (영제:Pull Up) ▶감독/각색:목충헌 ▶출연: 손수현(석주) 송예은(맹지) 김태완 양조아 이상희 ▶원작:예소연 <우리 철봉하자> ▶촬영:허나윤 ▶61분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상영작(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