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막을 올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품은 로즈 글래스 감독의 신작 <러브 라이즈 블리딩>(원제:Love Lies Bleeding)이다. 개막식에는 이 영화에 출연한 안나 바리시니코프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영화는 퀴어(레즈비언) 무비이다. ‘본즈 앤 올’의 정서에서 멀리‘ 보면 델마와 루이스’나 ‘바운드’(86), 등의 계보를 잇는 여성의 핏빛 복수극이다. 영화는 1989년이다. 티나 터너가 떠오른 사자갈기, 멀리트(mullet) 헤어스타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체육관(GYM)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루는 무기력한 삶을 보내고 있다. 마초 같은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막힌 변기를 뚫기 위해 씨름하는 그녀 앞에 재키가 나타난다. 재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몸뚱이’하나만으로 히치하이크로 이곳까지 흘러온 것이다. 루는 첫눈에 재키에게 반하고, 둘은 곧바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GYM에뿐만 아니라 이 동네와 루의 가족관계에서는 온통 질투와 배타, 폭력과 살인의 감정이 이글거릴 뿐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루)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재키)의 연기는 영화를 폭발시킨다. 재키가 가방 하나만 매고 미국 중서부의 황량한 공터에 자리 잡은 허름한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체육관은 피와 땀과 고통으로 가득찰 것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체육관 벽에는 ‘NO PAIN, NO GAIN’(고통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나 ‘고통이란 육체로부터 나약함이 떠나는 것이다’, ‘포기는 루저들이나 하는 것’ 같은, 근육을 다지려는 사람들의 전투심을 불태우는 격문이 가득하다. 재키는 ‘보디빌더’이지만 이 영화는 스포츠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건강한 육체에 깃드는 건강한 정신을 고양하는 작품이 결코 아니다. 루는 틈만 나면 카세트테이프로 ‘흡연의 폐해’에 대해서 듣고 있지만 언제나 입술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영화는 80년대, 미국의 마약 퇴치운동의 격문이었던 ‘JUST SAY NO’를 말하지만 그 어떤 캐릭터도 그런 도덕적, 육체적 순결에 관심이 없다. 루가 재키에게 호의를 베푸는 방식은 스테로이드 주사기를 주는 것이다. 루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가족사는 재키에 의해 처단된다. 하지만, 그 사건은 일파만파로 관계들을 더 꼬이게 만든다. 이제 스테로이드주사에 중독된 재키는 ‘아마존의 전사’, 혹은 ‘걸리버’가 되어 카드로 지은 집을 망가뜨린다.
안나 바리시니코프는 루의 체육관을 맴돌며, (언젠가 사랑했다고 믿는) 루의 육신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인물 데이지를 연기한다. 재키의 등장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순간에 결정적인 카드를 내놓는 영악한 인물이다. 그런 욕망은 파멸로 이끌 뿐이지만.
로즈 글래스 감독은 데뷔작 '세인트 모드'(2019)는 제24회 BIFAN에서 감독상을 받았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부천 개막작으로 상영된 뒤 10일 한국에서도 개봉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 ▶감독: 로즈 글래스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티 오브라이언, 에드 해리스, 데이브 프랑코, 안나 바리시니코프, 제나 말론 ▶수입배급: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키노라이츠 ▶개봉: 2024년 7월 10일/ 104분/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