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 지은 자 결코 발 뻗고 잘 수 없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오늘(4일) 저녁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까지 경기도 부천에서 열린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 개막작으로, <구룡성채:무법지대>가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올해 ‘배우특별전’의 주인공은 손예진이 선정되어 부천을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BIFAN에 맞춰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지난 주 하명미 감독의 <그녀의 취미생활>을 방송한데 이어 이번 주에는 부천에서 호평을 받았던 세 편의 단편을 모아 ‘특별 단편전’을 마련했다. <함진아비>(이상민 감독), <정동>(최우진 감독), <유아용 욕조>(최범석 감독)가 판타스틱하거나 호러블한 영화의 매력을 전해줄 예정이다.
<함진아비>는 초강추 한국단편영화이다. 이상민 감독이 단편 <짧은 사이에>, <둘이>, <돌림총>에 이어 네 번째 내놓은 단편이다. 감독은 시골을 배경으로 <유전>이나 <미드소마>, <곡성> 같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컬트공포물을 만들려고 했단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공주>를 염두에 둬야할 것 같다. ‘한공주’에게 어떤 비극적 일이 벌어졌는지, 그 한공주가 이 세상에 한을 품었다면 어떻게 해원(解冤)할 수 있는지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시골마을 도로공사 현장에서 한가롭게 어린 아들과 캐치볼을 하고 있는 철규를 보여준다. 넥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장소장 쯤 되나보다. 던진 공이 굴려간다. 그 곳에서 언젠가부터 이들을 지켜본 것 같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어두워지고, 뭔가 불안하고, 오래된 비밀을 간직한 듯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남자, 영훈은 철규에게 ‘함진아비’를 부탁한다. 오랜만에 등장한 옛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탁. “요즘, 누가 그런 걸 해? 축의금 든든히 줄게.”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니, 순이의 부탁이야.”란다. 철규는 ‘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곧바로 얼어붙는다. 철규는 또 다른 친구 낙균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함을 팔러 신부, 순이의 집으로 향한다.
함진아비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진 옛 풍습이다.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랑 측에서 혼서지(婚書紙), 채단(采緞) 따위를 나무상자-‘함’(函)-에 넣어 신부 측에 보낸다. 얼굴에 (잡신과 악귀를 몰아낸다는 의미로) ‘오징어’를 쓰고, 청사초롱을 든 마부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것이다. 물론, ‘함진아비’는 어느 순간부터 그 폐단이 극대화되고, 주거환경, 결혼문화가 급변하면서 사라져버렸다. 이 영화에서는 그 ‘함진아비’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철규와 낙균은 ‘함’을 지고, 오징어를 얼굴에 붙이고 어두운 시골길을 나선다. 그 함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순이’의 근황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순이’의 존재에 대해 숨길 수 없는 공포감을 가진다.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낙균은 ‘순이’의 이름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미친 년”이라는 소리를 한다.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영화는 시골마을, 문을 닫은 구멍가게, 을씨년스러운 시골교회 등을 지나면 마지막 ‘순이의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주치는 괴이한 풍경. 철규와 낙균은 오래된 죄악에 대해 이제 무릎을 꿇어야한다. 속죄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 서린 순이의 징벌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함진아비’는 철규와 낙균을 포함해 오래전 ‘피가 끓을 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다섯 명의 친구가 있다. 그리고, 오늘 이런 모든 기괴한 복수전의 현장에는 나이든 마을 사람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어쩌면 이들은 그 때, 순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면서도 무마하거나, 알량한 위신과 체면, 혹은 관계 때문에 덮어두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었는지 모른다. 철규와 낙균,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은 자신들의 죄과에 숨죽이며 고통 받았을 것이고, 외면했던 마을 사람들도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징어가 억울한 자의 해원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민 감독의 놀라운 단편 <함진아비>는 5일(금) 밤 11시 30분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만나볼 수 있다.
▶함진아비 ▶감독/각본/편집: 이상민 ▶출연: 진성찬(철규), 김시호(낙균), 홍석연, 조정민(영훈), 오지연(순이), 홍석연, 황정하 ▶촬영: 김종수 ▶프로듀서: 김연지 ▶시간: 25분 ▶2024년7월5일 KBS독립영화관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