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제왕 송강호가 드라마에 출연했다. 송강호는 글로벌OTT 디즈니플러스의 <삼식이 삼촌>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연기인생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호흡이 긴 드라마의 맛을 본 것이다. <삼식이 삼촌>은 1960년 즈음을 배경으로 야심과 탐욕으로 가득 한 정치, 경제, 군사, 장사판에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야망가의 도전과 좌절을 그린다. 송강호는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에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를 반드시 먹인다’고 해서 ‘삼식이 삼촌’으로 불리는 박두칠을 연기했다. <삼식이 삼촌> 16회가 모두 공개된 뒤, 송강호를 만나 송강호의 새로운 도전과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삼식이 삼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소감부터.
▶송강호: “마지막 3부(14,15,16회)는 디즈니 측 배려로 극장에서 스태프와 배우들, 관객들과 함께 봤다. 극장에서 보니 또 다른 디테일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만 30년 하다가 이렇게 매주 찾아오는 드라마에 출연하니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다. 한 달 반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재밌기도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Q. 영화만 하다가 드라마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있다면?
▶송강호: “꼭 팬데믹 때문은 아니지만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OTT가 문화적 환경을 바꾼 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영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짧은 영화가 전할 수 없는, 긴 호흡의 서사와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요즘 같이 무엇이든 빠르게 변하고,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드라마의 매력이 있다. 긴 호흡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 시대물을 통해 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Q. 드라마에서는 완전 신인인 셈이었다.
▶송강호: “2년 전에 처음 캐스팅 기사 날 때부터 ‘신인배우’라고 이야기했다. 그게 재밌었다. 1997년 <넘버 3>로 대종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었다. 이 영화로 신인상을 받고싶다고 말한 것은 웃자고 드린 이야기이다. 앞으로 한국영화의 주축이 되어야할 보석 같은 신인이 당연히 신인상을 받아야할 것이다.”
Q. 영화배우 데뷔 이후 영화연기만 하려고 했었는가?
▶송강호: “<조용한 가족>을 1997년 즈음에 촬영했었다. 그 무렵 TV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었다. 그 때는 솔직히 생각이 없었다. 막 영화에 데뷔를 했던 때라 영화를 더 알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그냥 그 긴 세월을 영화만 하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Q. 신연식 감독과는 세 편을 같이 했다. (신연식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의 각본을 썼고, <삼식이 삼촌> 전에 영화 <1승>을 감독했다)
▶송강호: “아마 대중들은 신연식 감독을 잘 모르실 것이다. 독립영화계에서 오래 작업했던 분이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의 시나리오와 제작을 했던 분이기도 하다. 그 영화 보고서 저 작가의 시선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 시인의 삶의 뒤안길을 저렇게 조명하다니. 신선했다. 그 호감이 <삼식이 삼촌>까지 온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긴 호흡을 가지고, OTT에 도전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결과를 떠나 그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고 본다. <거미집>, <1승>,<삼식이 삼촌>을 잇달아 한 것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인연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에서 상 받고 왔을 때, 다음 작품이 없을 때 호감이 있던 작가와 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세 작품을 연달아 하게 된 것이다.”
Q. 이게 보면서 처음부터 ‘16부작’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편집과 분량이라는 느낌이 든다.
▶송강호: “처음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량을 생각했었다. 시대물이고, 너무 방대한 배경을 설명해아 하니 시청자의 진입장벽이 높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풀어나가려면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부작’의 장점이 있겠지만 ‘16부작’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간다고 했을 때 이해가 갔다. 작품의 분량, 회차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권한이 없다. 그분들이 그런 장점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결정에 동의한다.“
Q. ‘삼식이 삼촌’ 박두칠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송강호: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캐릭터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연기하기가 어렵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캐릭터가 (연기하기가) 쉬우면 매력이 떨어진다. 박두칠은 어려우나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Q. 삼식이는 어떤 인물인가.
▶송강호: ”돈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 과정이 설명이 안 되어 있다. 아마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경이 유복하지 않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돈을 벌었을 것이다. 마음속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상이 있다. 자신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으니 자기의 재력을 통해,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김산(변요한)을 찾았고, 본인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삼식이는 거대한 야망을 가졌고, 그걸 이루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을 만나고, 목표와 노선도 기꺼이 바꾼다. 아무리 정교하게 준비해도 주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이기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좋았다. 김산도, 강성민도, 정한민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Q. 극중 박두칠은 ‘홍반장’ 같기도 하고 <대부>의 ‘돈 꼬를레오네’ 같기도 하다. 배움도 짧고, 배경도 시원찮은 삼식이가 어떻게 그런 거물급 인사가 되었을까. 오사카에서 뭔가를 한 것 같은데 전사에 대해 생각해 본 게 있는지.
▶송강호: “오사카가 나오고, 시모노세키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야쿠자가 활개를 치는 음지의 세계에 있었을 것이다. 유추해 보면 삼식이는 그곳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이상적인 삶을 펼치려고 한국에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사 자체가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 구조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1인 드라마로 말이다. 이 이야기는 1960년대 초, 격변기를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그러니 삼식이만 깊이 다룰, 물리적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Q. 변요한과의 브로맨스 연기에 대해.
▶송강호: “변요한뿐만 아니라 같이 연기한 후배 배우들이 놀라웠다. 처음 느꼈던 놀라움이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의 연기는 거침없이 돌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에너지가 놀라웠다. 여배우도 마찬가지이다. 진기주, 티파니 영의 연기에서 매번 감탄하고 많이 배웠다. 평소 만나고 싶었던 배우였기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Q. 마지막 3부(14,15,16)에서는 내면 연기가 폭발한 것 같다. 이런 인물을 연기하고 나서는 캐릭터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송강호: “너무 빨리 빠져나와서 문제이다. 으하하하하. 농담이다. 민망해서 드리는 말씀이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연기할 때는 몰입한다.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캐릭터의 파장에서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저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한다. 박두칠은 희로애락의 여러 감정들을 어떻게든 설명을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단순하거나 복잡한 자신들의 야망과 개인적인 감정들을 삼식이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런 것들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장두식 장군(유재명)만 봐도 그렇다. 교활한 느낌도 들겠지만 그렇게만 또 단정을 지을 수가 없다. 그 인물이 이해가 되잖은가? 이 모든 것이 삼식이를 통해 구현된다. 그걸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장이 크다.”
Q. 박두칠의 마지막 모습은? 장두식은 박두칠을 살리려고 했는데.
▶송강호: “장두식은 정말 저를 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를 장군으로 만들어줬으니. 그 정도라면 둘 사이에는 얼마나 배경이 있었겠는가. 그에 비하면 김산은 모르는 사람이잖은가. 그래서 설득을 하는 장면이 있다. ‘김산이 죽고, 널 살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삼식이는 자기가 다 설계하고 추진한 것이라고 말한다. 관조적이기도 하고 허탈감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난 다 각오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의 웃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Q. 관객 대신 시청자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땠는지.
▶송강호:. “사실 어색하다. ‘관객’이란 표현이 참 좋은데. 수요일 오후 4시만 되면 저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졌다. 저도 보면서 매회 ‘재밌어야 할텐데..’ 하면서 기대와 긴장감을 가졌었다.”
Q. 영화를 처음 할 때 자신을 긴장시킨 선배 연기자는?
▶송강호: “<초록물고기>에서의 한석규 선배. 1996년 말에 찍었는데. 의정부에서 나이트클럽신을 처음 찍었다. 그때 한 선배와 같이 연기를 할 때 떨리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마, 이번에 후배들이 나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Q. ‘드라마 선배’에게서 배운 게 있다면?
▶송강호: “다들 나를 떨리게 했다. 그들이 거침없이 연기를 하는 게 놀라웠다. 표현력과 에너지 모든 것이 한 번에 쭉쭉 나가는 것을 보고 ‘역시 선배님들이시구나’하고 감탄했다. 헷갈리면 물어봤다. 영화에서는 과잉되는 지점은 컷된다. 같은 감정선상인데 드라마에서는 약하게 해야 하는 지점이 있더라. 그 적정선을 몰라 매번 모니터 앞에서 진기주 배우에게 물어봤다. ‘이거 과하지 않아? 이거 모자라지 않아?’라고. 인물의 감정을 보여줄 때 감정선이 유지되어야한다. 김산을 만나고 강성민을 만나지만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또 그러면서 박두칠의 일관성도 있어야한다. 영화와 다른 드라마만의 지점이 있다.”
Q. OTT가 활황세이면서 한 편으로는 극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배우로서의 소감은.
▶송강호: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메카니즘은 너무나 소중하다. 펜데믹 시절에 그런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꼈었다. 칸에서의 경험도 소중하지만, <거미집>의 지방 무대행사 때 그런 뭉클함을 또 한 번 느꼈었다. 부산이었던 것 같은데 객석에 관객이 얼마 없었다. 열 몇 분 정도? 그런데 그 모습에 울컥했다. 이 공간에서 영화를 기다리고, 감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영화에 대한 가치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어떤 방식을 더 선호한다거나, 어느 게 더 인기가 있는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각자의 플랫폼을 거치면서 충분히 가치를 만들어갈 것이다. 지금이 그 과정이고,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Q. K콘텐츠로서는 해외 OTT시청자의 반응이 아쉽다.
▶송강호: “예상을 한 것이다. 나는 67년생이다. ‘삼식이삼촌’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 시대적 배경이다. 이런 걸 글로벌 시청자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디즈니플러스 관계자들이 존경스럽다. 이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결단내린 것은 용기이다. 이런 드라마가 해외의 시청자들에 소개되고 이것을 발판으로 더 다양하고, 풍성한, 용기 있는 드라마가 제작이 될 것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 자긍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송강호 배우는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없다.”고 한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