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70만을 거느린 인기 인플루언서(박주현)가 갑자기 납치되어 올드한 캐딜락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다. 납치범은 딱 ‘한 시간’동안 SNS 라이브방송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라고 요구한다. 살아남으려면 극한의, 극단의 ‘라방’을 해야 한다. 영화 <특송>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동희 감독의 감독데뷔작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직접 만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질주한 드라이브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박주현, 김여진, 정웅인, 김도윤, 하도권, 그리고 전■■가 나오는 영화 <드라이브>는 오늘(12일) 개봉한다.
Q.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다른 일을 했다고 하는데.
▶박동희 감독: “영화를 전공하기 않았다. 고등학교 때 미술을 했고, 직업을 생각하라는 아버지 말씀으로 대학에서 건축/토목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해서 발전소 설계하는 일을 하였다. 영화에 대한 불꽃을 가슴에 품고 살다가 대리 달 즈음에 더 나이 들면 안 될 것 같아 뛰어들었다.”
Q. 영화를 배우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박동희 감독: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주위에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이른바 ‘책을 보고’ 공부한 것이다. 그 때 내가 찍었던 작품은 지구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백만 원에 카메라 빌려 단편 찍었다. 영화제에도 출품해 봤었다.” (좋게 평가받은 작품은?)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송정수필’이라고 ‘관촌수필’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이 있다. 아버지 고향이 임실군 삼계면 송정마을이다. 제사 지내는 것을 다큐처럼 찍었는데 운 좋게 상을 받았다. 그때 시상자가 이준익 감독님이셨다. 회사 다닐 때의 일이다. 그 때 상을 받지 못했다면 ‘난 재능이 없나?’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영화에 대한 불씨를 꺼뜨리지 말자고 마음 먹었던 것 같다.” (그 때 폰 기종은?) “아이폰이다.”
Q. 그때부터 영화감독의 꿈이 본격화 된 것인가.
▶박동희 감독: “영화라는 ‘업’을 제대로 알았다면 구체화시켰을 때 텐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기를 이(영화) 인더스트리에서 뭘로 나를 믿어줄까 고민했다. <드라이브>가 메이드될 때까지도 날 믿어줄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대본’밖에 믿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야기의 힘은 믿어 줄거라고. 영화의 꿈을 성사시킬 유일한 방법은 시나리오였다.”
Q. 시나리오를 많이 썼는가.
▶박동희 감독: “습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련의 시간이었다. 영화판이 어떻게 굴려가는 모르니. 어떻게 메이드 될지 생각 않고 쓴 것들이다. <드라이브>는 다니던 회사 그만 두고 가장 처음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였다. 그 초고가 숙성된 것이다. <특송> 대본 작업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 이걸로 연출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글 쓰는 것이랑 연출은 또 다르지 않은가.
▶박동희 감독: “그런 면은 박주현 배우와 비슷했던 것 같다. 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모르고 찍는 것이라면 몇 편을 찍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만큼 영화는 큰 세계이니 심플하게 생각했다. 고작 이렇게 달랑 한 편 찍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연출이란 것은 ‘의도’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 뭘 건져가야 하지?’ ‘이런 샷이 모이면 보는 사람에게 어떤 의도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찍으려는 장면의 의도만 충실히 구현하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영화현장에는 전문가가 많으니 서로 소통하면 될 것이라고 봤다.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그렇게 자기암시를 하고 연출에 임했다.”
Q. 현장수업은 없었나. 아니면 <특송> 현장에서 곁눈질로 배웠나?
▶박동희 감독: “의도만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장을 전혀 모르니. 다행히 훌륭한 조력자가 많았다. <특송>의 박대민 감독에게 많이 배웠다. 물론 스타일은 다르다. 이례적으로 작가인데 촬영 현장에 자주 갔었다. 박대민 감독이 진행하는 것, 결정 내리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다. 마음속으로 세도우 복싱한다고 생각하고 많이 배웠다.”
Q. 한정된 장소에 갇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구도, 설정은 많은 영화에서 이미 보아왔다. <드라이브>에서 차별점이 있다면.
▶박동희 감독: “내가 장르 영화의 팬이다. 관련된 영화는 거의 다 보며 공부했다. 보면서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구상 단계에서는 그런 작품을 다 끊었다. 차별화에 집중하려고 했다. 지향하려고 한 바는 있다. 내가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최근작들을 더 좋아한다. 보면서 기발한, 컨셉츄얼한 아이디어지만 감독은 그걸 땅에 붙어 있는 이야기처럼 만든다. 그런 행보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구체적 내용보다는 그런 느낌의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드라이브> 작업을 한 것 같다.”
Q. 준비해 둔 시나리오가 많은가.
▶박동희 감독: “듣기로 박훈정 감독은 서랍 열면 시나리오, 이야기가 백 개씩 있다고 하더라. 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고, 그런 실력도 안 된다. 한 작품 한 작품 완성도 있게 써내기 바쁘다. 초고는 <특송>보다 이게 먼저 나왔다. 습작을 거치다가 내가 쓰는 게 상업영화, 대중영화로 맞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였다. ‘패닉룸’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날 홍대 앞을 지나가다가 ‘앗, 저 차다!’하고 떠오른 게 있었다.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 같았다. 그게 2016년 같다.”
Q. 그 때 본 차가 캐딜락인가? 봉고차 아니면 아예 컨테이너도 괜찮을 것 같은데.
▶박동희 감독: “‘패닉룸’이라는 설정 자체만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설정을 위한 설정을 한다면 작위적일 것 같다. 일상적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자동차 트렁크가 된 것이다. 아이디어가 딱 떠오른 순간 맞춰진 것이다. 트렁크가 비춰져야하니까 화려하고 요란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떠올릴 만한 아이코닉한 차가 필요하다. 캐딜락이 그렇게 느껴졌다. ‘타임리스’한 느낌이다. 가전제품을 살 때도 그렇다. 캐딜락을 정하고 나서 보니 운구차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런데 그게 유나가 처한 위기와도 어울리는 것 같았다. 캐딜락을 택한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 모든 생각이 순간 정리된 것이다. 요즘 나오는 캐딜락은 너무 팬시한 것 같았다. 내겐 빈티지한 느낌의 캐딜락이어야 했다. 우리나라에 몇 대 없었다. 두 대는 구입하고, 한 대는 섭외해서 세 대로 촬영할 수 있었다.”
Q. 트렁크속 골프백 안에 갇혀있던 인물(정웅인)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일부러 안 보여준 것인가.
▶박동희 감독: “과연 그 인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시나리오에 표현한적 도 있고, 실제 찍은 것도 있다. 하지만 최상의 몰입을 위해, 영화의 흐름을 위해 곁가지를 많이 쳐냈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원래는 저수지에서 기어 올라와서 엔딩을 맞이하는 것이다. 대치상황이 펼쳐지고 타란티노 영화처럼 모두가 한 화면에 들어와서 어이없이 죽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 뺐다.”
Q. 요즘 SNS 라이브 방송은 테러, 폭력, 범죄 이런 장면이 나오면 플랫폼 업체에서 신속하게 자동으로 차단시키는 조치가 이뤄질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 방송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박동희 감독: “당연히 생각했었다. 제 생각ㅇ는 이런 이야기면 재밌겠다는 상상이 먼저였다. 실제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총기난사범이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기도 했었다. 몇 시간 동안 차단이 안 되었고 뭇매를 맞았다. 그런 사례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달려가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Q. 라이브 방송은 결국 이렇게 독하거나, 선정적이거나, 극단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유튜브가 협조를 해주던가.
▶박동희 감독: “그런 극단적 이야기를 경계했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가 2016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유튜브 판이 이렇지는 않았다. 구글에 인수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B급 정서로 채워진 하위매체로 여겨지던 시기에 작품을 기획했었다. 그 시점에서 보더라도 대중이 갖고 있는 인식이 그럴지라도 유나는 나름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을 연기하는 것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매체의 지위나 위상이 커지고 높아졌다. 지금 영화를 홍보하면서 더 체감하고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경계하면서 유튜브나 인터넷방송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려고 했는데 그 이상으로 된 것 같다. 어쩌면 처음 기획할 때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영화를 보면 익숙한 플랫폼인 듯하지만 정말 뜯어보면 로고가 없다.”
Q. 유나 역으로 박주현을 캐스팅했다.
▶박동희 감독: “시나리오 쓰고 아차 싶었다. 작품에서 ‘유나’ 캐릭터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정상급 40대 남성배우의 내공이 필요할 것 같은데 20대 여배우로 쓴 것이다. 지금 다시 시나리오를 쓰라면 이렇게는 안 쓸 것 같다. 그런 설정 자체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 그 때 <인간수업>을 보며 ‘재는 누구지?’ 낯설지만 화면을 뚫고 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지더라. 어쩌면, 저 배우라면 한유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나보니 당차더라. 잘 하더라.”
Q. 완성된 작품에 만족하는지.
▶박동희 감독: “만족한다. 아쉬운 점이 왜 없겠는가. 현장에서, 촬영장에서, 도로에서, 트렁크 신에서, 후반단계에서, 각 단계에서 아등바등 했다. 베테랑 감독이라면 안정적인 연출로 때로는 힘을 주고, 때로는 넘어가고 그랬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실력이 못 되어 매 회차 죽기 살기로 던졌던 것 같다. 만족은 제 노력에 대한 만족인 것 같습니다. 배우 포함하여 작품 전체에 대해 만족한다.”
Q. 트렁크 신은 실제 차량, 세트, CG등이 섞여 있다. 매의 눈으로 보면 옥에 티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편집하면 몇 번이나 보았는지.
▶박동희 감독: “최동훈 감독 인터뷰를 보니 자기 작품을 200번 정도 봤다고 하더라.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하면 ‘저 정도 반열에 가면 200번만 봐도 되는구나’였다. 내가 실력이 부족한 탓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봤다. 세트를 극의 흐름에 맞춰 꾸몄다. 인물 감정이 이러하니 그 공허감을 잘 보여주기 위해 넓은 앵글을 주는 식으로 공간과 인물감정이 잘 살아나게 찍었다. 다양한 트렁크 세트를 만들었고, 짐블에 올려 움직임을 구현했다. 실제 트렁크와 세트가 엄청 섞여있으니 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힘들었다. 후반작업 하면서 엄청 많은 지점을 잡아냈다. CG컷이 900컷이 넘더라. 장르영화 전체에 해당한다. 후반작업 때 ‘너 뭐해?’ 전화 오면 ‘CG작업 중이야’라고 했다. 다들 ‘너 지금 마블 영화 찍어?’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라 라이브방송과 공간의 연속성을 위한 것이었다. CG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Q. 트렁크 장면은 얼마나 되나.
▶박동희 감독: “전체 영화의 70% 조금 못 된다. 영화를 산발적으로 찍었지만 트렁크 신은 순서대로 찍었다. 한 상황에서 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그렇게 했다. 중간에 어떤 다른 장면 촬영도 없이 오롯이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었다. 그 기간이 한 달 반 정도 되었다. 박주현은 한 달 반의 시간을 트렁크 세트 위에서 생활했다. 출근하면 트렁크에 오르고, 트렁크에서 내려오면 촬영이 끝나는 것이다.”
“촬영, 조명 등 주요 스태프들이 트렁크 안에 다 들어가 봤다. 그 상황에서 실제 주행도 해보고 그 느낌을 경험했다. 이게 리얼이구나를 느끼기 위해. 감각적으로 그걸 느꼈기에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먹먹해지는 공포감 말이다. 적재함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현장은 즐거웠다.” (감독님 차는?) “하하. 트렁크 없는 SUV다.”
Q. ‘10억 원’(그리고 6억 5천만원)은 어떻게 설계된 것인가. 나름 계산한 액수인가.
▶박동희 감독: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숫자를 만들고 싶었다. 극중에서 잠깐 스쳐지나가지만 일본 유튜브에서 결혼식 생중계로 22억 원을 벌었다는 사례를 조사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가 리얼한 금액일까. 이성적인 접근을 하다가 그건 답이 없더라. 엄마의 복수극이라면 어느 정도가 될까. 유나의 생일 장면에서 조롱조로 ‘그래, 한 10억 줘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감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왜 이 금액이어야 해?’에 대한 좀 더 단단한 이유가 된 것 같다.”
Q. ‘손가락’은 왜 나오나요? 라이브방송의 선정성이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였는지.
▶박동희 감독: “정웅인 배우도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알겠는데, 왜 손가락이 나오죠?’라고 물어보시더라. 이건 사실 만든 사람의 의도 같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유나의 손끝에서 시작한 것이니. 구상단계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교차방식으로 보여주는 방송 시청자들도 그렇다. 대중은 채팅 중인 손만 보인다. 저의 의도는 ‘손가락의 영화’라고 본다. 익명의 다수를 표현한 것도 그렇다. 김여진은 이 모든 비극이 저 여자 손가락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Q. 전■■ 배우가 나온다는 것은 알려줄 수도 없는 스포일러 같다.
▶박동희 감독: “처음에는 꽁꽁 숨겨두고 안보여주고 싶었다. 저수지 장면에서 ‘뿅~’하고 나타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찍다보니 장면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액션인데, 그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니 힘이 안 실리더라. 인물의 얼굴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조립해보니 얼굴을 보여주고도 이야기를 성립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봉되는 영화가 많다. 우리 영화는 물리적 볼륨이 크지는 않지만 내실이 단단한 작품이다. 작품의 재미가 있다. 그런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보이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인 욕심을 보탠다면 <드라이브>는 개성 있는 작품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이 작품은 분명 개성 있는 작품이다.”
[사진=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