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 E. M. 포스터(1879년~1970)의 작품은 영화와 BBC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꾸준히 독자층을 늘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만큼 매혹적이다. 마치, 그 시절 영국의 그 귀족 집안의 거실에 앉아 우아한 수다 떨기를 지켜보는 것 같으니 말이다. 포스터가 1910년 쓴 소설을 스크린으로 만난다. 신작은 아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전망 좋은 방>(85), <모리스>(87)에 이어 세 번째 내놓은 <하워즈 엔드>(92)이다. ‘하워즈 엔드’는 런던 교외에 있는 상류층 윌콕스 집안의 전원풍 저택을 말한다. 근대화를 넘어 현대화로 달려가는 길목의 영국에서 여전히 탐이 나는 부동산이다.
슐레겔 가문의 둘째 헬렌(헬레나 본햄 카터)은 윌콕스 가족의 저택 하워즈엔드에 잠시 머물다가 이 집안의 차남인 폴과 사랑에 빠지지만 이들의 관계는 곧 깨지고 만다. 몇 달 뒤 헬렌은 베토벤의 음악을 다룬 교양강연을 듣던 날 실수로 레너드 바스트의 우산을 잘못 가져오게 되고, 이것이 또 하나의 인연이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윌콕스 가족이 슐레겔의 앞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슐레겔 네 큰 언니 마가렛(엠마 톰슨)은 윌콕스 부인(바네사 레드그레이브)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점점 마가렛에게 호감을 갖게 된 윌콕스 부인은 자기 소유의 하워즈엔드 저택을 물러주기로 마음먹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일이 틀어진다. 하지만 윌콕스와 슐레겔 가문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더니 결국 마가렛이 헨리 윌콕스(안소니 홉킨스)와 혼인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상류층 윌콕스 패밀리에 적의를 품고 있던 헬렌 때문에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줄거리를 대강 써놓아도, E.M. 포스터의 작품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대 영국사회의 복잡하고도 다이내믹한 계층갈등과 소통, 융합의 풍속도를 얼핏 엿볼 수 있다.
실제 이 작품에는 ‘로열패밀리’를 제외한 당대 영국의 사회계층을 면면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영국에서 출발한 산업혁명의 성과로 자본가의 대두는 부를 움켜잡은 상류층이 존재했고, 그들의 공장과 그들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하층 노동자가 급증했다. 또한 그 중간에서 서로의 조화와 배려를 생각하는 계층이 형성된다.
윌콕스 집안이 전자인 자본가 계층을 대표한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까지 진출하여 부를 일구고 있으며 노동자의 형편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 금융자본의 축적에 골몰한다. 레너드 바스트는 한편으로는 시와 음악을 애호하지만 실질적 삶은 빈곤과 열패감뿐이다. 그런 불균형과 부조리를 슐레겔 가문의 여자들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점을 찾으러 애쓴다. 기실, 슐레겔 사람들은 독일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당대 교양의 총화이자 계급 갈등의 해결사로 역할 하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고고함과 인간세상의 속됨을 탁월하게 연기한 영국출신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포스터 문학의 정수를 쏙 뽑아낸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연출, 루스 프라워 자발라의 정말 윤이 나는 시나리오(각색)는 <하워즈 엔드>를 영화의 클래식 반열에 올려놓기에 족하다. 정말로 <하워즈 엔드>는 막장드라마의 요소를 갖춘 매력적이고 우아한 통속드라마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