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피스>로 감독 데뷔를 한 홍원찬의 두 번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된다. 영화 <오피스>는 서울의 한 식품회사 본사 영업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이다.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배성우와 인턴직원으로 정규직 전환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고아성이 정글과 다름없는 직장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펼친다. 호러인 듯, 사회물인 듯 나름 긴장감을 갖고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홍원찬 감독은 <내가 범인이다>, <추격자>, <황해>, <작전> 등의 작품의 각색 작업에 참가하며 스릴러의 감각을 키워왔다. 그런 홍 감독이 <신세계>의 황정민과 이정재를 캐스팅하여 제대로 각 잡고 만든 영화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다.
‘히트맨’ 인남(황정민)은 방금 일본에서 한 암흑가 거물을 암살한다. 그는 오래 전 특수기관의 암살전문요원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있는 직장(혹은 부서)이 해체되고 그는 오히려 타깃이 된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을 온통 피로 흥건히 적시며 살아남았지만 임신한 상태의 연인을 저 멀리 태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는 혼자서 위험한 히트맨 생활을 이어간 것이다. 영화는 인남의 전사를 적당히, 꼭 필요한 만큼만 보여준다. 그런데 그가 행한 마지막 암살임무는 그에게 지옥 같은 삶을 안겨준다. 일본 미치광이 야쿠자 레이(이정재)가 형의 복수를 하겠다며 인남을 찾아 나선 것이다. 두 사람의 전쟁터는 태국이다. 레이는 “나는 너를 죽일 거야. 너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죽일 거야”라고 칼날을 벼른다. 인남은 어찌될까.
공주를 구하라!
홍원찬 감독이 오래 전 이 시나리오를 다듬을 때 원빈의 <아저씨>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다. 전직 요원, 어린 소녀, 아동 인신매매 등의 요소가 하필이면 똑같았다. 감독은 아쉬워했단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마침내 영화로 완성되었다. <다만 악..>은 두 남자의 악연과 대결, 그리고 탈출인 셈이다. ‘아마도 지저분한 특수임무까지 수행했을’ 인남은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하고, 결국은 처절한 피의 복수전에 내던져진 것이다.
또 한 남자, 레이는 대사를 통해 자신의 전사를 이야기한다. ‘자이니치’의 운명, 야쿠자의 운명을 짧게 읊조리며 복수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조폭의 의리’도 ‘야쿠자의 길’도 없다. 그는 통제 불능의 칼잡이이며 칼끝에서 느껴지는 손맛에 중독되었을 뿐이다.
과거의 번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남은 피곤에 찌든 표정이며, 광기와 살의의 레이는 포커페이스로 끈질기게 인남의 뒤를 쫓는다. 결국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운명인 것이다. 감독은 두 사람이 펼치는 대결의 판을 위해 조무래기를 처치하고, 건물을 폭파하고, 총알을 허공에 쏟아 붓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개연성이 있는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삶에 지친 인남이 달리고, 레이가 미쳐가는 만큼 둘의 마지막 대결이 기다려진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카리스마가 맞부딪칠 때, 트랜스젠더 수술을 위해 방콕의 밤무대에서 돈을 버는 유이(박정민)는 그들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 ‘미친 연기’를 선보인다.
인남은 지독한 복수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소녀를 캐리어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레이는 끝까지 아이스커피를 홀짝일 수 있을까. 홍원찬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달린다. 2020년 8월 5일 개봉/15세 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