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24시간 팝스타들의 음악영상만을 내보내는 MTV가 개국했을 때 송출된 첫 뮤직비디오는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그리고, 지금. 그 고전적 의미의 ‘비디오’(TV)는 스트리밍 최강자 유튜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지상파TV의 중심, KBS가 최근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매주 목요일 밤, 다양한 시사교양 아이템을 내보내는 <다큐 인사이트> 시간에 방송된 <시청률에 미친 PD들>이다. TV시청률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유튜브 조회수(구독자수) 증대에 아등바등 대는 TV 피디 이야기였다. 1부 ‘관종시대’에 이어 4일에는 2부 ‘매운맛 시대’가 시청자를 찾는다. 우리가 예상하는 ‘선비’스러운 KBS시사교양 피디가 아닌 ‘관종피디’에 가까워 보이는 정용재 피디를 만나보았다.
● 유튜브 전성시대 티비의 미래
- <시청률에 미친 PD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작년 ‘KBS스페셜’에서 파격적인 새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공모했었다. 저랑 13년차 선배인 조용중 피디, 그리고 <회사 가기 싫어>를 함께 했던 신민섭 피디와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나누던 때였다. 조 선배가 던진 “너네 요즘 TV 보냐?”가 화두가 되었다. (KBS직원인) 우리조차 유튜브를 더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한 번 해볼까 하며 시작된 아이템이다. 만약 우리가 하면 유튜버를 하면 구독자는 얼마나 될까. 구독자배틀을 해보자고 했다. 이른바 계급장 떼고 재밌는 한 판을 펼쳐보기로. 기획안공모에 당선은 되었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KBS스페셜에는 안 어울리는 컨셉트이니. 이번에 방송된 것은 그 때 짠 기획안 그대로이다.“
- 입사 후 처음 참여한 작품이 독특한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였다. 시청자들이 꽤 재밌게 본 작품이지만 시청률은 낮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실제 만든 사람 소감은?
“그 프로그램 본 사람들은 다 만족하더라. TV프로그램 만드는 회사에서 중요한 것은 시청률이다. 그런데 시청률을 좌우하는 데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변명을 하자면 <회사 가기 싫어>는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되었다. 그 시간대에는 어떤 프로가 들어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 먼저 방송된 1부(‘관종피디’)에서는 정 피디의 유튜버 입문기를 다루며, ‘유튜브’의 현안과 문제를 잠깐 보여준 것 같다. 2부(‘매운 맛 시대’)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
“2부에서는 유튜브와 유튜버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유튜버’ 입장에서 봤을 때 과연 그게 행복한 직업일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번아웃을 호소하거나,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유튜버도 등장했다.”
“그리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과연 이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가 따져볼 것이다. 사람들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가두는 게 아닌가 살펴본다. 필터링된 정보만을 주로 접하게 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확정편향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극우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면서 이뤄지는 연쇄효과 말이다. 극좌적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TV와 비교해 볼 수 있다. TV는 공론장이다. 모두가 다 모이는 광장이다. 유튜브는 뿔뿔이 흩어져서 스스로 갇히는 공간이다. ‘내가 좋아서 보겠다는 자유의지라고는 말한다. 유튜브가 개선할 점은 결국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하는가 일 것이다.“
- 1부가 방송된 뒤 사내 평가는 어땠나.
“첫 반응은 ‘이게 KBS 프로였어?’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KBS가 외부에 어떻게 비쳐지는지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올드한 감성의 TV매체라는 것. 어쨌든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TV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TV의 역할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국가적 중대사가 있으면 TV에 몰린다.”
“유튜브에 많은 사람이 몰리지만 여전히, 아직은 지상파는 신뢰라는 베이스 위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집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KBS가 가진 올드한 이미지는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게 KBS답지 않았다’나 ‘KBS다큐스럽지 않았어’ 같은 칭찬 아닌 칭찬을 더 많이 받았으면 한다. 조금씩 변화를 이어가야할 것이다.”
● 유튜브 vs TV
- 기라성 같은 유튜버들을 많이 만났다. 실제 만나보니 어땠나.
“일단은 백종원씨는 레벨이 다르죠. 그분은 유튜브를 전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큰 사업체의 한 브런치로 여긴다. 생계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전업 유튜버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내가 유튜버가 된다면 딱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나갈 때는 모르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요즘 이른바 ‘노란딱지’ 등 운영저해 이슈가 많다.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 아동 관련 수익도 구글의 정책에 따라 어찌될지 모른다. ‘용튜브’ 구독자가 10만이 되어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튜브 계정은 살아있지만 취미로만 쓸 생각이다.”(기사 작성 시점에 용튜브 구독자는 3만 2900명이다 ▶바로가기)
- 지상파PD로서 작금의 ‘TV방송’ 상황이 어떤가. 정말 지상파의 위기인가.
“막내 피디로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광고수익이 천억 원 단위로 떨어진다거나. 제작비가 깎이는 것을 보면 실감할 수밖에.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체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방송계 입문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TV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뉴미디어업계가 각광받지만 열악한 면이 있다. 당장 대박 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하는 부담감이 없으니, 그럴 수도 없는 구조이고. 많이 배울 수 있어 좋다. 여전히 실력 좋은 선배들이 많은 회사이다. 막내 피디 입장에선 이만한 회사가 어디 있겠나.”
-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가.
“휴먼 다큐. 일반적인 휴먼 말고 리얼한 것을 만들고 싶다. 재미있는 사람을 담고 싶다.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천성적으로 그렇다. 매력적인 사람 많이 만나서. 허락한다면 피디가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연출하는 사람이 따로 없는. 출연자가 마치 연출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연출자가 있고, 써준 대본으로 하면 그건 연출자의 페르소나가 된다. 방송은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이런 틀에 짜인 프로그램을 못 견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나와 하는 형식을 더 선호한다. 출연자가 던지는 메시지가 곧장 통하는 리얼함을 원한다. 편집도 안한 영상.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생각을 조정하려고 하지 말고, 내(피디)가 느끼고 싶은 걸 느끼게 하지 말고.”
- 이번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양팡의 도움을 받은 뒤, 조회수가 급상승할 때 두 개의 자아를 경험했다. 연출자로서의 역할과 구독자를 늘려야하는 유튜버. 좋은 그림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라이브로, 살아있는 채널로 구독자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을 다큐로 담아야 했다. 매주 새로운 영상 올리는 것도 일이다. 선배는 유튜브 전념하라고 했지만 직장인으로 해야할 일도 있잖은가.”
- KBS 46기 시사교양국 막내인 정용재 피디는 최근 어떤 TV프로그램, 동영상을 보았나. 기억에 남는 작품 5개를 말하라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최고다. 역시 넷플릭스의 ‘타이거 킹’. 이거 5년을 찍었단다. 리얼하다 어떻게 찍었나 싶은 장면이 속출한다. 그리고,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정말 재밌게 봤다. 그리고 KBS의 <23.5>. 마지막으로 넷플릭스의 <어둠 속으로>”
- 세상에, 넷플릭스가 세 편이나 된다. KBS 작품은 하나!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내 친구들도 10대들도 안 본다.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다. 똑같은 화면이라도 KBS와 넷플릭스 ‘두둥~’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콘텐츠의 질로만 보면 억울한 면이 있다. 피디들도 노력해야 되겠지만 브랜드 마케팅을 좀 더 세련되게 해야 할 것 같다.”
정용재 피디는 시사교양국의 특집팀에서 코로나19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영화 찍는 레드 카메라로 찍고 있단다. “영상에 힘을 많이 줬어요.” 관종피디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KBS 1TV '다큐 인사이트'의 놀라운 실험극 '시청률에 미친 PD들' 두 번째 이야기 <매운맛 시대>는 4일(목) 밤 10시에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시청률에 미친 피디들>을 연출한 세 명의 KBS 피디 중 제일 막내인 정용재 피디는 작년 입사한 KBS 46기 피디이다. 미학과 12학번으로 입학했단다. “미학과에 입학했는데 환상이 깨졌다. 군대 갔다와서 전과시험 치르고, 경제학 졸업했다.”라고 밝혔다.
- KBS 피디는 어떻게 들어왔나. 언론고시 PD를 준비하는 후배에게 팁을 주자면.
- “필기시험이 중요하다. 논술시험, 시사상식. 일단 삼배수 합격자에 들어가야겠지. 그 다음이 기획안 쓰기. 튀는 기획안을 쓴 것 같다. 오버하는 기획안. 평범하거나 획일적인 기획안은 아니었다. 잘 쓴 것은 아닌데 흥미를 끈 것 같다. 그래서 피디를 준비하는 후배에게 말할 때 조금 민망하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가 몰라서. 내가 피디에 합격한 것은 7-80프로가 운이라고 생각한다. 합격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특이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괴짜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저렇게 노는 것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물론 스터디 클럽하면서 글을 많이 썼고, 친구 쓴 것 많이 읽었다. 그렇게 훈련하면서 자기에게 찾아올 운을 기다리는 것이다. KBS에 입사한 후에도 매일매일 고시생 같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요즘 TV예능을 보면 크게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다. 유튜브가 더 재밌다. 나도 재미없는데 다른 사람을 재미있게 한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재미있고, 마음의 울림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팔로우하며, ‘저렇게 사는 사람이 있네’ 하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그런 즐거움을 주기에는 유튜브나 브이로그가 딱 어울리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