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7일) 밤 11시 30분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부처님 오신날’ 주간에 맞춰 불교적인 깨우침을 전해주는 영화 한 편이 편성되었다. 김미영 감독의 영화 <절해고도>이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부문에서 처음 상영되며 한국감독조합–메가박스상을 수상했고, 작년 9월 극장에서 잠깐 개봉되었다. 총 관객수가 3,683명에 불과했지만 <씨네21>이 해마다 영화평론가와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한국영화)에서 9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한국독립영화의 수준과 KBS독립영화관 담당자의 심미안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화는 인연과 관계를 말한다. 대상이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다. 오고가며 옷깃만 스치는 인연일 수도 있고, 영겁의 세월을 거스르는 운명일 수도 있다. 윤철(박종환)은 지방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대를 나와 조각가로 예술가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백화점이나 학교, 아이스링크의 조형물을 제작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현실과 이상의 차이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보헤미안 같은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영지(강경헌)를 알게 된다. 윤철의 고등학생 딸 지나(이연)는 아버지의 재주를 이어받았는지 곧잘 그림을 그리지만 누군가가 보기엔 그 그림은 염세적이며, 불온하다. 제 인생을 제가 살려는 듯 딸애는 어느 날 갑자기 출가하겠단다. 이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 의지하고 있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윤철, 영지, 지나는 각자의 삶을 마무리하거나 또 다른 삶을 선택하려고 한다.
영화 <절해고도>의 인물들은 떠나가고, 남고, 다시 떠나가고, 다시 만난다. 이혼한 아내는 중국으로 떠나려하고, 딸애는 학교를 떠나려 한다. 영지도 스페인으로 훌쩍 떠나고, 윤철도 베트남으로 떠났다가 돌아온다. 물론 인물들의 말로 그들의 떠남과 돌아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엇갈린 행보의 전환점은 한 밤중 강가에 주차한 차안에서 죽은 듯한 윤철이다. 차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던 낙엽과 먼지가 쌓여있다. 하지만 그 다음 등장하는 윤철은, 많이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달라진 것은 없다. 딸은 머리를 깎고 행자승 ‘도맹’이 되더니 마지막엔 게를 받을 것이란다. 도맹을 돌보던 스님도 미얀마로 떠난다.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영지는 수도원으로 떠난다. 윤철은 이제 혼자 남게 된다. 국수가게를 계속할지, 인테리어 일을 하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 산에서 멧돼지와 맞닥뜨렸을 때처럼 주춤주춤 뒷걸음치든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든지. 멧돼지는 자기의 길을 가려고 할 뿐인지 모른다.
영화잡지 기자 출신의 김미영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절해고도’로 지었다. 絶海孤島. 외로이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이다. 갈매기와 작은 배만이 가끔 찾아올지 모른다. 인생은 그렇다. 연인, 가족, 친구라는 것도 가끔 찾아오는 멧돼지일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중국 비간 감독의 <지구최후의 밤>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물론, 이 영화가 훨씬 대승적이다.
▶감독/각본/편집:김미영 ▶촬영:이찬근▶출연: 박종환(윤철) 이연(지나/도맹) 강경헌(영지) 박현숙(금우스님) 정수빈(연희) 장준휘(경수) 강길우(재훈) 노순천 이노우에 리에(국수집 커플손님) ▶미술:강창호 (도맹그림: 노순천, 도과스님, 윤철작품: 강창호, 노순천) ▶개봉: 2023년 9월 27일 ▶KBS 독립영화관 2024년 5월17일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