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2020총선이 끝났다. 정책과 이슈, 그리고 비전을 걸고 날카롭게 맞부딪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새로운 의회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정치인이 나섰지만 좌절한 사람이 더 많다. 정파를 떠나, 한번 추문에 휩싸인 정치인은 재기하기가 어렵다. 여론, 유권자가 무섭다는 것이다. 여기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정치가 앤소니 위니(Anthony Weiner) 이야기이다. 그는 1991년, 미국에서 역대 최연소인 27살에 뉴욕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뉴욕 주 거물정치인 찰스 슈먼 의원의 보좌관을 거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한다. 찰스 슈머 자리를 이어받아 뉴욕에서만 7번이나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의원시절 지지율이 60% 아래도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는 잘 나가는 의원이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민망스러운 사진’이 유출되면서 결국 의원을 사퇴한다. 그렇게 몰락할 것 같았던 그가 이번엔 뉴욕시장에 도전한다. 숨기고 싶은 흑역사와 감추고 싶은 비밀을 털어내고, 재기할 수 있을까. 개 떼(!)같은 언론(옐로우 저널리즘)이 그냥 놔둘까. 이 작품을 보시라!
EBS에서는 해마다 EIDF라는 다큐영화제를 개최한다. 극장에서도 작품을 상영하기도 하지만 주로 EBS채널을 통해 전 세계의 볼만한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 소개하는 영화제이다. 지난 2017년 소개된 작품 중에 <앤서니 위너: 선거이야기>(원제:Anthony Weiner)라는 작품이 있었다. 7선 의원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추락하였고, 와신상담(?) 끝에 2013년 다시 뉴욕시장 선거에 나서는 과정을 기록한다.
앤소니 위너, 대단한 국회의원
앤소니 위너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뉴욕 선거구 의원을 지냈다. 민주당 소속으로 일곱이나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하원은 임기가 2년이다) 다큐에서는 앤소니 위너의 의원시절 활동모습을 잠깐 보여준다. 의안에 목숨 거는 그의 의정활동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고 소속 정당 지도부를 맹폭하기도 한다. 그의 열혈 연설장면이 뉴스에 거듭 노출되면서 대중의 지지도와 인기가 폭발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한 여자에게 보낸 트위터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되며 망신살이 뻗치게 된다. TV 쇼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고, 한동안 대중들의 우스갯거리가 되더니 결국 의원직을 사퇴한다.
<앤소니 위너>는 (2005년, 2009년에 이어) 2011년 뉴욕시장 선거에 도전한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뉴욕에서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듯하다. 유권자는 ‘앤소니 위너’의 정열적 의정활동을 기억하기도 하고, SNS의 얼빠진 남자만으로도 기억한다. 그가 어디에 가든 카메라와 기자가 따라 붙는다. 그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다. “사진은 하나뿐인가요?” “상대(여자)는 한 사람인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아내, 후마 애버딘(Huma Abedin)이다. 정치권에서는 애버딘도 남편 못지않은 유명인사다. 그녀는 힐러리 클린턴의 핵심 스태프였다. 국무장관 시절부터 힐러리를 보좌했었던 유능한 인물. 일반 사람이 생각하기엔 힐러리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남편(클린턴)의 ‘어리석은 짓’은 기꺼이 눈감아주는 대인배(!)이다. 미국의 일반 사람들은 ‘정치인’ 앤소니 위너의 위기와 도전만큼 그의 아내 후마 애버딘의 선택에도 지극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앤소니 위너는 죽도록 일이 하고 싶은지 “두 번째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지만, ‘폭로자’가 나타난다. 그가 앤소니 위너가 ‘Carlos Danger’라는 이름으로 음란사진을 보냈다는 것이다. 타블로이드 신문과 옐로저널리즘이 이 ‘이 엉망진창 뉴스거리’를 그냥 둘 리가 없다. 앤소니 위너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가 ‘뉴욕시장 선출’을 위한 민주당 당내경선에서 4.9% 지지율, 최하 성적으로 좌절하고 마는 모습을 담는다. 게다가, 선거운동 해단식이 열리는 식당 입구에는 그 ‘폭로자’가 카메라를 대동하여 ‘거대한 쇼’를 준비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앤소니 위너를 찾아보니, 이 사람 참 문제가 많다. SNS 음란사진 보내기는 병적이다. 여러 차례, 여러 여자에게. 그중에는 상대가 미성년자도 있었다. 결국 FBI 수사가 이어지고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2019년 석방되었는데 친절하게 “위너는 남은 생애 동안 성범죄자로 등록해야한다”고 현황을 전한다.
그럼, 야심가로 보이는 아내는? ‘후마 애버딘’은 뉴욕선거 당시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며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고 언론인터뷰에서 밝힌다. 클린턴 부부가 애버딘을 무척 아낀 듯. 클린턴이 결혼식 주례를 봤었고, 힐러리는 “딸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후마야.”라고 이야기했었다고.
조쉬 크리그만과 엘리스 스타인버그가 공동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2016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고, 꽤 많은 미디어로서 올해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상찬받았다. 참,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안소니 위너와 후마 애버딘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연히 불만이었을 것이다. 약속대로 하지 않았다며 소송하겠다고 했지만 유야무야 지나간 모양이다. 이런 걸 들춰내면 들춰낼수록 정치인에겐 치명적일테니, 오래 전 트윗에 올린 사진 하나 때문에 그 오명이 오랫도안 태평양 너머 한국에서도 알려졌으니...원. 정치를 할 사람은 매사 신중하고, 조심해야할 듯하다. <안소니 위너: 선거이야기>는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참참. 주인공 이름 ‘Weiner’를 왜 ‘와이너’나 ‘웨이너’로 읽지 않고 ‘위너’로 읽을까. 이건 미국인들도 궁금한 모양. 알고 보니 출신, 어원과 관계가 있다. ‘비엔나’ 소시지로 유명한 동네 출신이면 와이너겠지만, 유태인 출신이고 그쪽에선 ‘위너’라고 읽는다고. 앤소니 위너는 유태계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