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대지 위에서도 사랑은 꽃을 피우고, 태양빛을 잔뜩 머금은 구리빛 흙에서는 지구의 향기가 진동한다.
12일(목) 방송된 공사창립특집 4부작 UHD다큐멘터리 ‘23.5’ 2부 ‘기다림의 조건 : 건기’에서는 딩카족 청년 마코로와 인도의 향수 장인 람 끄니팔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기다림의 조건 : 건기’에서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이 각기 다른 대륙에서 사는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통해 자전축 23.5도가 만들어내는 지구의 리듬과 이에 맞춰 태동하는 자연과 생명의 기적을 보여준다. ‘23.5’ 제작진은 전쟁과 건기로 메마르고 황폐해진 남수단의 딩카족 캠프부터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고대도시 카나우지 향수 장인의 뜨거운 공방 안으로 밀착해 들어간다.
# 딩카족 청년 마코로의 열혈 로맨스 “소는 내 운명”
열아홉 살 청년 마코로는 어릴 적 그가 돌보던 송아지의 뿔에 찔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래도 자신의 소가 그런 것이기에 원망도 하지 않는다. 딩카족에게 소는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가 곧 돈이고, 그래서 가진 소의 숫자가 곧 자신을 나타낸다. 그래서 딩카족 남자인 마코로도 매일 소와 함께 잠들고 일어난다.
마코로가 사는 수드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 습지이지만 건기가 절정에 다다르면 땅이 쩍쩍 갈라지고 소들의 먹이인 풀도 말라붙는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40도의 열기 속에 야위어 가는 소를 돌보는 마코로의 신경도 부쩍 예민해진다.
혹독한 시련의 계절인 건기, 마코로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가뭄에 단비같은 약혼자 아옌의 미소. 그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참금은 소 서른 마리. 열아홉 마리의 소를 지닌 마코로는 아직도 열한 마리의 새끼가 더 필요하다.
# 세상 하나뿐인 특별한 향수 ‘미티 아타르’를 만드는 향수 장인 람 끄니팔
건기가 찾아온 인도에서는 여신이 지구에 내려온 것을 기리는 축제가 한창이다. 건기는 수 천년 동안 향수를 만들어 왔던 고대 도시 카나우지의 장인들이 가장 활기를 띠는 창작의 계절이다.
카나우지에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가 존재한다. 바로 태양빛을 잔뜩 머금은 흙에서 추출하는 대지의 향수 ‘미티 아타르’다.
향수 장인 람 끄니팔은 40도를 웃도는 뜨거운 건기, 구리 항아리에 불을 지핀다. 열기에 휩싸인 항아리들을 일곱 시간 넘게 지켜보고 있노라면 땀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 과정을 보름 간 반복해야만 비로소 ‘미티 아타르’를 얻을 수 있다.
’23.5’는 지구가 기운 23.5도가 어떻게 이들의 삶을 규정하는 지를 보여주는 한편 건기가 풍요로움을 앗아가는 잔인한 계절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린다.
이와 함께 극단적인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면서 역동적인 생태 변화를 보여주는 광활한 수드 습지와 에티오피아 평원에 폭포수같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의 대장관을 안방극장에 전해주었다.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이 자연과 생명에 미치는 기적을 담은 KBS 1TV 4부작 UHD 다큐멘터리 ‘23.5’의 <3부 보이지 않는 손 – 해류>는 19일, <4부 호흡은 깊게 – 고산> 편은 26일(목)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다큐 인사이트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