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OTT 스트리밍서비스가 대세가 되기 전, DVD가 인기를 끌기 전에 비디오 플레이어(VCR)란 게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각 가정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비디오’ 보급 초기 때엔 볼만한 소프트웨어(비디오테이프)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대기업 계열 영상사업단이 진출하며 다소 숨통이 튀었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러닝타임이) 좀 길다 싶은 작품은 비디오가 (상),(하)로 나뉘어 발매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비디오테이프의 물리적(마그네틱) 성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그런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것이 중평(?)이다. 일반 영화팬(비디오 대여고객)에겐 짜증나는 상술이다. 그런데, 영화판에서 그런 ‘쪼개기’ 제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성치의 <서유기>(월광보합/선리기연)나 오우삼 감독의 <삼국지>가 그랬다. “굳이 왜 나눴지?” 하는 리스트에 잭 스나이더 감독의 <레벨 문>이 추가된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가끔 파트1, 2로 나눠 공개하긴 한다. 그런데 이걸 굳이 나눌 필요가 있었는지. 특히나 1편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은 시청자에겐 2편이 그다지 기다려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결과를 봐야하니.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12월22일) 공개된 ‘파트1’(불의 아이)은 ‘거대한 스페이스 사가(SAGA)’의 단조로운 시작을 알린다. 광활한 우주의 한 변방 행성 ‘벨트’(Veldt)는 농작물을 키우는 평화로운 시골 행성이다. 이곳에 은하제국 마더월드(Motherworld)의 사악한 노블 제독의 우주전함이 도착해서는 파괴의 씨앗을 뿌린다. 오래전 은하제국의 전사로 수많은 전쟁에서 살인과 약탈을 수행했고, 공주 ‘이사’의 호위무사까지 지냈던 코라/아르텔라는 제국 사령관 발리사리우스의 끔찍한 반역에 엮였다가 가까스로 탈출, 이곳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이제 이 행성도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코라는 평범하게 농사나 짓던 청년 군나르와 함께 ‘은하제국 노블’에 맞서 싸울 전사를 찾아 우주로 나선다. 그리고 차례로 뉴와디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타라크 왕자, 다구스 광산에서 분노를 품은 네메시스, 폴룩스의 콜로세움에서 외고집 타이투스 장군, 그리고 샤란 행성에서 다리안 블러드액스와 그의 부하 밀리우스를 ‘평화의 수호자’라는 대의에 끌어들인다. 이들은 밀수업자 카이의 배신으로 곤디발의 초대형 우주정거장에서 ‘노블’의 제국군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한바탕 액션을 펼치며 탈출에 성공한다.
<파트1>은 소문대로 <스타워즈>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적당히 버무린 ‘인민영웅담’으로 완성된다. 은하제국의 악당이 나오고, 반란군이 나오고, 공주가 등장하고, 로봇이 등장하니. 항성 간 순간이동 우주선이나 광선검, 레이저총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런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졌음에도 전쟁의 방식이나 전투의 기술은 여전히 ‘조총’ 시대극을 보는 듯하다. 어쨌든 ‘7인의 반란군’을 규합했으니 쟁기와 낫을 들고 농사짓던 농부들과 함께 항공모함으로 우주를 날아다니며 행성을 파괴하고 있는 마더월드 제국과 한 판 승부를 펼치게 된다.
오늘(19일) 공개되는 ‘파트2: 스카기버’에서는 본격적인 ‘벨트 대전’이 펼쳐진다. 우주전함에서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노블은 부활(재생)하고, 분기탱천하여 전함을 이끌고 벨트로 향한다. 발리사리우스와 노블 제독의 목표는 은하제국의 왕가에 충성을 다했던 코라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벨트에 도착한 ‘7인의 반란군’은 이제 어제까지 농사짓던 농민들에게 속성으로 총 쏘는 법과 칼 쓰는 법, 핵심 전술을 가르치고, 평화로운 그들의 땅에 길게 참호를 파고는 제국군을 기다린다. 용감한 코라는 비행선을 타고 제국군 지휘함에 잠입, 폭탄을 설치한다. 그리고 ‘루커와 다스베이더 처럼’ 노블과 마주 선다. 이제 추락하는 전함 갑판에서 둘은 최후의 결전을 펼친다.
<파트2>는 <파트1>에서 미뤄온 은하대전쟁을 장대하게 펼친다. 파트1,2 합쳐 1억 6,6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영화라는데 화려한 불꽃쇼 이상의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레벨 문>은 <7인의 사무라이>의 기본 플롯을 <스타워즈>에 대입시킨 허술한 스토리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넷플릭스 대작’이다.
아마도 챗GPT에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300>의 잭 스나이더 감독 스타일로, <스타워즈>풍 은하영웅담 시나리오를 만들어라!”로 주문한 듯하다. A.I.는 충실하게 주문에 맞춰 시나리오를 완성시킨 것 같다. 은하제국군이 나오고, 갤럭시 로얄 패밀리가 나오고, 손도끼와 사무라이 칼, 레이저총, 광선검에, 추락하는 우주전함까지 아낌없이 나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슬로우비디오와 뜬금없는 키스신까지 잭 스나이더의 장기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넷플릭스니까 가능한 화려한 불꽃쇼 아니겠는가.
참, 제목, ‘레벨 문’은 우주제국군에 대항하는 반란군이 모인 ‘반란의 행성’을 말하는 것 같다. 파트1, ‘불의 아이’는 누군지 모르겠다. 대장간의 소년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없다. 파트2 ‘스카기버’는 ‘흉터/상처(Scar)를 남기는 자’ 코라를 말한다. 참, 배두나는 갓을 쓰고 칼을 휘두르는 ‘네메시스’ 역으로 출연한다.
잭 스나이더는 ‘레벨 문’ 후속시즌을 언급하며 “이야기는 준비되어 있다. 넷플릭스 시청자가 얼마나 ‘좋아요’를 눌렀는지에 따라 그 운명이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보시고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손가락’(엄지버튼)을 누르시길. 아마, 넷플릭스의 후속시즌 속개 여부의 바로미터인 모양이다.
▶레벨 문 Part One: A Child of Fire Rebel Moon – Part Two: The Scargiver ▶감독:잭 스나이더 ▶출연: 소피아 부텔라(코라), 자이먼 운수(타이투스), 에드 스크레인(애티쿠스 노블), 미힐 하위스만(군나르), 배두나(네메시스), 안소니 홉킨스('지미'의 목소리 연기) 그 외 출연진: 스태즈 네어(타라크), 프라 피(발리사리우스), 클레오파트라 콜먼(데브라 블러드액스), 엘리스 더피(밀리우스), 스텔라 그레이스 피츠제럴드(이사 공주) ▶공개: 2023년 12월 22일(1편)/ 2024년 4월 19일(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