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京城)시대’는 공식적인 역사분류는 아니지만 대중문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시대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서울’ 공간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드라마 <각시탈>, <경성스캔들>, <미스터 션쌰인>, 그리고 최근의 <경성크리처> 등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물론 TV/영화와 함께 서점에 가면 이 시대를 다룬 책들이 꽤 많다. 주로, 풍속사, 문화사, 그 당시 벌어진 사건사고를 다룬 재미난 읽을거리가 산재해 있다. 지난 달 다시 무대로 돌아온 뮤지컬 <일 테노레>도 이 시대를 담고 있다. 그 시절이라면 <영웅>이나 <아리랑>, <명성황후> 같이 나라 잃은 슬픔이나,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가의 포효음을 울려 퍼질 것 같지만 <일 테노레>는 오페라 아리아가 떠오를 만큼 서정적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유(柔)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더 돋보이는 작품이다.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한다.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 ‘이인선’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의기투합해 탄생시킨 작품이다. 박천휴 작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궁금했었단다. 바로 이인선이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미국 선교사에게 피아노와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세브란스 의전에서 의술을 배워 의사가 된다.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34년 이탈리아로 음악 유학을 떠났단다. 귀국 후 ‘낮에는 의사, 밤에는 가인(歌人)’의 이중생활을 했다고. 해방 후 ‘조선오페라협회를 조직했고, 1948년 1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렸단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었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그런 ’의사이자 가인‘의 삶에 모티브를 얻어 시대상을 덧붙여 완성된 ’항일가극‘이다. ’경성시대‘와 ’항일‘를 다루는 측면에서 보자면 혁명적으로 진일보한 창작오페라라 아니할 수 없다.
<일 테노레>의 주인공은 의학도 윤이선과 독립운동을 꿈꾸는 문학도 서진연, 그리고 그 사이의 이수한 세 사람이 펼치는 청춘의 드라마이다. 노래하고, 애국하고, 연애하는 그 시대 최고의 러브스토리이며, 독립운동의 신(新)풍경인 셈이다. 작품은 흥미롭게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스토리를 이어가며, 사건을 확대하고, 주제의식을 폭발시킨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윤이선이 어떻게 ’좋은 목청‘과 ’어리바리한 매력‘으로 교내 극단에 들어가게 되고, 일제의 ’문화탄압‘의 여파로 ’연극‘대신 ’오페라‘ 무대를 갖게 되는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바로 그 곳, '첫 오페라의 공간'에서 거사가 펼쳐진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항일구국의 찬가‘를 부르는 당대 청년의 비애를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청년의 꿈과 열정, 그리고 ’어쩌면 사랑‘의 감정이 아리아와 스코어에 실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곡가 윌 애런슨은 대학 시절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오리지널 오페라 아리아 ‘Aria 1: 꿈의 무게’, ‘Aria 2: 그리하여, 사랑이여’를 작곡했고, 이를 메인 테마로 하여 극의 흐름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한다.
내성적이며, 어리바리한 매력으로 낯선 오페라의 신세계에 빠져드는 윤이선은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가 캐스팅 되었다. 각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항일의 뜻을 품고 ‘문학회’에서 연극을 연출하는 서진연 역에는 김지현, 박지연, 홍지희가 열연을 펼친다. 건축학도이며 일본제제국에 맞서 초개같이 자신을 던질 준비가 된 열혈 건축학도 이수한은 전재홍과 신성민이 연기한다. 미국인 선교사이자 윤이선의 오페라 선생님인 ‘베커 여사’ 역에는 ‘진짜 외국인’이 아드리아나 토메우와 브룩 프린스가 캐스팅되어 그 시대의 ‘갬성’과 극의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려준다.
경성시대에, 일제에 맞서면서 ‘아리랑’ 선율이 한 번도 흘러나오지 않지만 충분히 그 시절로 돌아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공감하며, 응원하는 작품이 바로 <일 테로레>이다. 작년 12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뒤 지난 달 말부터 블루스퀘어 신한카드몰에서 초연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경성의 학생들이 메스와 펜 대신 오페라 악보를 들고 항일운동하는 이 작품은 오랫동안 사랑받을 창작뮤지컬의 운명을 지닌 것 같다.
▶뮤지컬 '일 테노레' (IL TENORE) ▶공연: 2024.3.29.~5.19 블루스퀘어 신한카드몰 ▶프로듀서: 신춘수 ▶작/작사:박천휴 ▶작/작곡/편곡: 윌 애런슨(Will Aronson) ▶연출:김동연 ▶출연: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 김지현 박지연 홍지희 전재홍 신성민, 최호중, 아드리아나 토메우, 브룩 프린스, ▶주최: 오디컴퍼니㈜, SBS, CJ ENM ▶제작:오디컴퍼니㈜ ▶홍보마케팅:오픈리뷰
[사진=오디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