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느 땅? 독도라면, 당연히 한국사람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조금 생각해 볼 것이다. 지구인?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지금 살고 있는 사람? 아니면 다음 세대? [삼체]의 400년 뒤 후손? 파괴되는 아마존의 밀림을 생각해 보자. 지구인의 무감각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진다고 한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주장은 꽤나 이기적인 생각일 것이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의 시작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한다"고.
어느 날 하늘에서 무언가 지구로 떨어진다. 서울 상암동의 EDM대축제 현장에 외계에서 날아온 괴생물체이다. 이들은 지구인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이들은 파고든 지구인의 몸을 장악하고, 지구인의 몸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의 기본 컨셉이다. 만약 그 괴생물체가 인간의 뇌를 완전장악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상호 감독은 그 ‘기생수’ 이야기를 한국 땅에서 펼친다. 외계에서 날아온 괴생명체(?)는 지구, 한국의 시골마을 마트에서 일하는 불운한 여자 수인(전소니) 몸에 착근했지만 뇌를 장악하는데 실패하고 얼굴 근처에 기생하게 된다. <기생수:더 그레이>는 그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이종결합 SF’물이다. 호러와 스릴러를 합친 것은 확실히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에 가깝다.
이미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만화는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그 컨셉과 공존에 대한 철학은 많이 알려져있다. 아니면, 손바닥 ‘비주얼’이나 얼굴이 갈라지는 그림이 워낙 끔찍해서 “에구, 뭐야?”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든지. 연상호 감독은 원작을 꽤나 좋아한 모양이다. 성공한 덕후마냥 원작자에게 ‘한국판 리메이크’ 허락을 구했고, 마침내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 오리지널’을 이야기할 때 같이 언급될만한 수준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기생수> 시리즈는 ‘임무에 성공하지 못한’ 외계 기생생물이, 어쩔 수 없이 숙주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기이한 공생을 그린 작품이다. 한쪽을 완전히 접수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런 딜레마이다. 원작의 ‘신이치’와 ‘오른손이’는 그렇게 공생하고, 소통하고, 진화한다.
연상호 감독은 원작을 스마트하게 변형, 진화시킨다. 기생생물은 ‘하필이면’ 시골마을의 평범한 소시민의 몸에 스며들게 되고, 또 운 나쁘게(?) 그 인간의 몸을 장악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짝 또한 스마트하지도, 밝은 쪽 사람도 아니다. 연상호 감독은 속전속결로 이 상황을 초반에 다 보여준다. 캐릭터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고, 관객들도 별다른 시간 허비 없이 ‘인간’과 ‘괴생명체’와의 기이한 공존의 실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지구인’의 대처도 신속하다. 이미 ‘외계생명체의 지구도래’를 파악한 준경의 ‘더 그레이팀’이다. 다짜고짜 ‘남일’경찰서로 출동하고, 작전이 시작된다. 연상호 감독 작품 특유의 ‘애매한’ 스케일이 펼쳐진다. 분명 전(全)지구적 위기상황이고, ‘더 그레이’는 아주 특별해야할 팀일 것이다. 근사한 슈트에 최첨단 장비, 스마트한 볼거리가 펼쳐질 듯하지만 실제는 ‘애매’하다. 넷플릭스에서 만들어도 연상호 작품이란 게 느껴진다. (진정한 ‘연니버스’이다!)
이런 연니버스는 스토리 자체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다. 글로벌한, 최상급 스토리라인은 필요 없다. ‘이마트’도 ‘코스트코’도 아니다. 당연히 ‘서울시’도 인천공항도 아니다. 괴생물체가 장악하려는 ‘지구인의 우두머리’도 그렇다. UN사무총장이나 미국 대통령, 테일러 스위프트일 필요가 없다. 남천시장님이면 된다. 소박하다. 대신 ‘원래는 인간’인 정수인(전소니), 설강우(구교환), 최준경(이정현), 김철민(권해효), 강원석(김인권)이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효율적으로 극대화 시킨다.
'기생수'를 통해 ‘인간’이 아닌 존재와 공생하면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기생수’는 단순히 ‘지구를 좀먹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징벌하기 위한 포식자, 외계침입종이 아니다. 민들레씨앗처럼 사방팔방으로 비행하다 적당히 살아남고, 생존하고, 후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원작에서의 ‘오른손이’처럼 ‘하이디’ 또한 ‘생존’의 방식을 터득하고, 공존의 이점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오리지널 ‘세계관’은 연니버스에 성공적으로 착근된 셈이다.
연상호 감독은 확실히 마지막 장면을 임팩트 있게 만들었다. 그 어떤 넷플릭스 작품보다 매력적인 후속시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나저나 그 미약한 존재는 저 넓은 우주에서 어떻게 ‘지구’까지 오게 되었을까. ‘지구’가 풍요롭고, ‘인간’이 매력적인 존재란 것이 소문이 난 모양이다. [삼체]처럼 말이다.
▶기생수:더 그레이 ▶감독:연상호 ▶극본:연상호,류용재 ▶출연: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원작:이와아키 히토시 ▶제작사:클라이맥스스튜디오,와우포인트 ▶2024년 4월 5일 공개/청소년관람불가 ▶전체 6부작/3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