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화산활동이 완전히 끝난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다. 지금도 지표 아래에서는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언젠가 다시 한 번 포효할 휴화산(休火山)이다. 만약, 그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면? 한반도 전체를 뒤덮는 재난이 발생한다면? <테러 더 라이브>에서 무너지는 빌딩에서 살아남았고, 붕괴된 <터널>에서 살아 돌아온 하정우라면 무슨 비책이 있을지 모른다. 영화 <백두산>의 주인공 하정우를 만나 ’비상탈출 화산폭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전작 ' PMC: 더 벙커'
“<피엠시>보다 재밌다. 이 영화의 최종 흥행스코어를 예측하는 게 조심스럽다.”
지난 연말 개봉되었던 ' PMC: 더 벙커' 는 167만 관객이 들었다. <백두산>은 첫 주말에 2백 만 명 관객을 훌쩍 뛰어넘으며, 벌써 천만 관객에 대한 기대 섞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 영화가 아주 코믹하다.
“코미디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터널>에서도 그랬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풍겨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유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한 연기보다 좀 더 나가도 될 공간이 있는 인물이어다고 보았다. 세익스피어 비극에서도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런 장면 앞에 희극적인 인물을 넣는 것과 같다.”
- 재난영화에 세 편이나 출연했는데. 재난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있다면.
“아무리 재난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줄곧 팽팽한 긴장상태만을 유지할 수는 없다. 재난이 일어나도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헐리우드 재난극 <투모루우>를 보면 맨해튼이 물에 잠겨 피난을 가는 상황에서 불을 피우고, 자판기 부셔서 음식을 꺼내먹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의 입장에선 그런 모습이 여유롭고 로맨틱하게 보일 수 있다.“
- 이해준, 김병서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작품의 일관성은 어떻게 유지되었나?
“출근은 매일 똑같이 했다. 두 사람 다 공동연출의 경험이 있었기에 노하우가 있었을 것이다. 굳이 나누자면 이해준 감독이 블랙코미디에 좀 더 조예가 있고, 김병서 감독은 기술적인 면, 카메라 샷을 다루는데 좀 더 낫다고 할까. 옆에서 보니 두 분이 나눠서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디렉션을 듣는 배우입장에서 보자면 둘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없었다. 대신, 감독이 둘이어서 불편한 것은 뭔가 아이디어를 내면 같은 이야기를 두 번씩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 시나리오는 어땠나
“일단 재밌었다. 한라산이 폭발한다면? 한라산은 많이들 가 봤을 텐데, 백두산은? 뭔가 스토리가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소재 자체가 신빙성도 있어 보이고, 영화적 소재로 삼아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해 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 이병헌과 신났다, 재난영화 재밌다
- 이병헌 배우와 마침내 공연하게 되었다.
“이병헌과 같이 하는 장면이 짜릿했다. 장갑차 안에서 주고받는 씬 전체가 그랬었다. 북한의 한 가게에서 콜라(캔) 마시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 재난영화 촬영 현장은 어땠나
“재난영화는 특수효과가 많다. 먼지가 엄청 많이 났다. 심히 걱정되었다. <터널>에서는 콩가루를 많이 섞었는데 <백두산>에서 날리는 화산재는 펄프 재질이 혼합되어있다. 대사할 때 눈앞에서 떠다니는 게 보일 정도였다. <터널>은 차안에서 콩가루 섞은 것을 사용하면 되지만 이번 것은 벌판을 채우는 화산재이다. 질감자체가 달랐다. 현장은 아수라장 같았다. 스태프는 방독면 써야 하는 수준이다. 배우들은 촬영 끝나면 코청소가 우선이었다. 식염수로. 정말 화산이 폭발하면 큰일 날 것이다. 영화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의 화산재라니.”
- 영화 개봉 바로 전날에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그만큼 후반작업이 타이트했던 것 아니었나.
“배급 시기는 배급사, 투자사, 제작사가 결정할 일이니 배우인 제가 뭐라 말씀 드리기 어려운부분이다. CG가 어떻게 잘 뽑힐까 의문은 들 수 있다. 촬영은 7월말에 끝났었다. 5개월 동안 후반작업을 한 셈이다. 걱정할 것은 아니다.”
<백두산>은 올 2월 촬영에 들어가서 7월말까지 계속되었다. 하정우는 중간에 3주 빠진 것 말고는 줄곧 백두산에 매달렸다고 한다. “CG작업은 촬영과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니 후반작업은 충분한 셈이다.”라고 덧붙인다.
- 이병헌 배우와의 호흡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병헌 배우는 은근히 웃긴다. 사람 있는데 춤도 추고. 돌발행동도 잘 한다. 개그욕심이 있다. 난 일단 개그에 욕심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이 출연한 <싱글라이더>는 하정우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이병헌과 함께 영화를 찍고 싶었던 하정우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찍고 있는 이병헌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주었고 빨리 읽어보고 결정해달라고 채근했단다.
“형이랑 작업하길 원했다. 이 작품이 어울릴 것 같아서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보내) 줬다. <백두산> 프로젝트는 알고 있었고. 충무로에서는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든 이병헌과 작업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내겐 이 무거운 짐을 덜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말이다.”
- 장갑차 안에서 티격태격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하이라이트다.
“척하면 척인 것 같은 장면이다. 따로 찍은 장면이다. 이병헌이 볼일 보려 나가는 장면, 이병헌 씬을 먼저 찍고, 난 다음날 찍은 영상을 보고 리액션을 했다. 형이 워낙 애드립을 잘해 원래 시나리오 보다 훨씬 풍성한 씬이 완성된 것 같다.”
- <신과 함께>에 이어 이번에도 CG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에 출연했다. 블루스크린 작업이 이제 어색하지 않겠다.
“<신과 함께>에선 보이지도 않는 요괴와 싸웠었다. <백두산>은 상상하면서 연기하니 훨씬 수월한 편이었다.”
CG이야기를 하다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마블(디즈니)이 펼친 논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랬어요? 마틴 스콜세지 정도라면 그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한 획을 그으신 80 넘으신 어르신께서 그런 말씀 하셨다니 지지여부를 떠나 이야기할만해서 하셨을 것이다. 영화 보는 관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니 배우 입장에선 뭐라 말씀 드릴 게 없다. 제 입장에선 이것도 영화고, 저것도 영화이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 ‘큐티쁘띠’ 수지와의 연기는 어땠나.
“영화에서 하는 짓이 민망하잖은가. 어떤 분들은 제 귀가 빨개지는 걸 봤다고 하더다. 제가 낯간지러운 것을 못한다. 시나리오 지문에 ‘볼을 잡는다’가 있었다. 오글거리고 난감했다. 그동안 남자들과 작업을 많이 했으니. 연기호흡은 좋았다.”
- 이병헌과는 환상적이었고, 수지와는 잘 어울렸다. 마동석과는 어땠나? 현장에서 만났나.
“촬영장에서 마동석과는 한 번도 못 만났다. 포스터도 따로 찍었다. 내가 백두산에만 있어 서울 상활을 모른다.” (하정우는 <신과함께> 프로모션을 위해 대만을 함께 간 마동석에게 지질학자 ‘로버트’ 역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 하정우는 지금도 영화를 찍고 있다
<백두산> 언론시사회에 앞서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클로젯>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다. <클로젯>은 하정우가 <싱글라이더>에 이어 제작한 작품이다.
“<클로젯>은 2018년 9월에 찍은 작품이다. (백두산처럼) CJ작품인데, 그게 먼저 개봉되는 줄 알았는데. 연이어 개봉하게 되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영화사 관계자는 <클로젯> 개봉일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깜짝 공개된 예고편을 보니 공포물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시면.
“와이프를 사고로 잃고 딸이랑 새 출발하려고 하는 남자역할을 맡았다. 새 집으로 이사 왔는데 딸이 갑자기 사라진다. 애타게 딸을 찾는데 그때 김남길이 나타나서 옷장이 블라블라 그런다. 퇴마사 역할이다. 옷장에 이계(異界)가 있다. 장르는 100% 호러는 아니다. 판타지 스릴러 드라마다.”
- 지금도 뭘 찍고 있는 모양인데.
“<보스톤1947>(감독 강제규) 찍고 있다. 대전에서 찍었다. <백두산> 홍보 끝나면 1월에 호주에 가서 마저 찍을 예정이다. 보스턴에서 찍으면 좋은데 영화배경이 여름이라 남반구에서 찍는다. 멜버른 근처. 감독이 로케지 헌팅한 곳이다. 그것 끝나면 <피랍>을 또 찍어야한다.”
- <피랍>은 어떤 영화인가.
“레바논에서 한국 사람이 억류당한다. 한국정부에 랜섬을 요구하고, 협상에 나서게 된다. 뭐, 그런 내용이다.”
(현재 충무로에는 전쟁위험지역, 해외공관에서 한국인이 고립되거나 납치되고 이를 구출하는 작전을 펼친다는 컨셉의 영화가 잇달아 기획 제작되고 있다. <피랍>은 <터널>과 넷플릭스영화 <킹덤>의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가 찍는 작품이다. 내년 상반기 중 유럽에서 촬영에 들어간다고)
- 이전 인터뷰에서는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준비한다고 했었는데.
“시나리오는 다 나왔는데 상업영화를 나보다 더 잘 만들 감독에게 넘겼다.”
요약하자면, <백두산> 촬영 끝나고 <보스톤1947> 찍고 있으면, <피랍>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그리고 그것 끝나면 윤종빈 감독의 신작 <수리남> 촬영을 이어갈 것이란다. “와우~”
“윤종빈 감독 작품은 드라마 형태로 나올 것이다. 내년 하반기 10부작으로 만들기로 했다. 넷플릭스와 찍을지 CJ채널과 찍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다른 감독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넷플릭스가 창작자의 권한을 많이 준다고 이야기 하던데. 세 번째 작품은 넷플릭스와 할 계획은 없는지.
“계약조건에 따라 다르겠죠. 이건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저의 세 번째 연출작은 그런 제약 없이 찍고 싶은 게 있다. 극장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 올 한해 내내 영화로 바빴던 것 같다. 내년도 그런 것 같다. 스케줄 조정은?
“요즘 촬영현장이 좋아졌다. 주 52시간 도입되며 영화계도 숨통이 텄다. 일주일에 4~5일 일하고, 하루에 많이 찍더라도 12시간을 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니, 생활자체가 리듬이 있다. 촬영 끝나고 충분히 어울릴 시간도 있다.”
● 연기자 하정우, 영화제작자 하정우, 영화감독 하정우
하정우 배우는 연기자 데뷔 초반에 보여준 밑바닥 인생 연기에서 캐릭터에 빛을 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초반에 맡은 역할이 집이 없고, 직업도 없다. 그런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사실주의 기반의 이야기를 펼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시나리오만 들어오는 건 아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면도 있다. 기획되고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할 때는 여러 가지를 계산해야한다. 그래서 제작에 뜻을 갖는 것 같다. <싱글라이더>나 <클로젯> 같은 작은 영화를 하는 이유가 허락된 범위 내에서 좀 더 새롭고 자유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가 나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 같다.”
영화배우이자, 제작자인 하정우는 이 지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좀 더 자세히 피력한다.
"내가 배우로서 텐트폴 영화에 출연하지만, 제작자로서는 위트 있고, 재기발랄한, 그런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 <롤러코스터>같은, 말도 안 되는 밑도 끝도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백두산>을 제작한 퍼펙트스톰필름은 하정우(본명 김성훈)와 동생 김영훈이 운영하는 영화사이다. <싱글라이더>와 <클로젯>을 만들었다. 영화사와 함께 연예기획사(매니저먼트)인 워크하우스컴퍼니도 이끌고 있다. <백두산>에는 소속사 배우도 몇 명 나온단다. “영화에서 부엉이로 나오는 한수현 배우, 산드리나, 태식이도.”
영화와 상관있는, 혹은 전혀 상관없는 질문도 몇 개 던져보았다.
- EOD 요원인데, 총 쏘는 장면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보인다.
“그렇죠? 그러고 보니 총을 꽤 많이 다뤘다. 베를린, 암살, 피엠씨.”라며 “제가 육군병장출신이다. M16 마지막 세대이다.”라고 덧붙인다.
**질문과 답변에 스포일러 있습니다 **
- <백두산>에서 어떻게 화산을 막는 것인가?
“뭐, 우라늄을 제거하잖은가. 미사일의 엑기스를 뽑아, 용암이 흘러나올 때 다이너마이트로 터뜨려 마그마의 방향을 돌리는 방식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광부들이 분출을 막기 위해 땅 밑을 파서 방향을 터는 장면이 있잖은가. 그런 방식일 것 같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연기 일을 한지가 15년이 되었다. 편수도 많이 되었고, 어느새 현장에서 선배 대열에 들어섰다.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배우로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작품으로, 배우로 관객을 만날 때 조금 더 깊이가 있는, 밀도가 짙어지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고, 전작보다 이번 작품, 이번 작품보단 다음 작품이 더 좋기를 기대한다. 단지 흥행이 아니라 배우로서 표현하는 것이 말이다.”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은 첫날 49만, 첫 주말에 246만, 그리고 어제까지 417만 관객을 돌파했다. “우와~” (KBS미디어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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