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묶을 수 있는 시발점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투’라는 ‘영상물’이 상영되면서부터이다. 지난 100년의 세월에서 최고의 한국영화는 무엇일까. 나운규의 <아리랑>? 봉준호의 <기생충>? KBS와 한국영상자료원은 고심 끝에 12편의 걸작을 선정했다. 지난 10월 11일 <하녀>를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밤 걸작한국영화를 내보내고 있다. 오늘밤 여덟 번째 작품은 <파업전야>이다. 1990년 공안의 눈과 전경의 방패를 뚫고, 노동회관에서, 대학가에서 상영되던 ‘노동필름의 최고봉’이다.
영화 <파업전야>는 88서울올림픽까지 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탄압받던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동조합 결성기를 담고 있다.
동성금속 단조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소박한 꿈이 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과 열악한 노동조건, 꽉 막힌 노사관계, 그리고 쥐꼬리 같은 임금. 여기저기서 노조 결성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동성금속에서도 노동자의 각성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측은 무자비한 저지책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노조원들을 바리케이드를 쌓고 대항하지만, 이들의 무차별적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공장 밖으로 무참히 끌려 나간다. 동성금속 노동자는 여기서 주저앉고 마는가.
<파업전야>는 1990년 당시, 여러 대학 영화동아리 출신들이 모여 의미 있는 공동창작을 해보자는 취지로 결성된 ‘장산곶매’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첫 장편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1988)에 이어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장산곶매 회원들은 노동 영화를 만들기로 합의한 이후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학습하고 조를 짜서 구로공단과 부평공단, 인천공단의 투쟁 현장을 답사하면서 취재를 해나갔다. 전체 구성원의 토론에 의한 줄거리 구성에 이어 취재와 집필에 이르는 시나리오 탈고 과정에만 9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파업전야>는 이은기, 이재구, 장동홍, 장윤현이 공동연출을 맡았고, 당시 파업이 진행 중이던 인천의 한 금속공장에서 합숙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1년여에 걸쳐 완성된 <파업전야>는 1990년 3월, 서울 신촌 한 극장에서 시사회를 통해 관객에게 공개된 후 일반극장에서는 정상적으로 상영될 수가 없었다. 대신, 대학 캠퍼스에서, 노동현장에서 영사기를 통해 ‘도둑상영’되었다.
그렇게 선보인지 29년 만에 지난 5월 노동절에 맞춰, 16밀리로 찍은 거친 영상은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보았다. 극장개봉에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는 당시 장산곶매 대표였던 이용배 교수(계원예술대), 장동홍 감독, 공수창 작가, 김동범 배우가 참석해서 ‘불온하고 위험했던’ 투쟁을 회상했었다.
<파업전야>의 OST로 세상에 나와 노동자의 집회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 민중가요가 된 ‘철의 노동자’는 가수 안치환의 곡이다.
‘파업전야’가 KBS에서 채널을 통해 방송된다는 것이 ‘한국영화 100년'에 있어 가장 감격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 24시 45분에 KBS 1TV를 통해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파업전야' 스틸컷,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