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9일) 밤 방송되는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애니메이터들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다섯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모은 <인디애니 활력전>이 시청자를 찾는다. 소개되는 작품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이혜정 감독), '도나 표류기'(정휘빈 감독),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한지원 감독), '아멘 어 맨'(김경배 감독), '인형이야기'(박세홍 감독)이다. 개성 있는 화풍과 흥미로운 스토리로 채워진 작품들이다.
정휘빈 감독의 <도나 표류기>는 2022년에 만들어진 14분짜리 단편 애니이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영화는 여고생들이 재잘대며 비행기에서 자리 잡는 광경에서 시작된다. 수학여행-아마도 제주도-을 떠나는 모양이다. 딱 봐도 시력이 굉장히 나빠 보이는 안경 낀 소녀 도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여행의 기쁨에 들떠 있다. 그런데 이내 기대감이 깨진다. ‘딱 봐도’ 평소 도나를 괴롭혔을 것 같은 미미가 일행이 같이 앉아야 된다면 도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도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자리를 옮긴다. 그런데 비행기는 난기류에 휩쓸리고 곤두박질친다. 망망대해 어느 섬에 추락한다. 완전히 조각난 비행기. 도나와 미미 일당이 경우 살아남는다. 미미는 섬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곳에는 방치된 건물이 있다. 무선 기지국인 모양이다. 모든 게 조심스러운 도나는 미미에게 대들었다가 안경마저 깨진다. 이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산꼭대기 기지국에서 이들이 마주친 것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나 연상호 만화에서나 봄직한 존재이다. 도나와 미미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물론, 정휘빈 감독은 14분짜리 이야기에서 섬의 비밀을, 과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더 씽>의 상황이 펼쳐졌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더 글로리’의 학폭 복수극으로 흐르는 듯하면서도, 그런 공포의 심연을 살짝 내비친다. “눈을 보면 안 돼!”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불명확한 상황에서의 유일한 생존책이다. 정휘빈 감독은 <도나 표류기>의 연출의도를 “무리에서 도태당할 위기에 놓인 최약체가 결국엔 최상위 포식자에 맞서 싸우게 된다는 성장담을 공포 장르라는 특수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평소 학교에서 왕따 신세거나, 일진의 타깃 도나, 게다가 안경까지 깨어져 앞도 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최고의 위치를 선정하게 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영화적 장치이다. ‘도나’의 상황을 보니 <버드박스>와 함께 오래 전 보았던 작품 하나가 생각난다. ‘시각장애인’으로 사회적 약자였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지구가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모든 빛이 소멸된 뒤(물론, 전기도 사라진다) 이제 ‘어둠이 익숙한 그 사람’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내용. 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 TV피쳐에도 ‘나이트 갤러리’라는 작품이 있다. 14분짜리 단편이지만 일상적인 학교이야기를 호러에 대입시킨 흥미로운 심리스릴러이다. 대부분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이 그러하듯 이 작품도 정휘빈 감독이 스토리보드/캐리터/BG/레이아웃/애니메이션/카메라/편집 등을 다 책임졌다.
▶도나 표류기(2022) ▶ 감독/스토리보드/캐릭터/BG/레이아웃/애니메이션/카메라/편집 : 정휘빈 ▶목소리 출연 : 정유정, 윤은서, 문정혜, 서유림, 이동화 ▶사운드 : 지준석 ▶음악 : 양광섭 ▶ 시간 : 14분 ▶기법 : 2D Compu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