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KBS는 ‘독립영화관’이 방송되던 금요일 밤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라는 특별기획을 내보내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받는 ‘의리적 구투’의 개봉 100년에 맞춰 KBS와 한국영상자료원과 힘을 합쳐 ‘100년의 한국영화 걸작 12편’을 매주 내보내고 있다. 오늘밤에는 그 여섯 번째 작품으로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6)이 시청자를 찾는다.
여의도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한창이던 1983년 여름, 화목하고 부유한 가족을 꾸려나가던 화영(김지미)은 남편(전무송)의 권유로 방송국에 아들을 찾으러 가다가 회상에 젖는다. 화영은 해방과 함께 황해도의 작은 마을 길소뜸으로 이사를 가서 고아(이상아)가 되고, 아버지 친구 김병도와 함께 살다가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김 씨의 아들 동진(김정석)과 사랑하게 된다. 비 오던 날 둘은 사랑을 나누고 화영은 아이를 낳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운명이 서로 엇갈리며 만날 수 없게 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가족 찾기’ 현장에서 옛사랑을 만나고, 혈육을 만나게 되지만 이들은 세월의 강을 건너 옛 정을 되살릴 수 있을까.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을 KBS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은 흥미롭다. 이제는 전설같이 전해지는 KBS여의도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현장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귀에서 울리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가 시청자를 시간여행 시킬지 모른다.
다양한 장르에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 임권택 감독은 한국전쟁이 빚은 슬픈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필름에 담는다. 전쟁의 비극은 군인들의 죽고사는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연인의 생이별, 그리고 대를 잇는 엇갈린 운명의 아픔을 남긴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통해 많은 가족과 피붙이가 수십 년 만에 상봉했지만,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사연과 기막힌 경우가 많았을 테다. 임권택 감독은 그중 가장 현실적이었을 이야기를 전해준다. 당시 한국사회를 휩쓴 이산가족 찾기의 감정적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냉정한 현실인식과 차가운 눈으로 ‘이산과 분단’, 그리고 그 후유증을 무겁게 담아낸다.
영화 마지막은 ‘아들’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놓고 화영(김지미)의 한 맺힌 결정을 보여준다. 김지미가 연기하는 화영의 결정에 누가 감히 옳다 그르다, 혹은 그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임권택 감독은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보면서 언젠가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여의도에 가서 실제 만남의 장면을 촬영해두었단다. 이후 새로 촬영한 부분과 함께 실제 촬영 분을 섞어서 편집했다고 한다.
아마도, 1986년의 한국영화를 2019년에 TV를 통해 보게 된다면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상아가 출연한 장면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영화 상영과 함께 MC백승주 아나운서와 주성철 편집장(영화전문잡지 씨네21)이 출연해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번 주 <길소뜸>에 이어 다음 주에는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이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영화 '길소뜸'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