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안재홍은 꼴지 농구팀 코치(리바운드), “아이시떼루!”를 외치는 사회부적응자 주오남(마스크걸), 명문대 출신의 분노의 택시드라이버 사무엘(LTNS)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개봉된 넷플릭스 <닭강정> 속 ‘고백중’ 캐릭터도 만만찮다. 용감하게 캐릭터의 금자탑을 쌓아가고 있는 안재홍 배우를 만나 ‘닭강정’의 맛을 물어보았다.
Q. 원작웹툰은 봤는지.
▶안재홍: “감독님께 제안 받고 원작 웹툰을 읽어보았다. 참고용으로. 좋은 것 있으면 가져오려고 했다. 원작 자체가 독특했다. 처음 보는 형식미였다. 만화 속의 백중이 통통한 게 저랑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에 보태어 더 가져가고 싶었다. 외형을 좀 더 재밌게. 뭔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웹툰에서도 옷은 한 벌만 입고 나온다. 같은 컬러로. 그런 독특하고 만화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느낌을 자아내고 싶었다.”
Q. <마스크걸>의 주오남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안재홍: “그런 반응을 얻는다는 것은 배우에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반응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대할 때 싱크로율에 대한 마음을 갖는 편은 아니다. <닭강정>같은 독특하고 새롭고, 독보적인 작품을 이병헌 감독이 재창조한 세계에서도 충분히 이입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을 안 보셨더라도 이 작품의 세계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만화적인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싶었다. <마스크걸> 인터뷰 때 살짝 밝혔었는데 다음에 공개되는 작품은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고 했었다. 그게 이 작품이다. 정말 만화적인 인물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주오남도 그렇고, LTNS 캐릭터도 그랬다. 그리고 고백중까지. 캐릭터열전을 이어가고 있다.
▶안재홍: “의도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맡은 인물이 모두 각자의 고유한 세상 속 캐릭터로 이해한다. 대중들이 그 캐릭터에 몰입해 주셔서 감사하고 기쁘다. 그 자체로 만족한다. 주오남 캐릭터가 강렬한 지점이 있었기에 그 다음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일부러 피하거나 다르게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개별적 작품의 고유한 캐릭터로 보려고 한다. 파격적이라거나 독보적인 캐릭터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안재홍: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건 신나는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만화적이고 여태껏 본 적 없는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매력이 있었고 너무 참여하고 싶었다. 아마 새로움에 대한 순수한 발동일 것이다. 고백중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려낼까.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새로운 톤과 화법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배우로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병헌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기대가 컸다. 이전에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이번에 그려낼 세계관이 또 궁금했다. 게다가 류승룡 선배가 최선만 사장으로 캐스팅 되어 있었기에 쾌감 넘치는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면 케미스트리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Q. 내용이 너무 난해한 것 아닌가.
▶안재홍: “대본 자체의 비범함이 있다. 그 황당함과 뉘앙스를 잘 살려내고 싶었다. 대사의 톤도 새로웠다. 그것이 실재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톤 업을 하되, 진실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LTNS]와 비교하자면 그 캐릭터는 켜켜이 쌓아가는 방식이었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의 이면을 보여주며 입체성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고백중은 의도적으로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 긴장감을 보여준다. 고백중이 등장함과 동시에 딱 캐리커쳐화 되어야한다. 처음 보자마자 독특하고, 이상하고, 그냥 끌린다. 감독님 의도대로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로 달려갔다.”
Q. 극중 고백중은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는 어떻게 연습했는지. 좋아하는 곡은.
▶안재홍: 노래는 <멜로가 체질>에서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지도를 해준 박상우 작곡가에게 노래와 기타 레슨 받고 촬영했다. [닭강정] 음원은 이미 출시되었다. 저는 매일 듣고 이다. 좋아한 노래는 [고백의 주문서]이다 추천 드립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가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닭강정랩소디]의 가사도 좋아한다. ‘조그만 무대 위 우리 둘밖에 없는 이곳에서/ 내가 되어줄게 이루어줄게 다’라고 부른다. 민아를 향한 순애보가 가득한 가사라고 생각한다. 요즘 매일 듣는다.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노래가 독특하고 신난다. [모든기계] [야식]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노래가 우리 작품을 대변해 준다. 매력이 있다.“
Q. 코미디를 찍다보면 촬영현장이 온통 웃음바다였겠다.
▶안재홍: ”매 순간이 재밌었다. 매 순간이 웃음을 참아내야 하는 현장이었다. 대사 자체가 너무 재밌다. 황당한 대사들이 훅훅 들어오니까. 코미디가 만들어지는 귀한 순간을 담아내야하니 온 힘을 다해 웃음을 참아내야 한다. 류승룡 선배의 눈을 못 보고 미간을 봤다. 정면으로 봤다가는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정호연 배우와 연기한 홍차 캐릭터랑 같이 삼각구도 장면이 특히 그러했다. 한 명이 웃으면 웃음이 폭발해버리는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 ‘웃참’하며 찍었다.“
Q. 애드립은 어느 정도 나왔나.
▶안재홍:”이병헌 감독의 대본은 정교하게 짜여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코미디가 잘 융합되어 있기에 되도록 애드립을 하지 않았다. 이 문장을 바꾸기보다는, 이 하나의 문장이라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랐다. 감독님이 많은 생각을 넣어서 만든 것이기에 그 대사의 힘과 재미를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다. 사실 모든 대사가 애드립 같았다. 살아 숨 쉬는 듯했다.“
Q. 정호연 배우와의 연기호흡은 어땠는지.
▶안재홍: ”홍차가 우리 작품 속에서 가장 비범하고도 독특한 인물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기분 좋은 이상함을 가진, 매력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뱃살 어디 갔지?’하는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리허설 때 다 웃고, 다시 에너지 채워 촬영을 끝마쳤다. 정호연 배우와는 처음 같이 연기를 했다. 마성의 힘을 느낀 것 같다. 회상 씬에서 각자 다른 음식 취향으로 다투는 장면을 몽타쥬 촬영했는데 모니터 보면서 묘하고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가 잘 맞아 재밌게 나온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나 상황은?
▶안재홍: ”유승목 배우가 연기하는 유인원 박사의 연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본에는 애벌레로 2년을 살았다고 나온다. 그런 설정은 알았는데 웨이브 한다는 것은 몰랐다.(꿈틀거림) 백중으로 유인원 바라볼 때 내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이 들더라. 정말 못 참겠더라. 새로운 뭔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유인원의 애벌레 웨이브가 말이다. 굉장히 놀랐다. 눈을 못 쳐다보고 인중을 쳐다보는 상황이었다.“
Q. 안재홍 배우가 펼치는 코미디 연기란?
▶안재홍: ”저는 개인적으로 코미디는 생성이 된다고 믿는 편이다. 재밌는 뭔가를 해서 웃음을 드리는 코미디가 있고, 나는 굉장히 절박하고 진지한데 한 발자국 떨어진 관객이 보면 뭔가가 생성되는 코미디가 있다. 나는 후자를 추구하는 편이다. <닭강정>은 몇 단계 위의 코미디였다. 고백중으로서 진짜 감정을 듬뿍 담아내려고 했다. 그렇게 굳게 믿어야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탁구 게임처럼 다채롭게 랠리를 이어간다고 생각했다. 티키타카일 수도 있고, 빠른 호흡 속에서 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Q. 류승룡 선배와 코미디 연기를 한 소감은.
▶안재홍: “선배와 따로 리허설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재미가 조금씩 증발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호흡을 잘 맞춰 그 에너지를 농축시켜서, 소중한 교감을 잘 담아내고 싶었다. 코미디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사의 뉘앙스와 템포가 너무 재밌었다. 강약조절을 잘 해서 제대로 표현해내고 싶었다.”
Q. ‘모든기계’의 또 한 명의 직장동료 김남희와의 코믹 플레이도 재밌었다.
▶안재홍: “김남희 배우와는 화음을 맞추는 것 같았다. 노래로 비유하자면 류승룡 선배와 듀엣송을 부르다가, 김남희 배우가 합류하면 삼인조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세 명의 연기자가 따로 준비하거나 기획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화음을 쌓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명, 한 명, 또 한 명. 이런 게 반복되거나 또 다른 반응이 주어질 때 생성되는 재미가 있었다.”
Q. ‘리바운드’, ‘마스크걸’, ‘LTNS’, ‘닭강정’ 등이 쏟아졌다. 촬영은 어떤 순서였나. 배우들은 작품 하지 않을 때 다음 작품을 위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는데 안재홍 배우의 경우는?
▶안재홍: “촬영한 것은 공개된 것과는 다르다. 가장 최근에 [LTNS]를 찍었었다. 공개된 순서는 공개 순서는 제 의도가 아니니까. 작품마다, 캐릭터에 고유성을 두고 열심히 연기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많이 걷는다.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걸으면서 생각한다. 날씨 보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촬영 없을 때는 매일 2만 보. 촬영 할 때도 1만 보정도 걷는다. 배우고 싶은 게 있는데 자꾸 미뤄놓는 것 같다. 요가를 배우고 싶었는데 못 배웠다. 그것도 빨리 배우고 싶은데.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무술이든, 운동이든, 외국어든. 그런 것을 배우로 활용하고 싶었다.”
Q. 마법의 기계에서 ‘차은우’라고 외치는 것에 대해서.
▶안재홍: “그 장면은 진심으로 임했다. 원작에서도 ‘챠은우’라고 외친다. 대본에서도 ‘챠은우’라고 나와 있다. ‘챠~은우’라고 해서 변신하지 못한 것 같다.”
Q. 단편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2020)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연기자가 연출을 하는 것에 대해.
▶안재홍: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도 조금씩 긁적이고 있다. 간단한 메모라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게 단편이든 장편이든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괴상한 캐릭터의 작품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매번 ‘안재홍’ 배우의 은퇴작 기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안재홍 배우는 “캐릭터에 몰입한 제 연기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행복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온 몸, 옴 마음 다해서 연기하고 싶다. 오래오래 다양하게 연기하고 싶다.”며 “<닭강정>은 정망 새로운 시도로 가득한 작품이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재밌게 즐겨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