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역사 100년을 맞아 KBS가 마련한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의 네 번째 작품은 하길종 감독의 눈물과 한이 서려있는 1975년 작품 <바보들의 행진>이다. 이 작품은 당시 대표적 청년작가였던 최인호가 신문에 가볍게 연재했던 청춘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캠퍼스의 청춘이 맞닥쳤던 이야기가 해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절망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입대를 앞둔 병태(윤문섭)과 영철(하재영)의 신검장면부터 시작된다. 병태는 합격, 영철은 불합격 받는 모습과 함께 그들의 캠퍼스생활이 시작된다. 배경은 신촌 Y대학이다. 당시 대학생들의 캠퍼스 생활은 이렇다. 학과대표가 “이웃 여대랑 단체미팅 잡았다”부터 시작하여, 당구장, 학사주점, 과 대항 축구, 과 대항 술마시기 등등으로 일면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 따분한 교수님의 강의도 지금 보면 바뀐 것 하나 없는 레퍼토리이다. 시절은 하수상하다. 장발단속을 피하는 장면에서는 송창식의 ‘왜 불러’가 멋들어지게 흘러나온다. 70년대 대학생의 낭만은 여기까지이다. 항상 의기소침했던 영철은 고래를 찾겠다면 자전거로 동해바다로 떠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현재 <금지된 상상 억압의 성처: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전시물 중에는 ‘바보들의 행진’에 행해진 검열 관련 문서가 있다. 예륜(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시나리오심의(전면개작 요청), 문공부의 시나리오 검토(대본 개작 통보), 문공부(중앙정보부,내무부 참석)의 영화검열(제한 조건 합격)이라는 3중 검열 과정과 내용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극장에 개봉되는 영화는 이처럼 당국의 검열을 거쳐야했다. 검열관은 시사실에서 영사된 화면과 대본집을 보며, ‘문제되는 장면, 문제되는 대사’를 콕콕 집어내며 “이거 들어 내, ”“이거 삭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삭제”, “저건 재촬영해”식으로 재단한다.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많은 양이 잘려나간다. 팔다리가 잘려나가 너덜너덜해진 필름은 영화 보는 내내 덜컹거린다. 그런 내막을 모르고 이 작품을 본다면,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저렇게 만들었나 화를 낼지도 모른다.
서울대 3대 천재의 한 명이란 소리를 들었던 하길종은 미국으로 영화를 배우겠다고 떠난다. UCLA에서 영화를 배우고 7년 후, 대망의 꿈을 안고 충무로에 입성했지만,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는 그 그릇을, 그 꿈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영화의 꿈에 항상 분노하던 그는 1979년 2월 갑자기 쓰러졌고, 닷새 뒤에 세상을 떠났다. 38살의 젊은 나이로.
너덜너덜 잘려나가고 상처 입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지난 100년 한국 영화가 겪어야했던 고통과 성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 네 번째 걸작 <바보들의 행진>은 오늘 밤 00시 45분에 KBS 1TV에서 방송된다. 다음 주에는 <바람 불어 좋은날>(이장호 감독,1980), <길소뜸>(임권택 감독,1985),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감독,1990) 등이 계속 이어진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