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 감독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장윤현 감독은 ‘충무로’로 대변되던 한국영화가 새로운 물결로 꿈틀거릴 때 독립영화단체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독립영화 <파업전야>를 찍었던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을 통해 화려하게 상업영화계에 데뷔했다. 이어 <텔 미 썸딩>이라는 하드코어 스릴러를 내놓으며 한국영화의 장르적 확장을 주도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정치적 유탄’을 맞아 개봉이 좌절되었고, 사드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번에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만든 작품이 바로 오늘(20일) 개봉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라는 소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혹은 미스터리 멜로이다. 그의 대표작 멜로와 미스터리를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반가운 귀환작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시국에 힘들게 찍은 작품이니 감안하고 봐야할 듯.
영화가 시작되면 덕희(추자현)가 비명을 지르며 잠이 깬다. 또다시 악몽을 꾼 모양이다. 남편 준석(이무생)이 다가와서 감싸 안으며 위로한다.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다고. 운명적으로 만나 행복한 신혼을 즐기던 행복한 커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덕희가 단기 기억상실을 앓게 된다.(이른바 해리성기억장애) 덕희는 2년여를 기억하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무심코 던지는 말이 의아하다. 남편이 한밤에 집밖으로 나간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 의심과 의혹은 커져만 가고, 남편이 어느 날 소설을 쓴다며 보름 정도 집을 나간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더 알 수 없는 남편의 행적에 덕희는 혼란스럽다.
영화는 ‘기억을 잃은 아내’와 ‘뭔가를 숨기려는 남편’을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키워간다. 사랑하는 사이 같음에도 뭔가 이상하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한 클래식 <가스등>의 상황인가. 아니면 아내 스스로 쌓아올린 피해망상일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남편이 강릉으로 떠나기 전 상황이다. 아픈 아내를 두고 떠나기가 미안한지, 몇 번이나 나갔다 되돌아온다. 마지막엔 현관에서 쓰러질 정도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떠난 남편. 그렇게 아내와 남편을 이별하는 것이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고, 나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는지 흔들리게 된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설명하기 곤란한 둘의 관계, 사라진 시간들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다. 일종의 강력 스포일러인 셈이다. 둘의 행복했던 순간, 사랑이 충만했던 기억들은 관객에게 ‘설마’와 ‘확신’, 그리고 미스터리의 단단한 축을 이룬다. 장윤현 감독은 처음부터 둘의 관계를 멜로와 미스터리로 장식한다. 처음 덕희를 만난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애틋함이 넘치고, 두 번째 만남(휠체어)에서부터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코로나 시기에 조심스레 힘들게 서둘러 촬영된 작품이다. 딱 필요한 사람과 딱 필요한 대사, 그리고 딱 필요한 만큼의 설정과 미스터리로 한 부부의 믿음을 측정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자동차 블랙박스의 영상으로 그 묵직한 진면목을 보여준다. 괜찮은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이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 장윤현 감독만큼 오랜만에 한국에서 영화를 찍은 추자현이 이무생과 펼치는 멜로가 산뜻하고, 따뜻하다.
▶당신이 잠든 사이 ▶감독/각색: 장윤현 ▶각본:조성완 ▶출연: 추자현(덕희), 이무생(준석), 손숙, 박민정, 성지루, 김진수 ▶제작: ㈜로그라인스튜디오, ㈜스튜디오킬러웨일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개봉: 2024년 3월 20일/100분/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