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멜로드라마인가, 정치드라마인가, 액션물인가. 용필름이 제작했다고 하니 느와르를 기대했을 수도, 송중기가 나왔으니 멜로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탈북자가 주인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명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사선을 넘었을 테니. 그런데 이상하다. 적어도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로기완>은 자유를 위한 투쟁은 아닐지라도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은 느껴야할 것인데 말이다.
이야기는 송중기가 한밤에 차가운 도로를 적신 핏자국을 걸레로 문지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죽은 차가운 땅. 이곳은 중국 연길이다. 로기완은 2019년 엄마와 함께 탈북, 연길에 숨어살다가 공안의 단속에 쫓기다 엄마가 트럭에 치어 죽고, 기완만이 어렵게 위조여권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것이다. 로기완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난관이 있다. 그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마리’를 만나면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도 한다. 자유의 땅에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강제송환 될까.
로기완이 공항 입국심사대에 내민 위조여권에는 1985년생이라고 되어 있고, 난민심사과정에서는 1990년 12월 1일 협동농장 내 제7작업반에서 태어났다고 진술한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그는 서른이 될 무렵 브뤼셀에 도착한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엄마의 죽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잡아 브뤼셀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삶의 궤적을 가진 자라면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터득했을 것이다.
북한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1990년대 들어서 겪어야했던 ‘고난의 행군’을 알 것이다. 공산권이 붕괴되며 소련이라는 뒷배가 휘청거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해해가 발생한 북한에서는 그 때가 최악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30만에서 5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풀뿌리, 나무껍질까지 먹으며 버티다가 그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TV에서는 중국 국경지역에서 펼쳐지는 ‘꽃제비’ 등 북한의 비참한 상황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열리는 국제스포츠 경기에서 가끔 북한 선수를 비춰줄 때 한국선수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그들의 왜소한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그 때부터 많은 북한주민들이 살기위해 압록강을 건넜고, 중국 땅에 숨어서, 그 인근국가까지 흘러들어가 목숨을 이어간다. 이미 많은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기사로 접하는 사실이다. 여기에 그런 케이스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로기완’이야기는 2011년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에서 시작한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한 방송작가의 ‘로기완 추적기’이다. 방송작가는 자신이 맡은 메디컬 다큐의 실패에 좌절하여 이곳 브뤼셀에 온 것이다. 예전에 보았던 ‘로기완’이라는 탈북인 르포기사를 보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브뤼셀에서 로기완을 만나진 못한다. 대신, 한인사회 관계자가 보관하고 있던 로기완의 자술서 등 자료를 받아 ‘로기완’이 이곳에 와서, 어떤 곳에 묵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난민심사를 받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의 조력을 받았는지 그 행적을 더듬어가는 것이다.
<로기완>으로 감독 데뷔를 한 김희진 감독은 원작소설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 ‘마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원작에서의 ‘방송작가’가 가졌던 고뇌와 좌절감의 편린이 마리에게 투영된 것이겠지만 ‘로기완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역시나 ‘사치’이고 ‘사족’일 뿐이다.
많은 탈북자들이 이런저런 나라를 경유하여 유럽까지 흘러들고, 영국까지 가서 정착한단다. 그들이 모두 남쪽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포’로 바라보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난민’이라는 개념의 무게추가 기울지 모를 일이다. 1960년 발표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행을 선택한다.(그리고 자살한다!) ‘넷플릭스’ 로기완은 ‘액션’도 ‘정치’도 아닌 멜로를 선택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니.
▶넷플릭스 무비 ‘로기완’ ▶감독/각본:김희진 ▶출연:송중기, 최성은, 김성령, 서현우, 조한철, 와엘 세르숩, 이상희, 강길우, 이일화 ▶제작사:용필름,하이지음스튜디오 ▶음악:달파란 ▶공개:2024년3월1일/청소년관람불가/133분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