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은 인간은 저 혼자 살 수 없으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영위하고,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주로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이런 명제가 납득된다. 그런데, 꼭 인간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보다는 여럿일 경우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으니. 여기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개봉된다. 13일(수) 개봉하는 스페인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로봇 드림>(원제:Robot Dreams) 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거대로봇의 지구 지키기나 소년소녀의 꿈 이야기가 아니다. ‘개’ 한 마리와 ‘로봇’ 한 대의 상호작용과 유대, 관계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치 사람처럼, 사회적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배경은 1980년대 뉴욕 맨해튼. 주인공 ‘개’(Dog)는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혼자 냉동 피자를 돌려먹고 소파에 앉아 TV만 보고 있는 외로운 존재이다. 가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커플의 풍경이 부럽다. 그런데 TV에서 로봇 친구 광고를 하고 있다. “이건 주문해야 돼!” 곧바로 배달이 되고, 개는 상자를 뜯어 조립한다. 개는 로봇을 데리고 뉴욕 거리를 걷고,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롤러스케이트장에서 Earth, Wind & Fire의 노래 ‘September’를 들으며 같이 즐거워하며, 교감한다. 즉, 친구가 되어간다. 여름이 지날 무렵 둘은 절친이 되어 있다. 여름이 되어 해변에서 물놀이를 한다. 로봇이 물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날 해변을 찾았지만, ‘내년 여름까지 폐쇄’ 되었다는 푯말을 보게 된다. 해변에 접근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백사장에 드러누운 로봇. 이제 내년 6월 1일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불거나, 천지개벽이 되어도 방치된 로봇은 혼자 방전되고, 녹슬어갈 것이다. 개는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로봇도 얻게 된다. 이제 그 개와 그 로봇은 ‘September’를 들으며 함께 춤추던 그 때를 기억할까. 이렇게 저렇게 재조립되어 다른 모습이 되었더라도 알아볼까. ‘개’는 ‘로봇’을 생각하고, ‘로봇’은 ‘개’를 꿈꾼다. 끝까지 둘의 해후와 선택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영화는 놀랍게도 198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 아니 출연하는 모든 동물 캐릭터의 손에는 핸드폰이 없고, 로봇은 아직 AI가 뭔지 모른다. 게임기라고는 오직 테니스 치는 ‘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뉴욕에는 쌍둥이빌딩이 우뚝 서 있다. 그 뉴욕을 거닐며, 개와 로봇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정을 쌓는 것이다.
2007년 발표된 사라 바론의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작품은 작년 칸 영화에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앙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콩트레샹부문)을 받았고, 제96회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수상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돌아갔다) 이 영화는 대사가 없다. 개가 짖는 소리도, 로봇이 윙윙대는 소리도 없다. 1980년대 풍의 팝송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개와 로봇이 등장하는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이다.
▶로봇 드림(원제:Robot Dreams) ▶원작: 사라 바론(Sara Varon) 그래픽노블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Pablo Berger) ▶수입·배급:㈜영화사진진/ 공동배급:(㈜하이스트레인저 ▶개봉:2024년 3월 13일/전체관람가/10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