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언제부터 알고, 언제부터 사랑했었나요?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나면 옆에 앉은 사람을 잠시 안아보고, 손을 잡고, 등을 두드리고, 살포시 안아볼지 모르겠다.만약, 오래된 연인이라면. 오늘(6일) 개봉하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어진 사랑일 수도 있고, 지나간 사랑일 수도 있다. 여하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로맨스이다.
영화는 뉴욕의 한 바에서 시작된다. ‘동양 남자, 동양 여자, 그리고 서양 남자’ 이렇게 셋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레이션처럼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누가 누구와 연인인지, 혹은 지금의 연인은 누구일지, 혹은 누가 관찰자일지 궁금해진다. 영화는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초등학교. 해성과 나영은 친구 사이이다. 영화감독인 나영의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해성과 나영은 과천 서울랜드 미술관 앞 서 있는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앞에서 마지막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서로를 잊어간다. 12년 뒤, 이젠 ‘노라’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바쁘게 사는 나영은 문득 해성이 궁금해진다. 인터넷 페이스북에서 해성을 찾았고, 둘은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한다. 반갑다. 그런데 서울과 뉴욕의 삶은 둘의 인연의 끈을 다신 한 번 놓게 한다. 또다시 12년의 공백이 지난 뒤, 해성은 나영을 찾아 뉴욕으로 온다. 이제 24년의 인연이 어떻게 될지 관객들은 지켜보게 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로맨스의 정석을 따른다. 남자가 군대에 가든지, 여자가 유학을 가든지, 저 멀리 춘천으로 떠나든지. 자신의 짝이었다고 믿었던, 혹은 단지 옆자리의 친구였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각자의 삶은 영위되고 있고, 각자의 미래는 진행되고 있지만 아쉬움과 미련의 발걸음이란 게 있다.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 나누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못 이룬 사랑일지라도, 혹은 어긋난 인연일지라도.
셀린 송 감독은 평범하고도, 다를 것 없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24년의 궤적을 통해,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해성의 입장에서는 ‘어릴 적 사랑’을 놓아 보내지 못하는 미련을, 나영의 입장에서는 ‘떠나보내고 싶은 12살의 감성’을 결국, 마침내 정리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더불어 자신의 사랑을 실험해보고 확인하는 남편 아서도 있다.
영화는 결국 ‘인연’이라는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와 시간 속 기억의 산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연은 한자로 ‘因緣’이라고 쓴다. ‘因’은 원인이자 근본이며, ‘緣’은 ‘이어질 기회, 명운’을 뜻한다. 결국 ‘어떤 계기로 이어질 둘 사이는 운명’이란 것이다. 그게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로 즐거울지, 백년을 해로할 부부일지, 천년을 이어갈 사랑일지는 현재의 충실한 삶에 달렸을 것이다. 셀린 송 감독과 유태오는 그런 인연의 겁(劫)을 촘촘히 쌓아 올린다. 엄청난 시간의 흐름(八千劫)의 인연이 쌓여 부부의 연을 맺는 나영과 아서가 진정한 승자일지 모른다.
극장 문을 나서면 역시 불교에서 온 말 ‘수연’(隨緣)이 떠오를 것이다. 시간의 늪에 빠져 헤매지 말고, 지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라는 것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지나간 삶’이고 ‘이미 끝난 생’일지도 모른다. 해성은 서울로 돌아와서 분명 술을 마실 것이다.
▶ 패스트 라이브즈 (원제:Past Lives) ▶감독: 셀린 송 ▶출연: 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투자 : A24, CJ ENM ▶배급: CJ ENM ▶개봉: 2024년 3월 6일/ 106분/ 12세이상관람가
[사진=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