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상처는 천년이 가도 아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았던 ‘위안부’를 설명한 인터넷 위키백과의 영문 표제어는 ‘Comfort women’이다. 다분히 톤 다운된 용어이다. 역사적으로는, 그리고 국제법적으로는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일컫는다.
한국의 소녀들만 끌려간 것이 아니다. 20만에서 30만에 이르는 소녀들이 일본 제국주의 더러운 욕망의 가엾은 피해자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감춰졌던, 애써 외면했던 역사의 어두운 진실은 1990년대 들어 봇물처럼 터졌다. 한국(북한도 포함됨)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필리핀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의 군화발이 지나간 자리자리에 꽃잎들이 졌다. 그 때 그곳에 있던 외국인(네덜란드)도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지 75년이 되어가지만 이 문제는 ‘법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순전히 가해자 일본 때문이다. 일본의 진실한 반성, 사죄를 바탕으로 한 미래지향적 아시아평화 다지기는 요원한 것이다.
피해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 TV프로그램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작품을 통해 흘린 할머니의 눈물은 세월의 강이 되고, 망각의 늪이 되고, 죽음의 진혼곡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밤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그분들을 다시 만난다. 캐나다 출신 티파니 슝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폴로지>(The Apology)이다.
티파니 슝 감독은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이들은 가슴 속에서 피고름이 되어 버린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길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수요집회에 나가 한국의 청소년에게 그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일본을 찾아가서 역사를 잊은 그들에게 나직하게 말한다. 13살에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꾀어 위안부로 끌려간 길 할머니는 일본정부에 사과하라고 말한다.
“13살에 당해가지고, 70년을 지났지만 날마다, 하루도 사람 사는 것같이 살아보지 못했다. 사과를 한다고 그 상처가 없어집니까. 상처는 안 없어지지만 마음은 조금 풀어지니까. 그날을 기다리죠.“ 할머니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일본의 여대생들이 눈물을 흘린다.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느낀다.“며 ”교과서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야기“라며.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기억도 끔찍하다.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털어놓지를 못한다. 어머니만 알고 있다. 동네사람이 다 당했다는 사실. 할머니는 70년이 지나서, 그 이야기를 가족에게 털어놓는다. 가슴에 한이 맺힌 그 세월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오.
위안부였던 할머니는 야속한 시간의 흐름 속에 늙어가고, 죽어간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의 피맺힌 부르짖음도, 방방곡곡의 소녀상이 끝없이 눈물을 흘려도, 가해자의 낯빛은 변하기 않는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잘못을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족속이거나,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야만적 민족성 때문일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살아계신 분들 건강하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어폴로지: 나비의 눈물>은 17일(토) 00시 45분에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