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굼벵이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 신세인 용남(조정석)을 위한 헌사 같다. 조정석과 임윤아 주연의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문법을 비틀어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 본능을 유쾌하면서도 긴박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진 유독가스 테러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영화는 거창한 영웅주의 대신 대학 시절 산악부 활동으로 다져진 '클라이밍'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특기 하나로 사선을 넘나드는 청춘들의 활투극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영리한 지점은 재난의 원인을 파헤치는 정치적 설정 대신 "왜 옥상 문을 잠가 두는가"와 같은 실질적인 생활 밀착형 분노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고층 빌딩 숲에서 유독가스는 스멀스멀 차오르고, 구조 헬기는 요원한 상황에서 용남과 의주(임윤아)는 오직 맨몸과 기지로 도심을 활주한다. 조카에게조차 무시당하던 백수 청년과 고단한 직장 생활을 견디던 부점장이 타인의 생명을 짊어지고 극한의 도전에 나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숭고한 히어로물이 된다.
특히 극 중 드론의 활용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서사에 녹아들어 긴장감을 더한다.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임윤아의 꿋꿋한 에너지가 빚어내는 콤비 플레이는 영화의 중심을 잡고, 고두심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은 재난극의 비극성을 풍성한 가족애로 치환한다. <엑시트>는 웃음 끝에 뜻밖의 눈물을 선사하며, 누구에게나 세상을 구할 '한 방'의 재주가 있음을 증명하는 2019년 한국 영화의 신기원이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