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오키쿠와 세계>가 20일(수) 개봉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몇 편의 영화가 소개된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 감독의 최신작이다. 일본 원제는 <せかいのおきく>(세계의 오키쿠)이다. ‘세계’(世界) 속에 존재하는 ‘오키쿠’에 대해 알아보는 작품이다. 여자이다. 오키쿠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삶은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오키쿠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름다운지 지켜보게 된다. 영화는 흑백이다. 간간이 컬러풀한 순간이 캐치된다.
영화는 일본 에도(江戸)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 체제를 확립하고 200년 이상 이어온 ‘권력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던 시절이다. 내부적으로는 권력층이 와해되고, 외부에서 ‘신문물’(종교 포함)이 개방의 문을 쿵쿵 두드리던 시절이다. 민초, 혹은 서민의 삶은 고달프다. 받들어 모실 영주가 몰락하며 사무라이들도 각자 제 살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야외 헛간(‘변소’) 처마 자락에 세 명의 청춘이 비를 피하고 있다. 똥 푸는 남자 야스케, 파지(폐지) 줍는 청년 추지, 그리고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다. 이제부터 살기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분뇨수거를 업으로 하는 남자의 이야기이기에 영화는 온통 똥내가 진동할 지경이다. 다행이다. 흑백이고, 모든 것이 아날로그스럽다.
야스케와 추지, 오키쿠는 저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 돌아다니며 수거해서는 쪽배나 시원찮은 수레에 싣고는 교외로 나가 거름으로 쓸 농가에 판다. 냄새 나고, 다들 꺼려하는 일자리지만 어쩔 수 없다. 추지도 야스케와 함께 그 일에 나선다. 이들은 지켜보는 오키쿠와, 오키쿠를 훔쳐보는 추지. 어느 날 오키쿠의 아버지(몰락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나갔다가 결국 칼에 쓰러진다. 오키쿠도 목을 다쳐 그날 이후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소리는 사라지고 똥내와 흑백의 세상만이 남는다. 청춘의 사랑, 열정은 시대의 어둠과 정적을 깰 수 있을까.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관객을 고요와 관조, 그리고 사람의 정(情)으로 묶는다. 꽁꽁.
무엇보다 이 영화는 4DX플러스로 만들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그것이 SMELL까지 되는 스페셜관이라면 정말 보기 고역일 것이다. 그리고 흑백으로 만든 것도 참 다행이다. 화면은 야스케와 추지가 매일 겪는 일의 뭉텅이와 편린을 아낌없이 뿌려주니까. 물론, 영화는 그런 오물 속에서 소중한 것을 건질 수 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처음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자연친화적인, 순환론적인 세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분뇨수거도, 폐지수거도. 자연에서 온 것, 자연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것 같고, 사무라이이의 몰락처럼 세상은 진화하는지, 진보하는지 어쨌든 앞으로 전진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들은 숲을 걸어가는 세 사람을 지켜본다. 이 길을 가면, 저 고개를 넘으면, 전진하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4K UHD올레드’의 세상일 수도 있고, ‘샤넬5’ 향내가 진동할 신세계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걷다 보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결국 자기 옆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눈이 멀어도, 귀가 멀어도, 코가 막혀도 보아야 할 필견의 영화이다.
▶오키쿠와 세계 (원제:せかいのおきく) ▶감독: 사카모토 준지 ▶출연: 쿠로키 하루, 이케마츠 소스케, 칸이치로, 마키 쿠로도, 사토 코이치, 이시바시 렌지 ▶개봉: 2024년 2월 21일/12세이상관람가/90분 ▶수입/배급: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