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살인자ㅇ난감>은 공개 전에는 원작 웹툰을 읽은 독자의 기대를 모았고, 제작발표회 즈음해서는 신규 유입자들이 작품 제목을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하나’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설 연휴 전날 공개가 되자 작품에 대한 기대와 함께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극중 한 인물이 모 야권 정치인과 닮았다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그 지도자(와 지지자)도 난감하고, 넷플릭스도 난감하다. 무엇보다 난감할 사람은 이창희 감독일 듯하다. 직접 물어보았다.
Q. 초반 ‘이탕’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반 들어가면서 혼란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창희 감독: “저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5부부터 살짝 산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수정해야하나 생각하다가 이것도 키치함, 자유분방함, 문법적 파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8부에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게끔 각색을 했다. 호불호가 있다는 것도 알고, 혹평하는 글도 봤다. 그런 것을 봐야 저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Q. 코미디 같이 시작하다가 형사스릴러로 바뀌는 것이 최고다는 평이 있다.
▶이창희 감독: “재밌게 봐주신 분에게 감사드린다. 원작에서 보이는 것은 흔한 이야기가 이니다. 웹툰은 보고 처음 든 게 이걸 할 수 있을까였다. 괜히 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것 아닐까, 하면서도 ‘이거 이상하다’ 했었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어서 시청자에게 먹힐까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Q. 참여는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이창희 감독: “웹툰을 보지 않았는데 CP(책임프로듀서)님이 보고 추천해주셨다. 재미와 별개로 영상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다. 김다민 작가가 초고를 썼고, 회의도 했고 다 쓴 후 제가 각색을 했다. 영화적인 시스템으로 작업을 했다.”
Q. 웹툰에서는 검사를 납치한 뒤 고문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드라마는 복학생의 일상적인 이야기로 문을 연다.
▶이창희 감독: “처음엔 웹툰대로 찍었다. 지 검사 장면부터 찍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작대로 이탕이 흑화된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새롭게 생각해 보자고. 많은 스릴러나 공포물은 첫 장면부터 톤앤매너를 잡고 시작하는데 우리는 (원작의) 정보가 하나도 없는 분들이 보면서 ‘이건 MZ세대의 애환을 담은 사회드라마인가’하고 보다가 갑자기 살인 장면을 보게 된다면 이질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진행이 마음에 들었다.”
Q. 이탕이 다크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인가, 선악의 이야기인가.
▶이창희 감독: “무엇이 진짜 악이냐는 이야기는 <비질란테> 등 많은 작품에서 봐왔다. 원작이 나온 것이 14년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것을 질문하기엔 조금 철이 지난 것 같았다. 이미 그것은 명백한 모순이란 것을 알기에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이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접근하려고 했다. 다크히어로의 탄생이 맞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방해하는 장난감 형사가 키를 쥐고 있다가, 그도 이탕의 능력 안에 녹아들면서 히어로가 탄생하는 이야기로 변주를 주었다.”
Q. 원작에서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어느 정도 가져오려고 했는지.
▶이창희 감독: “전작(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할 때는 싱크로 율에 신경을 썼다. 인기 원작과 다르면 욕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그 작품에서 현봉식 배우는 원작과 굉장히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연기를 잘하고 몰입을 하면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더라. 싱크로 율을 맞춰야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그리고 원작 웹툰 캐릭터가 ‘2등신’으로 묘사되어있기도 하고, 연기를 잘하는 세 배우 때문에 이야기를 납득하게 된다.”
Q. 송촌 역의 이희준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창희 감독: “웹툰을 보고 송촌 역으로 누굴 캐스팅해야하나 고민했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에 나온 모습을 보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주일 만에 연락주셨다.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자신감 넘치고, 신나게 연기하셨다. 한 번은 배우님 집에 갔더니 ‘시라소니’ 사진을 붙여놓으시고 캐릭터에 몰입하더라. 배우에겐 어떻게 연기할지를 열어놓고 연출하는 편이다. 이번엔 옆에서 ‘잘 한다. 잘 한다’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Q. 손석구는 어땠는지.
▶이창희 감독: “세 배우 모두에게 의지를 했다. 각색 과정에서 막힐 때가 많았다. 그러면 배우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편하다. 그 캐릭터에 대해서는 배우가 감독보다 더 잘 안다. 최우식 배우는 내게 질문을 많이 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답을 유도한 것 같다. 장난감 캐릭터도 각색하면서 전사까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희준은 초반 단계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인 것이다. 그래서 함께 송촌의 전사를 수정했다. 송촌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같이 바꿔보았다. 그런 이야기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편집에서 들어냈다.”
Q. ‘렉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그런데 장난감 형사는 그 개를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창희 감독: “난감은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는 캐릭터이다. (병실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렉스도 그런 처지인 셈이다. 그래서 7화 이야기에 렉스의 전사를 놓은 것도 그런 의도였다.”
Q. 렉스 이야기가 나와서. 원작에서 여옥(정이서)의 살해 뒤 상황은 아주 끔찍하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렉스가 침으로 증거(지문)를 다 핥았다고만 나온다. 최근 넷플릭스 작품들은 ‘잔인한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데, 그 장면을 그렇게 처리한 이유는?
▶이창희 감독: “저는 개인적으로 잔인한 걸 싫어한다. 하지만 리얼리티는 좋아해서.(하하) 렉스의 행동을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다. 넷플릭스도 같이 고민했다. 결국 그 장면은 직접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상상으로 맡겨두는 게 아름답지 않나요? (하하) 내 말은 그렇게 하는게 재밌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에 대해선 사실 박형사(현봉식)가 언급하긴 한다.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Q. 원작을 보면 여러 생각이 날 수가 있다. 감독님은 어떤 점에 주목했는지.
▶이창희 감독: “원작을 보면서 모순되는 것,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원작 자체가 만화 같기도 하고 딥한 측면이 있다. 그런 모순된 것들을 갖고 오고 싶었다. 내용도 모순적인데 화법도 모순적으로 간다면, 그런 이질감과 인물들의 아이러니를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땠는지.
▶이창희 감독: “크리에이티브를 억압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를 주기만 할 뿐 강요하지는 않았다. 사실 너무 관여를 안 해서 놀랐다. ‘알아서 하세요’라는 반응이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사실 어려운 것이 있으면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면 좋은데 말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내가 책임져야하는 것이고, 영화처럼 찍으려고 한 것이다. 김다민 작가의 글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감독이 하는 게 영화적인 작업이었다.”
Q. ‘노빈’역으로 신인 배우 김요한을 캐스팅했다.
▶이창희 감독: “인지도를 떠나서 그 역할에 딱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많은 배우들은 찾아봤다. 과체중인 배우들은 다 본 것 같다. 김요한은 정말 ‘노빈’스러웠다. 오디션 때 연기를 시킨 것이 아니고 대화를 나눴다. 생각하나 캐릭터보다 어렸지만 ‘노빈’역에 너무 찰떡이었다. 날것의 연기로 리얼리티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Q. 선여옥을 연기한 정이서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창희 감독: “대화를 해 보니 매력적인 친구였다. 여옥 역으로 정이서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저한테도 도전이었다. 싱크로율만 따지자면 더 맞는 배우가 있었다. 정이서는 안정적인 연기를 하는 친구가 아니라 항상 도전하는 배우이다. ’욕을 안 먹을 거야‘가 아니라 ’욕을 먹더라도~‘ 자세이다. 이상한 캐릭터를 생각했었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왔다. 그런 면에서는 가장 잘한 친구가 아닐까.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Q. 원작에서 어떤 변주를 주려고 했는지.
▶이창희 감독: “원작에서 살짝 다른 결말을 선택한 것 같다. 원작에서는 이탕이 노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계속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살인‘처럼 조금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생각했었다. 그런 상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
Q. 이탕이 ’다크히어로‘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죄와 벌>과 관련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이창희 감독: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이렇게 ’다크히어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올 줄 몰랐다. 기획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많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나온 소재여서 뭐가 죄이고 뭐가 단죄인지 말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그 관계성에 집중했다. 장난감은 이탕에 대해 우연인지 능력인지 계속 부정한다. 그러다가 장난감이 결국 이탕의 능력 안에 스며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자기모순으로 나온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이탕이 돌아오는 것과 새로운 살인을 유추하는 설정 때문에 ’다크히어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Q. 원작 웹툰을 옮기면서 의도적으로 빼버린 내용이 있다면?
▶이창희 감독: “원작에서 공원에서 담배 피는 여자를 밀어버리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쁜 사람, 영아살해범이었다는 것이다. 이걸 찍어야할지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촬영 준비는 다 했다. 아기는 우리 애를 생각했었다. 아기가 신생아 때였다. 가만있는 사람을 그냥 밀어 죽이는 것이라서. 결국, 회의 끝에 없앴다. 우식씨도 그 장면이 꼭 필요한가 말했었다. 대신, 그 내용이 지 검사 부분에 투영된다. 장애인 부모도 민감한 부분이라 제외했다. 14년 전의 정서가 지금과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Q. 최근 논란이 된 장면과 관련하여, 의도한 것인지 실수였는지.
▶이창희 감독: ”숫자나 색깔을 넣어 연상시키는 그런 것은 유치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넣은 것은 관객분이 몰라도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시작할 때 이탕의 침대 위에는 짐이 올려져 있다. 이탕이 그 곳에 살지 않기에. 그런데 나중엔 정리되어 있다. 언젠가 이탕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가 치운 것이다. 그리고 경아는 왜 그런 집에 살까. 바다 끝에 산다. 세상 끝 간 데까지 도망간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말하자면 5화에서 이탕이 꿈속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강가에서 춤추는 댄서를 보면 그 속에 편의점 낮 알바가 있다. 이탕의 알람 소리와 댄스 장면 음악이 같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것을 숨겨놓는다. 남들 이 그냥 봐서 아는 것은 나쁜 연출이고, 촌스러운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숫자‘ 문제는, 공교롭게 네 자리가 일치하는데) ”그것도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의상팀에서 알아서 한 것이다. 숫자는 너무 많다. 갖다 붙이면 다 그럴 것이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Q. 어두운 스타일의 작품이 많다. 경쾌한 작품을 할 생각은 없는지.
▶이창희 감독: ”나도 밝은 것 하고 싶다. 그런데 멜로를 해야지 하고 쓰다보면 누가 죽어있다. 자꾸 그쪽으로만 생각이 기울더라. 취향이 그런가보다. 다크한 것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멜로, 밝은 것을 해보고 싶다. 이번에 작업할 때 색보정을 해서 넷플릭스측에 보여줬더니 ’너무 어둡지 않나요?‘하더라. 난 이게 기본 값인데 말이다. 그래서 더 밝게 한 것이 이번 작품이다.“
Q. 데뷔작 단편 ’소굴‘도 어두운가? 원래 히치콕이나 느와르 좋아했었나?
▶이창희 감독: ”느와르를 좋아한다. 대학졸업 작품까지 멜로를 찍었다. 그게 근친상간이라 평이 안 좋았다. (하하) 졸업하고는 <소굴>을 찍었다. 그동안 내가 상 받으려는 욕심에 예민한 것을 했나보다 생각하고 재밌는 걸 해야지 하고 찍은 게 <소굴>이다. 그게 상(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2011)을 받고, 이후 비슷한 결의 작품 제안들이 오더라. 그동안 다 원작이 있는 것이었다. 지금 제 오리지널을 준비하고 있다. 잘 되었으면 한다. 아, 그것도 어둡다.“
Q. 이탕의 능력에 대한 접근은?
▶이창희 감독: ”이탕은 이게 우연인지 능력일지 끝까지 질문하는 캐릭터이다. 그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초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감독의 질문이고 명확하게 답을 한 것은 아니다. 이건 우연이고, 이런 우연이 일어날 확률이 ’0‘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접근했다. 송촌도 원작과 다르다. 이 사람은 과연 확신이 있었을까. 마음속에 모순점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접근했다.“
Q. 하상민을 연기한 노재원은 쓰레기연기의 끝판왕인 것 같다. 그런 민감한 소재의 연기에 대해.
▶이창희 감독: ”민감하죠. 민감한 것은 민감한 것이고, 배우가 그 배역의 도덕성에 빠지면 실패한다. 현장에서는 ’넌 그냥 나쁜 놈이야‘라고 몰입해야한다고 말했었다.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면 실패한다. 배우는 배역에 몰입하면 된다.노재원 배우는 워낙 몰입을 잘하는 배우이다. 노재원 배우는 업계에선 소문이 난 배우이다. 이희준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작품 촬영 들어가기 1년 쯤 전에 서독제였나, 영화제에서 노재원에게 상을 준 적이 있다더라. 그때 ’우리 곧 현장에서 만나자‘라고 했는데, 이렇게 폭풍성장한 배우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민감한 소재는 내가 책임질 테니, 몰입하세요. 나쁜 생각만 하세요‘라고 했었다.“
** 노재원은 2021년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1위를 했었다. **
”나는 완벽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많이 열어두고 작업하는 편이다. 배우 연기에서도, 현장에서 많이 바꿔서 하는 편이다.“
넷플릭스 8부작 <살인자ㅇ난감>은 지난 2월 9일 전편이 공개되었다. 최우식(이탕), 손석구(장난감), 이희준(송춘), 김요한(로빈), 권다함(용재), 현봉식(박형사), 정이서(선여옥), 조현우(여부일), 노재원(하상민), 임세주(최경아), 이중옥(강상묵), 이소원(연서), 이주원(장갑수,난감父), 오혜원(이유정) 등이 출연한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