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원더풀 라이프>(1999), <아무도 모르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브로커>(2022) 등 내놓는 작품마다 한국 영화팬과 호흡을 함께 해온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이 지난 주 한국을 찾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지난 연말 개봉된 영화 <괴물>(2023)의 흥행감사 인사를 위해 특별히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이다. <괴물>은 지난 주 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일본 ‘실사’영화, 예술영화의 흥행력을 과시했다. 2박 3일의 방한 일정의 피날레는 <괴물>의 배급사 NEW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취재진과의 간담회였다. 이미 부산영화제와 온라인 간담회 등을 통해 <괴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지만 영화에 대한 풀리지 않은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이날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는 영화 속 상징과 숨겨진 의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Q.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이후 일본 극영화가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괴물>이 이렇게 한국에서 사랑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일단 작품이 갖고 있는 힘이 중요하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놀랐다. 함께 일한 스태프 모두가 잘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사카모토 유지(坂元裕二) 작가의 극본이 대단했다. 무엇보다도 전개방식이나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힘 등 각본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을 여러 번 찾아오면서 형성된 팬들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Q.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런 사회적 문제가 생기고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한국에서 그런 사건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개봉되었을 때 그 곳에서도 왕따 문제와 자살사건이 있었다. 그런 사건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늘어났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2018년 12월 무렵에 기획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전에 기획된 것이다.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개봉하기까지 코로나로 힘든 일들이 많았다. 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재의 사회 모습을 보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괴물’이라고 말해버린다. 그런 것들에 대해 사카모토 유지가 먼저 위기의식을 느낀 게 아닐까. 이미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예견이라도 하고 쓴 것 같다. 그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괴물
Q. 영화에서 느껴지는 퀴어적 감성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처음 플롯을 읽었을 때 이건 퀴어 소년들을 그려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미리 공부를 시켰다. 섬세한 연출과 섬세한 대응,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다. 평소 아이들과 작품을 찍을 때는 캐스팅한 뒤 완성된 대본을 주지 않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고쳐 쓰는 방법을 사용했었다. 장면의 대사와 상황을 전달하고 대사를 배역에 어우러지게 연출했었다. 그런데 <괴물>에서는 그런 작업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대본을 읽게 했고, 전문가를 통해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성교육 수업을 받게 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신체 접촉이나 심리 표현에서 문제가 없도록 신경을 썼다.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내적, 외적으로 아이들이 부담 없도록 연출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면에 프로듀서가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도 여전히 숙제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Q. 한국관객들과의 반응이나, GV에서 기억나는 특별한 질문이 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어떤 평을 얻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두 소년 배우가 한국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이번에 서울에 와서 GV 때 보여준 관객반응은 일본과 마찬가지였다. N차 관람을 한 관객이 많았다. 실제 영화를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다르게 보인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보는 분이 많다. 10번 넘게 봤다는 한국 관객분도 있더라. 어떤 분은 저보다 더 디테일하게, 깊이 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작품을 통해 엄청 행복을 느낀다.”
Q. 작품을 여러 번 보면 생기는 의문이 있다. 미나토가 지우개로 뭔가를 지우는 장면에서 바닥에 지우개가 떨어지다. 그걸 다시 주워들 때 잠깐 멈추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을 넣은 이유가 무엇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 영화에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몇 가지 묘사가 있다. GV에서도 그런 질문이 많이 나왔다. 특히 슈퍼마켓에서 교장선생님이 여자아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장면이나 미나토가 집에서 지우개를 떨어뜨리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똑같은 자세로 있는 장면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이 작품에서는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후반부에 그에 대한 해답이 밝혀지는데, 사카모토 유지가 쓴 극본에는 영화 전반부에 엄마가 느끼고, 엄마가 얻은 정보만으로 학교 탓을 한다. 그런 엄마의 기분과 정서에 관객도 똑같이 젖어들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교장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감정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어서 만든 전반부라고 생각한다. 저도 그런 느낌으로 연출을 했다.”
“지우개 줍는 장면에 대해서 쿠로카아 소야(미나토)에게는 ‘기본적으로 감정이란 것은 얼굴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끝에도 있고, 배에도 있고, 발에도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무언가 의식해서 표현하려고 하기 보다는 몸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마도 그런 것을 의식해서 연기했을 것이다. 그 장면에서 미나토는 주우려는 자세 말고, 그 뒤 벌어질, 줍고 나서 자기가 쓴 글을 막 지우는 그 부분에서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배우에게는 항상 동작으로 감정을 채워나가라는 이야기를 했다.”
괴물
Q.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소년이 뛰어가는 장면의 연출 포인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엔딩을 찍을 때 두 아이에게 일단 기뻐해라, 소리 질러도 되고 뛰어올라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로서 괜찮다는 사실, 스스로 축복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두 아이가 뛰어가다가 이쪽을 돌아보는 장면을 생각했었다. 그 돌아보는 장면을 사랑해서 엔딩 장면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찍고 나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 음악을 입혔을 때 보니, 그 곡의 스피드 자체가 두 아이가 돌아보며 멈추는 게 아니라 그대로 뛰어가고 그 때 엔딩 롤이 올라가는 것이 둘을 더 축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편집 마지막 단계에서 고친 것이다. 그때의 느낌을 한 마디로 하자면 ‘축복’이었다.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라는 곡이 마침 딸이 태어났을 때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서 만든 곡이라 생명을 축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더 담아낸 것 같다.”
Q. 이전 온라인 간담회에서는 영화 속 ‘방관자’가 ‘괴물’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제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요리의 아버지나 교장선생님처럼 인간성을 아예 잃어버린 존재를 괴물이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 사람보다 주인공 아이를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은 가까운 엄마, 부모,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적인 행복이나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호리 선생님처럼 가끔 ‘남자답게’라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동조의 압력’, 남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의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반에도 그런 생각이 깔려있다. 반에서 둘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TV에 나오는 탤런트 흉내를 내며 요리를 놀리는 것이다.아마도 지금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자체가 원래 나빠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얼핏 보았을 때 평범하고 일반적인 엄마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우린 괴물일지 몰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을 관객들이 알아차렸으면 한다. 일반화 시켜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요리 아빠나 교장 선생님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미나토 엄마나 선생님의 입장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이고 평범함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면서 동시에 주위에서 괴물 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 어쩌면 나도 그런 괴물일지 모른다는 것을 언젠가는 깨닫게 될지 모른다. 편집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뛰어가던 아이가 돌아보며 우리를 쳐다보는 그런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Q. 극중에 나오는 ‘괴물놀이’는 일본에서 흔히 하는 아이들 놀이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런 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각본가(사카모토 유지)가 생각해낸 것 같다. 일반적인 놀이는 아닌 것 같다. 잘 모르기는 한데 그 놀이는 자기가 무엇인지는 스스로는 모르고 있고, 주위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테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카모토 류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촬영했다.” (향후 사카모토 류지와의 작업 계획은?) “아직 정확하게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닌데 또 다시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Q. 서울에 와서 한국 영화인은 만났는지, 한국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이번엔 누구와 작업하고 싶은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번에 한국에서 송강호, 배두나 배우 만나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나눴다. 즐거운 잡담이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그동안 무슨 작업했는지 이야기 나눴다. 같이 일하고 싶은 한국 배우는 굉장히 많지만 여기서 언급하면 그 이름만 퍼져서 다른 사람 오퍼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많이 있다는 정도로만 밝힌다.”
Q. [플랜75]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75]가 곧 한국에서 개봉된다. 그 영화의 단편 <십년>(十年, Ten Years Japan)의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플랜75> 물론 봤다. 그 장편영화의 바탕이 된 단편영화 기획에 이름을 올려 종합감수를 맡았었다. 젊은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많이 올라왔었다. 그 프로젝트는 원래 홍콩의 <10년>이 바탕이 되었지만, 일본 기획안에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을 비롯하여 이시카아 케이(石川慶) 감독도 포함되어 있다. 그 기획을 통해 다음 세대의 재능 있는 감독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단편을 바탕으로 끈기 있게 장편으로 만든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플랜75>자체가 훌륭한 영화이다. 꼭 봐주시기 바란다. 바이쇼 치에코라는 여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아주 멋있게 숨 쉬고 있으니 꼭 기사화 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카와와다 에마(川和田恵真) 감독의 영화 <마이 스몰 랜드>(マイスモールランド)도 한국에서 개봉 중이라고 들었다. 같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홍보입니다.”
** 카와와다 에마 감독의 <마이 스몰랜드>는 고레에다 감독이 이끄는 영상집단 분후쿠(分福)작품이다**
괴물
Q. 극본가 사카모토 유지와의 작업에 대한 감탄은 많이 했었다. 이런 대본을 직접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을 제가 썼더라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초반 플롯을 읽었을 때에 나란 사람은 결코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각본가와 오랫동안 의견을 나누고, 뉘앙스에 대해 많이 물어보았다. 그렇게 3년을 이어가니 제가 각본을 쓰지 않았지만 거리가 멀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사카모토 유지의 압도적인 각본은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뛰어나고, 관객들을 극에 끌어들이는 힘이 강했다. 제가 쓰는 각본은 굉장히 사사로운, 잡다한 묘사들이 겹쳐나가며 그 결과 어느 정도 스토리가 보이게 되는 방식이다. 사카모토 작가처럼 이야기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고, 점점 앞으로 끌고 나가는 것을 저는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에 공부가 많이 되었고, 좋은 콜라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오랫동안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다 보니, 제가 쓸 수 있는 영화의 구성, 인물상, 대사라는 것이 유사해버릴 수밖에 없고, 스스로에게 질리는 지점이 있었다. 이번에 <괴물>에서 너무나 존경해 마지않는 각본가와 일을 하게 되어 큰 경험이 된 것 같다.”
“특히나 음악실 장면에서 굉장히 상징적 장면이 있는데 각본가의 능력이 드러난다. 교장 선생님과 미나토가 언어가 아니라 본인의 진실한 마음을 악기소리에 담아서 보여주는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각본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을 받은 장면이다. 저는 절대 이런 신을 못 쓴다. 제가 그 장면을 썼더라면 음악실에서 악기를 부는 사람은 미나토와 요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 미나토는 가장 먼 곳에 있는, 가장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합주한다.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함께, 그 순간에만 같이 악기를 부는 다이내믹한 장면은 사카모토 유지 아니면 쓸 수 없을 것이다. 대단한 장면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한국 관객 분들의 사랑에 대해 더 말씀 드리고 싶다. 저의 은인이기도 한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전)위원장님이 이곳에 와 계신다. 제가 데뷔할 때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할 때였다. 부산영화제와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항상 저를 초청해주었다. 김동호 위원장과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일본영화를 사랑해주셔서 계속 저를 영화제로 불러주었다. 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일본 영화를 보게 된 것 같다. 그분들 덕분인 것 같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 영화는 많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남은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릿속에 있는 영화의 반은 못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 말고도, 일본 밖에서도 만들고 싶은 작품이 몇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배우들과 함께할 계획도 있다. 이른 시간 내에 실현시켰으면 좋겠다. 아직은 다음 작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꼭 오늘 같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괴물>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새로운 기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기 바란다.”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