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7일) 개봉하는 일본영화 <플랜75>는 핸드폰 요금제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나이가 75세에 이르면, 국가가 그들의 생명을 단축시켜주는-안락사-제도이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라야마 부시코>의 나라이자, 노인에 대한 운전면허증 반납제도가 활성화 되었다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니 관심이 간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문제’는 효(孝)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 경제성’ 같은 실제적 이슈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10년>(Ten Years Japan)의 한 단편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장편으로 그 서사구조를 확대했다. 천인공노할, 비인간적 상상력이지만 그 무게감이 만만찮다. 영화 개봉에 앞서 한국을 찾은 하야카와 치에(早川千絵)감독에게 직접 ‘플랜75’의 가공(可恐)할 미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영화의 도입부는 2016년 일본에서 벌어졌던 사가미하라(相模原)시 살인사건이다. 사건을 아는 일본 관객들은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초반에 이 장면을 넣은 이유는? 어느 정도 정보를 주려고한 것인지.
▶하야카와 치에 감독: “그 사건은 장애인 시설에서 일어난 것이다. 완전히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되었다. 범인이 범행동기를 진술할 때 한 말이 끔찍했다. ‘장애인은 필요 없는 사람이다. 사회를 살 가치가 없다’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게 범인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일본사회에서 생산성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기조가 만연했다. 그런 사회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든 동기가 생긴 셈이다. ‘플랜75’도 얼핏 보면 친근하고, 아름다운 제도처럼 보이지만,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잔혹하고 폭력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앞부분에 배치한 것이다.”
(사가미하라 사건은 2016년 7월 26일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위치한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이자 증오범죄이다. 당시 26세 남자가 새벽에 침입하여 입소한 장애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19명 사망, 27명이 부상을 입은 끔찍한 증오범죄였다.)
Q. 장애인시설에서 일어난 사건을 노인 문제로 바꾼 이유가 있는지.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간 삶의 가치를 생산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판단하려는 풍조가 커졌다. 사회적 약자에 해당할 장애인, 고령자, 빈곤층, 병든 사람에 대해 ‘당신, 사회에 필요 없어요, 죽어도 괜찮아요’라는 식으로 배제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그 문제의 연장선이다.”
Q. 실제 그런 대상이 되는 나이든 배우들이 그 연기를 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그것은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플랜75’가 좋을 것 같다는 배우도 있었다.”
Q. 일본에서 개봉되었을 때 반향이 컸을 것 같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일본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무서웠다는 반응이었다. (같은 소재의) 단편 <10년>이 나왔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분위기였다면 코로나를 거치면 장편이 개봉되고 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새로운 현상 같다.”
“칸에서 상영되었을 때 프랑스 기자가 그러더라. ‘플랜75’같은 정책이 프랑스에서 나온다면 맹렬한 시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영화 속 설정이 일본에서는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흥미롭다면서 일본인답다고 하더라. 만약 한국에서 그런다면 한국에서도 다들 반대할 것이라더라.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건 일본인의 특성을 반영한 것 같다. 정해진 것에 순종하는 국민성. 그런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조금 갖자는 생각이다.”
Q. 단편 <10년>(Ten Years Japan)은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10년>과 비교해서 <플랜75>는 어떤 변화를 주었나.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이 이야기를 처음 생각했을 때는 장편을 먼저 생각했었다. 그러다 <10년> 이야기가 나왔고, 컨셉도 잘 들어맞아서 참가했다. 그때 생각한 장편은 주요인물이 5명 등장하는 군중극이었다. 그중 한 명의 에피소드를 18분짜리 단편으로 만든 것이다. 그 작업을 하면서 프로페셔널한 스태프와 촬영할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이 컸다. <10년>을 만들고 나서, 그 단편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피디가 함께 장편으로 만들자고 했다. 각본을 고쳐나가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현실이 픽션을 뛰어넘는다. (현실을 암울하게) 부추기는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제제기로 끝나는 영화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를 거치면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Q. 관객을 바라보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처음 미치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부분은 주인공이 초반 시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자기에게 다가올 불온한 기색을 느껴 카메라를 응시한다. 관객과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눈이 마주치면 관객들로 하여금 이것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한다. 그리고 콜센터 직원 요코가 정면을 응시하는 신도 있다. 요코는 처음에는 ‘플랜75’에 대해 죄악감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가 미치를 만나면서 이 제도가 비인간적이며, 잔혹한 처사임을 깨닫게 된다. 제도에 대해 교육시킬 때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를 보면서 방관자인 관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가담하지 않았나요’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Q. 필리핀 여배우가 출연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필리핀 여성을 설정한 것은 실제 일본에서는 간병인이 부족해서 동남아 인력이 많이 동원된다.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생각했을 때 가족의 의미, 커뮤니티 유대관계가 강하다. 힘든 일은 서로 돕는 것은 일본에서도 예전엔 있었다. 현대로 오면서 그런 유대감을 약해졌다. 그런 일본의 모습과 대조하기 위해 넣었다.”
“일본인은 대체로 규율을 묵묵히 따르고, 상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타인을 의식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라는 인물만큼은 자기의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돌아가신 분이 남긴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윤리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같이 일하던 일본 남자가 ‘죽은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리아라는 인물을 기본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고, 단순히 유품을 훔친다는 것보다는 그들의 삶을 이어받는다는 감정에서 나온 행동이다.”
Q. ‘플랜75’ 가입한 할머니가 전화 상담을 할 때 30분이 지나면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비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그 신을 일부러 넣은 것이다. 무엇이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려는 사회적 풍조를 담았다. 사람의 감정을 무시한 채,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려는 사회적 가치, 그러한 풍조를 넣으려고 했다. 일본에는 가성비, 시간효율성 같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이 외면 받고 있다. 그 소중함을 잊는 것은 아닌가 이야기하고 싶었다.”
Q. 기준을 ‘75세’로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일본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75세이상’을 후기고령자(後期高齡者)라고 부른다. 정부에서 처음 그 용어를 사용했을 때 불쾌하게 느껴졌다. 75세를 기준으로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 같아 불쾌했던 것이다. 아마 시스템을 정비한다면 그에 맞추지 않을까. 신문에 처음 ‘후기고령자’ 용어가 나왔을 때 비인간적이 네이밍이라며 반대의견이 있었다. 지금은 정착되었는지 의문시하는 말은 없다. ‘플랜75’는 점차 익숙해져가는, 마비되어가는 공포를 나타내려고 했다.”
Q. 그리고, 인생을 마감하면서 준비금으로 ‘10만 엔’ 지급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야카와 치에 감독: “당연하다. 천만 엔도 싸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정부가 현실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10만 엔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보너스 식으로, 준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 일본정부는 지원금으로 10만 엔을 뿌린 적이 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둔감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Q. 감독이 되기 전에 어떤 길을 걸었는지. 방송사에서 일했다는데.
▶하야카와 치에 감독: “방송국에서 일했다. 영화, 스포츠, 콘서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와우와우(WOWOW)의 영화부에서 일했다. 외국영화 자막 넣는 일을 10년 동안 했는데, 항상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야간 영화아카데미에 다녔다.”
Q. 단편 <10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감독(기획)을 맡았었다. 이번 영화를 만들 조언을 들은 게 있는지.
▶하야카와 치에 감독: “단편 옴니버스 <십년>의 종합감수를 하셨다. 젊은 감독들 키운다는 취지의 작품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장편 할 때는 그런 조언이 없었다. 각본 쓰면 보여 달라고 했었는데, <브로커> 촬영할 때였다. 바쁘실 것 같아서 따로 부탁드리지 않았다.”
Q. 바이쇼 치에코(倍賞千恵子)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슬프다. 가족도 없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그런 생활을 이어가는가.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일본에서는 수급자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비난하는 여론도 있고. 자기들이 열심히 벌어서 살아야지 하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때문에 심리적 허들이 높다. 그런 혜택을 받으라고 권하지만 자신이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권리임에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Q. 마지막에 바이쇼 치에코가 부르는 노래, 읊조리는 노래가 무엇인가? (앞부분 친구들과 노래방에서도 이 노래를 부른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원래 미국 노래이다. 오래된 노래인데, 바이쇼 치에코도 몰랐던 노래라고 하더라. 바이쇼는 아직도 현역으로 콘서트 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주신다고 한다.”
*** 나오는 노래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발표된 오래된 노래 ‘In the Shade of the Old Apple Tree’이다. ‘사과나무 아래에’(りんごの木の下で)로 번안했다. 바이쇼 치에코는 가수이자, 성우이자, 배우이다.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할머니의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
▶플랜75 (Plan 75) ▶감독: 하야카와 치에 ▶출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카와이 유미, 스테파니 아리안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소지섭, 51k ▶개봉:2024년 2월 7일/15세이상관람가/1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