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숭고하다. 그러나 시간당 손에 쥐게 되는 돈의 무게는 분명 다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동 가치의 이중성에 대해.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훨씬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을 것 같은 프랑스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는 영국 켄 로치의 시각과 프랑스영화 ‘풀타임’의 무거움이 녹아있다. 지난 31일 개봉된 <두 세계 사이에서>는 프랑스 작가 플로랑스 오브나의 르포르타쥬 문학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작가는 위스트르앙 부두의 청소부로 취업하여 그들의 생활을 직접 목격한 후 책을 내놓았다. 줄리엣 비노쉬는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아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작가이기도 한 엠마뉘엘 카레르에게 손을 내밀어 마침내 영화로 완성한 것이다.
이미 노동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책을 낸 마리안(줄리엣 비노슈)은 이번에는 노동자가 되어보기도 한다. 고귀한 작가라는 신분을 숨기고, 돈이 필요한 이혼녀로 가장한 그녀는 직업센터를 통해 청소대행업체에 취업한다. 마땅한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다. 소개소에서 취업의 요령을 배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기본적인 청소방법을 배우고 즉시 투입된다. 일은 힘들고, 고용주는 까다롭다. 마리안의 다음 일자리는 위스트르앙 항구의 여객선 객실청소이다. 새벽에, 혹은 밤늦게 도착한 여객선에 올라 짧은 시간에 객실을 깔끔하게 청소해야한다. 역시 힘든 직업이다. 여객선이란 것이 승객이 하선하고, 승선하기 전 모든 것을 처음으로 리셋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정신없이 화장실 청소, 변기 닦기, 시트 갈기 등을 처리해야한다. 티끌 하나라도 있으면 분명 다음 승선객이 클레임을 걸 것이고, 청소업체엔 제재가 가해질 것이고, 그 노동자는 바로 해고될 것이다. 마리안은 어스름한 부두로 출근하면서, 험한 청소를 하면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주말에 대타를 하면서 같은 노동자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어쩌면 그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지 모른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노트에 하나씩 적어놓는다. 그들도 마리안을 ‘형편이 급해진 노동계층’으로 인식하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마지막, 마리안은 출판회를 열고 북토크 행사를 진행한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와서 축하해주기도 하고, 그동안 자신들을 속였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줄리안 비노쉬가 연기하는 마리안은 전문기자이다. 자신이 관심을 기울인 영역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더 확실히 알기 위해 잠입취재를 감행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불온세력(?)의 불순한 노동현장 위장취업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원작자 플로랑스 오브나는 ‘180일’ 정도 일하고 책을 내놓았다. 현장의 문제점, 혹은 현장노동자의 노고를 체득하는데 180일이면 족할까? 예전에 TV 프로그램 중에 사회 유명인사, 연예인들이 하루 동안 노동현장에서 땀의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모든 노동은 힘들고, 가치 있고, 사람의 일이겠지만 딱 하루, 어쩌면 반나절의 노고로 “힘들었지만 보람찼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위선적인 측면이 있긴 하다. 기자들도 겨울이면 새벽청소부가 되어 노동체험기를 뚝딱 기사로 쓰기도 한다. 노동은 힘들다고. 몰랐단 말인가?
아마도, 플로랑스 오브나가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다른 것일지 모른다. 작가가 집중한 것은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제일 힘들다는 부두까지 흘러가는 부류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곳은 일이 더 힘들고, 감독관은 더 사나우며, 임금은 더 살인적일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3D업종이 될 것이고, 이제는 조선족과 동남아 인력까지 뒤섞인 노동의 현장이 되어버렸으니 ‘작가적 시점’이나 ‘기자적 관점’에서 보면 더 풍성한 이야기를 전할지 모른다.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는 ‘우아한 인텔리겐차’와 ‘고달픈 노동자’들의 세계가 구획이 명확히 나뉘어져 그들만의 인식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리안은 노동자에게 충분히 동정적이다.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엿보인다. 그러고는 180일 만에 돌아가서 책 한 권을 탈고하고는 또 다른 ‘취재감’을 찾아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감정의 골은 크리스텔처럼 “친구인줄 알았는데, 친구가 아녔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마리안은 다음엔 어디로 갈까. 전쟁의 한복판? 난민수용소?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명찰을 잠시 떼고, 역할놀이를 이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아한 친구나, 노동자의 유대라는 말을 꺼내기는 조금 민망하다. 그런 불편함이 남을 수 있는 영화이다. 노동자는 분명 말한다. “또 보자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두 세계 사이에서(Ouistreham/ Between Two Worlds) ▶감독:엠마뉘엘 카레르 ▶출연: 줄리엣 비노쉬, 헬렌 랑베르, 레아 카르네 ▶개봉:2024년 1월 31일/12세이상관람가/103분 ▶수입/배급:디오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