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화수분 같은 금고에는 스타워즈, 픽사, 마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오래전 만들어 놓은 유물들이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 그걸 꺼내어 먼지만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창조 작업을 한다. 그렇게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이 차례로 실사영화로 영화팬들을 찾고 있다. 최신작은 <알라딘>! 1992년 로빈 윌리엄스가 수다쟁이 지니 요정으로 활약했던 애니메이션 <알리딘>의 실사판이 만들어졌다. 고아 알라딘이 자파의 계략으로 모래동굴에 들어갔다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지니가 똬리를 튼 마법램프를 손에 쥐게 되고, 그걸 문질러 공주 ‘자스민’의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물론 마법의 카펫을 타고 “A Whole New World”를 부른다.
‘아라비안 나이트’와 알라딘
널리 알려진 대로 ‘알리딘’은 아랍문학의 보고인 <천일야화>(千一夜話,아라비안 나이트)에 수록된 ‘알라딘과 마법의 램프’가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의 대왕(술탄) 샤리아르와 세헤라자드의 끝나지 않는 ‘밤샘 이야기’를 담은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른바 이슬람 황금시대 페르시아 제국을 중심으로 인도, 이란, 이라크, 이집트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된 사람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구전 설화로 전승되던 이야기가 책자로 엮인 것은 9세기 초로 사료된다. 이후 1704년에 프랑스 안토니오 갈랑이라는 프랑스 외교관에 의해 이들 이야기가 서구권에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다. 워낙 방대한 양이기에 이후 수많은 학자에 의해 번역이 진행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영국 외교관 리처드 버턴의 영역본이다. (우리나라 범우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아라비안 나이트’의 판본도 이 책이다)
리처드 버턴의 책(범우사) 10권에 ‘알라딘’ 이야기가 있다. 첫 구절이 이렇다. “오 인자하신 임금님. 중국 어느 도성에 매우 가난하여 거지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재봉사가 있었습니다. 그 재봉사에게는 알라딘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렇다. 원래 이야기의 배경은 ‘아그라바’도 ‘아바브와’도 아닌 ‘중국’이다. 아마도, 아랍/회교도의 영향이 있었던 신강위구르나 중국 서부지역의 회교도 마을에서 유래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알라딘’ 이야기는 원래 ‘천일야화’의 아랍 원전에는 없는 이야기란다. 안토니오 갈랑이 채록한 수많은 중동이야기 속에 끼어든 ‘근(近)중동’ 이야기인 셈이다. (최근 학자들은 이야기의 기원을 다채롭게 추적하고 있다) 여하튼, ‘알라딘’은 그렇게 마법처럼 세상에 나온 것이다.
알라딘, 1992년과 201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실사영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우려한 것은 로빈 윌리엄스의 아우라를 누가 감히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처음 녹색요정 윌 스미스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알라딘’은 재앙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캐스팅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요즘 할리우드를 휩쓰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였다. 1992년에 당시에도 <알라딘>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아랍을 야만적으로 묘사했다거나,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난이 폭주했었다. 그래서 노래가사를 바꾸기도 했었다.
2019년 실사판 <알라딘>에서는 영악해진 디즈니의 새로운 할리우드 전략을 실감할 수 있다. 주인공은 ‘화이트워싱’이 아닌 다국적 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충분히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며 이 영화에 쏟아질 우려와 공격 포인트를 여유롭게 비켜나간다.
어깨춤이 절로 덩실대게 하는 윌 스미스의 유쾌함과 나오미 스콧(자스민)의 이국적 매력(혹은 아름다움), 그리고 어딘가 아쉬운 듯 하면서 새로운 알라딘의 매력을 살린 메나 마수드 때문에 영화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신나고 재미있다. 단지 자파가 그 옛날 무서움을 안겨주었던 악당이 아니란 게 조금 아쉬울 뿐. 5월 23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