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럽 제로>는 경고와 함께 시작된다. "본 영화에는 섭식행위와 관련해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라고.
위키피디아 설명에 따르면, ‘습식장애’(EATING DISORDERS)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정상적인 섭식 행동으로 정의되는 정신 장애이다. 체중증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신경성 식욕부진증, 많이 먹고(폭식) 먹은 것을 제거하려는 신경성 폭식증이 있다고 한다. 그럼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에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두 번째 영어작품이다.
영화는 한 사립학교를 보여준다. 딱 봐도 학비가 엄청날 것 같은 고급 학교이다. 강당에서 선생님과 예닐곱 명의 학생이 앉아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너는 왜 먹니?”하는 삶의 실존적 질문인 것 같다. 학생들은 나름 ‘먹고 사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환경보호를 의식하며 먹어요. 육류 소비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고 싶어요.”, “체지방을 줄여 체력을 향상시키고 싶어요.”, “운동하기 위해 먹어요.”, “이건 자기통제에 관한 접근 같아요.” 등등. 이 학교의 영양교사인 노백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의식있는 식사법(Conscious Eating)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어야하는지.”에 대해. 보통의 학교영양사라면 골고루, 맛있게,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노백은 다르다. “적게 먹으라"고. 한창 자랄 아이에게 말이다. 그리고 조금씩 가스라이팅의 강도가 세진다. 궁극의 영양법은 '안 먹어도 된다'이다. 먹어야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식품업자들의 배불리기일 뿐이라고. 놀랍게도 아이들이 점점 덜 먹고, 안 먹으면서 노백 선생의 방식을 따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건강을 염려하고, 교장은 학교의 존폐를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노백을 따르는 아이들은 광신도의 수준에 이른다.
영화 <클럽제로>는 아마도, 무언가를 풍자하려고 하는 영화 같다. 고급 사립학교의 운영시스템을 풍자하는 것도, 가진 자들의 미식 문화를 비난하는 것도, 청소년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것도, 사이비 종교인의 사기행각을 파헤치는 것은 아니다. 촌스러움이 느껴지는 노란색 티셔츠와 반바지 유니폼의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학업에 열중하며, 식사 에티켓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구환경을 지키고, 잘못된 식품관련 유통을 정상화 시키고, 어쩌면 건강하게 영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불신의 강을 건너는 순간 그들은 식량 생산은 환경파괴이며, 첨가물은 우리 몸을 파괴하는 것일 뿐이고, 먹어야 산다는 것은 상업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상업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에덴의 동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트램폴린을 자유롭게 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유의지의 승리라는 것이다.
여태 습식장애가 등장하는 영화는 정치적이거나, 성적인 뉘앙스로 진행된다. 하지만, <클럽 제로>는 덜 여문(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종교적 가스라이팅을 진행하는 드라마이다. 영화는 독특하면서도 심각한 주제의식을 미묘한 카메라 워킹으로 이끈다. 장면과 장면은 마르쿠스 바인더의 기묘하고도, 강력한 음악으로 이어진다. 날카로운 쿵쾅거림은 관객의 청각뿐만 아니라 접시에 놓인 음식까지 흔든다.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연기하는 미스 노박은 엉터리 사기꾼 영양사일까. 신심이 느껴지는 기도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 제단(祭壇)에 놓인 것이 예수도, 마리아도, 불상도 아닌 ‘백합의 찻잔 불’이란 것이 더 미스터리하다.
결국, 기숙사에 보낸, 외지에 내보낸 자식들이 뭘 먹고 사는지 부모들이 좀 더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아침을 거르고, 부실한 급식에, 패스트푸드만 우적대며 학원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차라리 굶기는 게 낫다고도 할 수 없을 테니.
▶클럽 제로 (원제:Club Zero) ▶감독:예시카 와시코브스카 ▶출연: 미아 와시코프스카, 시드 바벳 크누드센, 루크 바커, 크세니아 데브리엔드, 엘사 질버스타인, 마티유 데미 ▶수입/배급:판씨네마 ▶개봉:2024년 1월 24일/12세이상관람가/1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