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혹시 핀란드 영화 보신 적 있는지? 아니 핀란드 영화 감독 아는 사람 있는지? 아마 봉준호 감독이 씨네필 시절이었던 ‘노란문’ 시절, 노트에 이름 옮겨 적으면서 “우린, 이런 영화도 봤어!”했음직한 감독의 작품이 있다. 아카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성냥공장 소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같은 작품. 여전히 변치 않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감성과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지난 연말 개봉되어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사랑은 낙엽을 타고>이다. 혼돈과 충격, 미장센과 VFX가 판치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 큰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이렇게 미니멀하고,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 헬싱키의 그야말로 외로운 두 영혼의 ‘천생연분’로맨스이다. 물론, 당신이 예상하는 그런 유로피안 로코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묵배미의 사랑’이나 ‘오아시스’에 가깝다. ‘여자’ 안사(알마 포위스티)는 마트에 근무한다.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한다. 매대 식료품에서 유통기한 지난 상품을 골라 폐기처분한다.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그 헬싱키 하늘 아래 ‘남자’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매일 무거운 해머를 들고 노동을 하고 있다. 이 둘이 곧 운명적으로 만날 것이다. 그런데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 ‘로맨스는 이래!’하고 둘의 이야기에 스며들 것이다. 안사는 유통기한 지난 상품을 들고 나오다가 해고당한다. 남자는 근무시간 몰래 술을 숨겨놓고 먹다가 해고당한다. 안 그래도 외롭고, 불쌍하고, 궁상맞기까지 한 헬싱키의 남녀(청춘도 아니다!)는 술집에서 만나고, 극장에서 데이트하고, 연락처를 건넨다. 잘 될까?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절대 한국식 로코가 아니다. 즉, 재벌3세 남자도, 능력 넘치는 자수성가 스타일의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근사한 빌딩도, 안락한 저택도, 멋진 풍광도, 현실을 잊게 하는 판타지도 없다. 하루하루 삶이 고단하고,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헬싱키 밑바닥 인생의 현실적 관계맺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나는 뉴스가 나온다. TV도 없다, 칙칙 거리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런 뉴스를 들을 뿐이다. 이 영화가 끝날 때 즈음이면, 알코올에서 벗어난 남자와 외로운 여자가 진정으로 사랑으로 맺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정말 만나보기 힘든 로맨스이며, 이 세대 최고의 러브스토리의 완성인 셈이다.
영화를 보면서, 눈이 칙칙(!)해진다면 귀는 오히려 호강하게 된다. IMDB에서 이 영화에 사용된 사운드트랙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에선 영화에 사용된 곡을 다 찾아 들을 수 있다. 핀란드 탱고의 왕 ‘올라비 비르타’의 노래에서부터 시작하여, 묘하게 귀를 간질이는 핀란드 노래를 만끽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일본노래 ‘타케다의 자장가’도 빠져들게 된다. 극장 관람을 권한다. 쓸쓸하게, 밤에 보면 더 좋을 듯.
안사와 홀라파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 돈 다이>라는 좀비물이다. 그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두 사람 뒤로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사제의 일기>와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저렇게 궁상맞고, 없이 살아도, 영화는 폼 나게 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알마 포이스티, 주시 바타넨 ▶2023년 12월 20일/ 12세이상관람가/ 8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