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산 한국인에게는 ‘김대중’에게는 많은 이미지가 있다. 단연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忍冬草)의 삶’으로 대변되며 ‘김영삼’과 함께 ‘양김시대’의 한 축을 형성한 위대한 민주화 지도자였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랄 수 있는 ‘사상적 덧칠’이 된 정치인이다.
지난 6일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1924.1.6~2009.8.18)의 탄생 10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날 경기도 고양시 킨텐스에는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었다.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그를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오늘(10일) 극장에 공개되는 <길위에 김대중>(감독 민환기)이다. 작품은 정치인 김대중의 역정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는 김대중의 육성과 장현성 배우의 내레이션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그의 삶을 쫓아간다.
김대중은 100년 전,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엉뚱하게 나중에 임금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많이 가졌어요.”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DJ의 길이 시작된다. 영특했던 소년 대중은 배를 세 시간 타고 목포로 나와 목포공립상업학교에 수석입학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 된 뒤 목포에서 해운회사를 설립하여 큰돈을 번다. 신문사도 인수하는 등 사업수완을 보여주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DJ의 정계 진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하였지만 선거와 재보선에서 계속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그의 논리정연한 연설과 집념을 주목한 장면이 그를 대변인으로 발탁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결국 DJ는 196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의원으로 당선되지만, 박정희의 516쿠테타로 국회가 해산되며 ‘의원 아닌 의원’이 된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이때부터 가시밭길이었던 그의 정치역정을 풍성한 자료화면과 장현성의 열정적인 내레이션으로 화려하게 재연된다. 김대중은 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에 맞선다. 당내 경선에서 YS를 누르고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납치, 반유신투쟁이 이어진다. 그 유명한 동교동 가택연금도 자료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 1976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재야인사들의 ‘3.1 민주구국선언’과 오랜 자택연금을 감내해야했다. 박정희의 죽음, 그리고 전두환의 등장,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현대사의 순간순간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그리고, 시민들의 6월항쟁은 전두환-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 냈고, 이제 양김대결의 시간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몇 장면을 만나게 된다. 미국 망명시절, 한국을 떠난 777일 동안 그는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150번이 넘는 강연을 했단다. 한국 민주주의 회복, 수호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미국의 정관계, 학계, 언론인들을 만나 열정적으로 민주화를 호소했다. 그는 이 시절에 대해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갔다. 그래서 늘 고단했다.”고 말한다.
김대중은 1980년 광주와 관련 내란을 획책했다며 사형을 선고받는다. 국제적인 압력으로 그는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미국으로 가야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김대중을 설득하는 광경이 비디오로 남아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이때는 이른바 ‘전두환에게 올린 탄원서’로 DJ의 이미지가 덧칠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오랫동안 덧칠된 김대중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빨갱이, 전라도, 거짓말쟁이. 26년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김대중의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미지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길위의 김대중> 마지막 장면은 1987년 9월초, 김대중의 광주행 영상을 보여준다. 7년 만에 사면복권된 김대중은 남도행 열차로 광주로 향한다. ‘망월동 518묘역’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손을 흔든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그 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질 것 같다.
<남산의 부장>, <서울의 봄>, <택시운전수> 등 영화를 통해 한국현대사,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배운 관객에게는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고난과 역경의 일생을 다큐 필름으로 보는 것도 좋은 역사교육의 한 방법일 것이다.
▶길위에 김대중 ▶감독: 민환기 ▶나레이터: 장현성 ▶제작: 명필름, 시네마6411 ▶기획: 김대중평화센터, 김대중추모사업회 ▶제공: 아이오케이컴퍼니, 명필름 ▶후원: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한겨레신문사 ▶2024년 1월 10일 개봉/12세이상관람가/ 1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