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한 편 소개되었다. 이란 영화가 왜 그렇게 서구의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는지 파고든 작품이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천국의 아이들> 등을 소개하며 이름조차 외기 어려웠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마지드 마지디 등 미지의 감독들이 작품들이 영화제를 통해 관객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왜 이 나라 영화에는 아이들만 나오고, 왜 착하거나 가련한 이야기만이 끊임없이 만들어질까. 이유는 이란 당국의 검열과 종교적 이유, 보수적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아쉬가르 파라디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들이 소개되면서 분명해졌다. 왜 이란에서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고, 논란이 되고, ‘화제’가 되는지. 10일(수) 개봉하는 이란 영화 <노 베어스>는 바로 그런 영화이다. “왜?”에 대한 증명서이다.
<노 베어스>를 연출한 자파르 파나히는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상찬 받은 이란 감독이다. 이란 당국의 탄압, 검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란은 그를 연금하고, 가두고, 세상과의 소통을 끊으려고 했다. ‘20년 영화제작 금지’, ‘6년 징역’이 조국 이란이 그에게 준 ‘훈장’이다. 하지만 감독은 몰래 영화를 찍고, 몰래 해외 영화제에 출품 시켰다. 해외영화제에서 그의 작품이 칭송받을수록 이란은 곤란해지고, 감독은 곤경에 빠진다. 체포와 구금, 가택연금, 감금, 그리고 서구 영화인들의 항의등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 국가적 압박이 그의 카메라를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극중 영화감독을 직접 연기한다. ‘반국가적인 영화’를 만들었기에 그는 영화제작과 이란 출국이 금지된다. 그는 이란-튀르키에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자반(Jaban)에 작은 방을 빌려 이곳에서 신작을 찍고 있다. 놀랍게도 ‘원격 디렉팅’을 시도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노트북 영상통화로 촬영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시한다. 그렇게 튀르키에에서는 바흐티아르(박티아르)와 자라 부부가 영화를 찍고 있다. 둘은 가짜 여권을 얻어 이곳을 벗어나는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산골마을 골방에서 뚝뚝 끊기는 인터넷영상으로 디렉팅을 이어가던 자파르 감독은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자 새로운 수를 강구해야한다.
영화 <노 베어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위험한 영화를 찍으려는 감독의 열정과 소명(!)의식을 절절하게 그린다. 튀르키에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여배우도 끔찍한 ‘현실’이 놓여있다. ‘위험한 영화’에 출연한 전력으로 당한 학대와 고문의 기억. 그래서 남편과 함께 망명을 떠나고 싶지만 ‘가짜 여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이야기는 ‘여배우’를 연기한 미나 카바니의 실제상황과 겹친다. 미나 카바니는 2014년 이란 영화 <붉은 장미>에 출연했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누드씬 때문에 모국에서 비난받았고, 결국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 후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노 베어스>는 영화 속 영화가 보여주는 ‘영화적 현실’의 불행보다, 이란 산골마을에서 펼쳐지는 ‘현재적 불행’이 더 비극적이다. 자파르 감독은 영화촬영에 고민하는 것보다는 이곳 주민과의 불화와 오해를 푸는 일이 더 시급하다.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바르지만 도시(테헤란)에서 느낄 수 없는 보수전통의 중압감이 있다. 자파르의 카메라에 찍힌(것으로 사료되는) 마을의 ‘젊은 남녀’의 사진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제목으로 사용된 ‘노 베어스’는 마을 회당 뒷산 입구에 붙어있는 경고문이다. “저 산에 곰이 있으니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그런데, 마을 노인의 이야기가 기가 막히다. “산에는 곰이 없어. 저렇게 해놓으면 사람들이 안 가!” 아마도, 보수주의나 전체주의, 극단적 집단의 구호일 것이다. 실체와는 상관없는 공포의 선언문 말이다.
영화 <노 베어스>는 감독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고스란히 자신의 영화에 담으려고 한다. 그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창작의 자유에 가해지는 억압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여전히 발목을 잡는 구세대적 유산에 대해 뜨겁게 고발하고, 차갑게 반성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건승을 비는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노 베어스 (No Bears) ▷감독: 자파르 파나히 ▷출연: 자파르 파나히(극중 감독), 나세르 하셰미(마을 이장), 바히드 모바세리(간바르), 박티아르 판제이(박티아르), 미나 카바니(자라)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2024년 1월 10일 개봉//106분/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