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추모와 분노가 들끓더니 2023년도 다 지나간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2024년은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다 행복해질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학교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때 독일 영화 한 편이 시선을 끈다. 독일의 학교는 아무 문제 없고, 추모와 분노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지 궁금해진다. 난민이 쏟아지는 유럽의 한 복판, 독일의 한 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권 실추, 교육난망의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내년 3월 열리는 제7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국제장편영화부문에 독일대표로 출품된 영화 <티처스 라운지>이다.
영화는 독일의 한 중등학교(김나지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교실과 체육관, 교무실을 오가며 공부하는 학생, 가르치는 선생님, 그리고 교장과 학교직원들의 일상이 평범하게 흘러간다. 젊고 의욕적인 교사 카를라 노와크는 수학과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수학시간에는 토론과 질문을 통해 ‘수의 개념’을 이해시키려고 하고, 체육시간에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대단한 독일의 훌륭한 교육시스템’에 대해 감탄할 즈음, 영화는 급속하게 ‘현실극장’으로 들어간다.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일어난다. 터키 출신의 학생 ‘알리’가 의심받는다. 카를라는 ‘알리’를 앉혀놓고 심문하는 학교 측의 조치가 마뜩찮다. 그런데,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공간(교무실)에서도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 카를라가 혹시나 하고 살펴본 노트북 카메라에 절도의 현장이 생생하게 찍혀있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게 흘러간다. ‘무관용 정책’을 내세우는 학교당국, ‘증거가 있냐’는 한 쪽의 주장, 그리고 ‘몰카의 정당성’까지 뒤엉켜 난상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난민에 대한 삐딱한 시선과 학교신문(학보)의 인터뷰 기사를 둘러싼 언론자유 문제까지, 어디 하나 가볍지 않은 두통거리와 고통스러운 난제가 앞에 던져진다.
영화를 보면서 오래 전 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아이 또래였을 때다. 체육시간.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돌아왔다. 그 사이 도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월말이면 한 달 치 ‘회수권’을 구매하는지라 아마 피해액이 상당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범인은 빨리 잡혔다. 담임‘선생님’은 체육시간 때 빈 교실을 돌아다닌 ‘학생’ 하나를 특정 짓고는 불러 세우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 아이는 저만치 날아간다. 그리고는 술술 불기 시작한다. 중학생 때 이야기이다. 그때는 그랬다. 적어도 내가 다닌 1980년대 초 D중학교는 말이다.
다시 독일 교실. ‘알리’를 앞에 두고 선생님들이 심문하듯 질문을 던진다. 담임 카를라는 안절부절못한다. 교장과 교사들은 학생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말하고 싶으면 말해. 말 안 해도 돼. 숨길 게 없으면 못할 이유가 없지.”식으로 자발적 동참을 강요한다. 이런 놀라운 ‘대화의 기법’. 영화에서 몇 차례 반복된다. 범인찾기, 자백의 순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업의 과정을 관통하는 민주적 절차이다. 질문에 대답할 때에도, 답안지를 앞에 놓고도, 숙제를 검사할 때에도. ‘귀싸대기의 교육시스템’을 통과한 사람으로서는 독일의 교실에서의 교육법이 신기할 따름이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헤프닝이 아니다. 학생과 선생, 직원들의 공동체인 학교에서의 범죄는 결국 경찰의 개입과 사법적 과정을 거치리라. 그 와중에 카를라 선생님은 학생이 상처받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감독 일커 차탁(İlker Çatak)은 베를린의 터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터키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교직원이 학생들의 지갑을 훔치는 것을 목격했었다고. 그런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동료 각본가 요하네스 덩커와 함께 이 영화를 완성시킨 것이다.
영화 <티처스 라운지>는 독일 김나지움이든, 서울의 초등학교든 학생을 상대로 하는 선생님의 일이란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때때로 ‘호러’영화같이 공포심이 휘몰아칠 때도 있다. ‘타산지석’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선생님, 학부모, 교육부장관, 교육감님들이 한 번 보시고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단, 변호사들은 안 봤으면 한다. 요즘 한국의 학부모들도 교육관이 투철하고, 법에 해박하고, 자기 자식사랑이 넘쳐나기에 학교 선생님들이 여러모로 힘들어졌을 것이다. 참, 카를라 선생님을 연기한 레오니 베네쉬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영화를 몰입하게 만들고, 끝까지 선생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티처스 라운지 (원제:Das Lehrerzimmer/ The Teachers’ Lounge) ▶감독: 일커 차탁 ▶출연: 레오니 베네쉬 ▶2023년 12월 27일 개봉/12세이상관람가/ 99분
[사진=스튜디오 디에이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