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과의 마지막 해전에 나섰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은 임금이 내버리고 도망간 조국의 산하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과 <한산>을 거쳐, 마침내 그 마지막 전투 <노량>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10년의 세월을 이순신과 함께, 바다와 함께, 영화와 함께한 김한민 감독을 만나 ‘영화열정’과 함께 이순신 못지않은 ‘우국충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10년의 세월을 이순신 장군가 함께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한민 감독: “장군님의 워딩을 빌리자면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2021~2022년에는 코로나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갔다. 그때는 영화를 개봉 못 할 것 같았고, 촬영도 못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렇게 찍고, 이야기를 완결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감개무량하다. 마지막 작품 개봉을 앞두고 더 떨리고, 긴장된다. 아쉬움도 남는다. 한 편으로는 홀가분하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안도감도 느낀다.”
Q. 특이하게도 ‘명량’, ‘한산’, ‘노량’에서 각기 다른 세 배우를 이순신으로 캐스팅했다. 특징을 말자하면.
▶김한민 감독: “‘명량’에서는 용장(勇壯)으로서의 이순신을, ‘한산’에서는 지장(智將)으로서의 이순신을, ‘노량’에서는 현장(賢將)으로서의 이순신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 ‘명량’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용기로 상황을 바꾼 용맹한 장수이다. 그에 적합한 최민식 배우를 캐스팅했다. ‘한산’에서는 치밀한 지략과 전략전술을 가지고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는 모멘텀이 된 전투를 지휘한 젊은 이순신으로 박해일을 선택했다. ‘노량’에서는 가장 지혜로우면 미래를 바라보는, 어떻게 이 전쟁을 종결해야할지 거의 유일하게 고민한 이순신을 그린다. 그에 맞는 문무를 겸비한 아우라를 가진 김윤식을 캐스팅한 것이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Q. 최근 흥행돌풍을 일으킨 <서울의 봄>의 GV에서 김성수 감독과 만났다.
▶김한민 감독: “개봉 앞두고 바쁜 와중에 그 영화를 두 번 봤다. 영화에 이순신 동상이 나오더라. 김성수 감독은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저는 그 장면 보고 뭉클했었다. 이태신 수경사령관(정우성)은 반란군으로부터 수도를 지켜야하는 인물로서 이순신을 바라보는 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감독에게 ‘이태신’ 이름은 이순신에서 가져온 것인지 물어봤다. 그런 것은 아닌데 잠재의식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 여하튼 연말에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를 구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서울의 봄> 기세를 이어받아 <노량>도 좋은 성과를 내었으면 한다.”
Q. <활>에서는 만주어를, ‘이순신 삼부작’에서는 배우들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연기를 한다. 최근 <나폴레옹>을 보면 할리우드 배우가 영어로 프랑스 영웅을 연기한다. 관객은 그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 한국영화에서는 한국배우들이 굳이, 꼭 일본어를 구사하는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완벽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김한민 감독: “그 지점을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쪽의 말은 그쪽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주는 것이 영화를 볼 때 오히려 몰입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 현실적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러면 아예 일본 배우와 중국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어떤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몰입감이 깨질 수도 있다. <활>을 할 때 그런 의견이 있었다. 중국어로 하자, 만주족이니 만주어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걸 한국 배우가 하는 게 몰입도가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때는 본능적으로 주장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확신이 든다. 분명 외국의 장수를 일본 배우가 하는 것보다 한국 배우가 하는 게 몰입도가 높을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다.”
Q. 마지막 장면에서 광해가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이순신 영화에서 광해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김한민 감독: “그 대장별과 관련해서는 어떤 역사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명의 수장 진린이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순신에게 ‘저 별은 당신은 의미하는데 당신이 곧 죽을 것 같다. 제갈공명의 기법을 빌어서 하늘에 기도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자 이순신은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데 빈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대답한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의 생사관이 드러난다. 선조실록에는 하늘에서 큰 별이 빛난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 부분을 이순신과 별을 연관시켜보았다. 별빛이 낮에도 환히 빛나는 것을 어떤 메시지, 장군의 대의가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위정자, 그 핵심인 광해 세자가 다시 한 번 되뇌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쿠키 영상을 보고나니 좀 더 의미가 있는 것도 같다. 이순신의 대의를 한 번 더 반복해 주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그러면서 그게 지금 준비하는 드라마 <7년전쟁>을 예고하는 것 같다. 영화는 장르적으로 전쟁 액션극이다. 드라마 <7년전쟁>은 정치외교사적 입장에서 역사를 다룬다. 이순신이 완전한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가 ‘오성과 한음’으로 알고 있는 ‘한음’ 이덕형이 주인공이다.”
김한민 감독
Q. 이순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김한민 감독: “제가 불굴의 의지로 이순신을 천착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10년이 갔다. 각 해전이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중간에 흔들린 적은 없다. ‘노량’은 조금 더 특별했다. 해전 장면이 100분이나 된다. 이순신이 말하려고 한 것을 담고 싶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집요하게 마지막 전투에 임하셨는지. 다들 끝난 전쟁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것이 큰 화두였다. 그 화두에 대한 답을 꼭 얻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노량>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원한 것은 완전한 종결, 완전할 항복이었다. 이건 나의 창조적인 결론은 아니다. 남겨진 어록과 기록을 살펴봤을 때 물씬 풍기는 것을 제가 추출한 것이다. 그 결론을 가지고 ‘노량’을 이야기한다면 장군님 앞에서 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지점을 가지고 100분의 해전을 설계했다. 중간에 힘든 지점이 있었지만 결국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천행이라고 생각한다.”
Q. 이순신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노제 장면 등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김한민 감독: “솔직하게 말하면 그 장면 찍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니 새로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결국 찍은 것은 ‘노량’을 찍어야 하는 의미와 같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면 바로 그 말이었으니. 그 장면을 어디에 배치하는가도 문제였다. 장군을 응원하는 상징으로, 죽음의 시점을 피해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상여 나가는 장면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신이었다. 자막으로 처리해도 충분할 것이라는 충심어린 피드백도 있었다. 그 장면에서 300명 이상이 동원되어 하루 종일 찍어야했다. 하지만 찍어야했다. 3부작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도. 이순신 장군을 온전히 보내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장면과 그 다음 신이 연결이 잘 안되었다. 결국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완성되었다.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 같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Q.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역할로 백윤식을 캐스팅했다.
▶김한민 감독: “시마즈 요시히로는 규슈 사쓰마(薩摩)번의 다이묘이다. 이 지역에서 이후 삿초동맹(薩長同盟)을 거치며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된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노량에서 이순신과 맞선 인물이다. 조선 도공을 가장 많이 끌고 간 인물이기도 하다. 노량에서 죽지 않고 돌아가서 2년 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히데요리 편에서 싸우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유폐된다. 나에겐 ‘시마즈’하면 백색이 떠올랐다. 당시 60대 중후반이었다. 어느 배우가 어울릴까. 하얀 갑옷에 하얀 머리. 그냥 그가 생각났다. ‘화이트 백’. 백윤식 배우였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Q. 마지막 해전, 마지막 부분. 북소리가 지배하는 그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김한민 감독: “그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이 서있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난전(亂戰)의 롱테이크가 필요했다.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사운드 처리가 문제였다. 처음에 비트감 있게, 박진감 있는 음악이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피로도가 심했다. 북소리도 살아나지 않았다. 연출을 잘못한 것인가 위기감도 느꼈다. <노량>은 촬영만큼 사운드설계도 중요했다. 난전 부분에서 신스(신디사이즈) 사운드를 넣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박진감 있는 비트를 채웠는데 아니었다. 서정적인 음악을 넣어 봐도 아니었다. 레퀴엠 같은 클래식도 아니었다. 이순신이 환영 속에 세 장수와 아들 면을 보는 장면, 북소리가 뭉클하게 울리지 않는 것이다. 신스를 깔아보았다. 각 나라의 병사들을 배치하고, 마지막에 장군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데까지. 환영 장면에서 이순신 장군을 순간이동시키고, 사운드를 ‘뮤트’ 시키고, 최대한 절제한 음악과 대화만 리버스로 넣으니 살아나더라. 북소리와 함께. 사운드 설계가 정말 힘들었다. 연출하면서, 후반작업하면서 이렇게 당황해 본 것은 처음이다.”
Q. 애국충정의 인물 이순신을 보자면.
▶김한민 감독: “조선성리학 사회란 게 가장 이상적인 유교적 군자상을 추구하며, 인간의 자기수행과 완성에 노력한 사회였다. 그런 유교성리학을 500년이나 추구한 민족은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의 품성을 그렇게 오래 논한 사회, 그것의 구현이 문인이 아니라 무인 이순신에게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 같다. 이순신의 실천적인 품성은 참 귀한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보자면 이순신의 구국의 영웅이며 또한 조선사회가 추구한 가장 이상적인 군자의 상일 수도 있다. 이순신이란 인물을 역사의 관점에서, 전쟁의 측면에서 보다가 해석할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순신을 통해 대동단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애국과도 관련이 있다.”
Q. 아들 면의 죽음에 대해 조금 특별하게 묘사한다.
▶김한민 감독: “아들 면의 죽음이 이순신의 멘탈을 뒤흔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난중일기>에도 면의 죽음에 대해 자책하는 대목이 있다. 명나라 진린 장군은 아들에 대한 복수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난중일기>에서는 꿈을 꾼 뒤 왜구를 참하는 장면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신묘한 꿈을 많이 꿨다. 면이 죽기 직전 낙마하는 꿈을 꿨고, 원균이 죽을 때에도, 칠천량 해전 전에도 꿈을 꿨다. 장군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고 그런다. 아들에 대한 감정적인 트라우마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끝까지 수행해야한다는 결의를 만들어 간 것이리라. 아들 면의 죽음을 다룰 필요가 있었다.”
김한민 감독
Q. 명량에서 시작하여 한산, 노량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인 한계 돌파는?
▶김한민 감독: “모든 것이 발전했다. <명량>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노량>에서는 가능해졌다. 밤 장면은 <명량>때는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 함대전의 경우도 그렇다. <명량>에서는 한 척이 여러 척과 싸우는 해전이었다. 이번 <노량>에서는 조선의 함대, 일본의 함대, 명나라의 함대가 뒤엉켜 싸운다. <명량>때는 기술적으로도, 자본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이제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조명설계에서부터 싹 달라졌다. 낮 장면과 밤 장면은 1분이며 교체가 가능하다. 짐벌과 짐벌 위에 올리는 배의 안정성도 달라졌다. CG기술도 월등히 나아졌다. 특히 물에 대한 R&D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제 물에서 찍지 않아도 된다. 그런 기술력은 우리팀이 최고일 것이다. 이번 <노량>에서 원 없이 펼쳐보았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인터뷰를 하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한 김한민 감독의 학습이 광범위하고, 심도가 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떠한 질문에 대해서도 이순신의 일화와 난중일기의 기록을 언급했다. 일본전국시대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해박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시작된 명과 왜의 강화회담에 대해서도 ‘조선반도 할지(割地)’론을 언급하며 외교사적 배경을 술술 읊었다.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는 박제상의 ‘부도지’(符都誌)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 가히 역사덕후라고 할 만하다.
“영화 <서울의 봄>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등 시대극 열풍이 부는 것은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서울의 봄>에서 무인, 즉 지금의 군인이 그렇게 비굴하게, 비겁하게 퇴화해 버린 것을 보고 울분이 차올랐을 것이다. <노량>을 보고 그 울분을 푸는 것도 좋은 관람 방법일 것 같다.”고 말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탐구, 역사배우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순신 3부작’의 촬영 후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도 준비 중이고, 임진왜란 7년사를 다룬 드라마 ‘7년전쟁’(가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