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국제장편영화상 최종후보에 올랐을 때 함께 이름을 올린 작품 중에 파키스탄의 <조이랜드>가 있다. 파키스탄 영화로서는 처음 이 부분에 최종후보(10편)에 오른 작품이다. 그 영화가 오늘(13일) 개봉한다. 파키스탄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라 서울의 극장에서 볼 수 있다니! 영화는 파키스탄 북동쪽에 위치한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흐르를 배경으로 한다.
라흐르에 살고 있는 아마눌라는 전형적인 중산층, 서민 집안의 가장이다. 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둘째 하이더르는 백수신세이다. 아내 뭄타즈가 동네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동안 하이더르는 조카들과 놀아주며 소일하고 있다. 방금 형수가 산기를 느껴 병원에 데려다주는데 또 ‘딸’이란다. 네 번 째 손녀! 그런데 하이더르는 그 병원에서 꿈속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눈앞에 선 여자는 온통 피를 뒤집어쓴 상태이다. 얼마 뒤 하이더르는 친구의 소개로 일자리를 하나 얻게 된다. ‘향락업소’에서 춤추는 일이다. 극장의 꽃인 비바가 현란한 춤을 출 때 뒤에서 아기자기한 율동을 펼치는 백댄서이다. 그런데 하이더르는 그곳에서 점점 비바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비바는 ‘트랜스젠더’였다. 이제 지극히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잔뜩 주눅 든 채 살아온 유부남 하이더르는 넘어서는 안 될 선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또 그런 집안에 ‘시집온’ 아내, 뭄타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뭄타즈도 밖에서 일을 하고 싶고, 속에서 어떤 욕망이 끓어오르는데 말이다. 영화 ‘조이랜드’는 흔들리는 상황의 연속이다.
파키스탄 영화 <조이랜드>는 작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서 상영되어 심사위원상과 퀴어팜(Queer Palm)상을 수상했다. ‘LGBTIQ+’ 소재/주제의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다. 올해 칸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이 부분 상을 받았다. 제목으로 쓰인 ‘조이랜드’는 파키스탄 라흐르에 있는 실제 놀이동산 이름이다. 영화에도 나온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놀이공원이 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나라에서는 마치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같다. <조이랜드>는 지극히 보수주의적인 한 집안에서 펼쳐지는 개인들의 고뇌를 담고 있다. 영화는 하이더르의 초라한 백수시절부터, 흔들리는 댄서시절을 거쳐, 잘못된 판단으로 무너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점차 파키스탄의 사람이야기를 전한다. 때로는 남자다움에 대해, 아내의 자세에 대해,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희망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붕괴되고 마는 비극을 전한다. 아마 하이더르의 뒤를 쫓다가 마침내 처음 보는 끝없는 바다에 도착하게 되면, 그제서야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하이더르가 아니라 뭄타즈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 영화는 라흐르의 좁은 집에 함께 사는 3대의 가족이야기를 전하면서 부부간의 신뢰에 대한 실험에 들게 한다. 물론, 그 와중에 남아선호사상이나 퀴어 같은 사이드 스토리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보기 드문 파키스탄 영화이며, 만나보기 힘든 도덕성의 실험극이다.
▶조이랜드 (Joyland) ▶감독: 사임 사디크 ▶출연: 알리 준조(하이더르), 라스티 파루크(뭄타즈), 알리나 칸(비바) 사르왓 길라니(누치) ▶개봉: 2023년12월13일/127분/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