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한국사람에게는 확실히 '역사DNA'란게 깊숙이 박혀 있다. 여기, 잠깐 거시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영화가 있다. 오늘(6일) 개봉하는 김민주 감독의 <교토에서 온 편지>이다. 영화에서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택시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는 혜영(한선화)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부산대교를 보며 “어, 빨간색 아니었나?”라고 말하자 기사가 “아가씨 억수로 오랜만에 오는가보네. 저거 바뀐 지 한참 됐는데..”란다. 서울 방송국에서 일하던 혜영은 짐 싸들고 고향 부산, 영도로 내려온 것이다. 아버지 제사를 준비중이던 엄마(차미경)가 “아이고, 니가 어쩐 일이고?”라면 반긴다. 영도 집에는 엄마와 언니 혜진(한채아), 막내 혜주(송지현)가 산다. 언니는 광복동 가게에서 일하고 있고, 고등학생 혜주는 가족 몰래 춤을 배우고 있다. 서울 올라가서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는 게 소원이다. 오랜만에 자매가 모여, 가족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혜영은 엄마가 깜빡깜빡 기억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결코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 속에서 오래된 편지를 발견한다. 일본 교토에서 온 편지이다. 일본어로 쓰여 있고, 수신자는 하나코(花子)이다. 엄마는 아주아주 오래전, 어릴 때 일본을 떠났고, 이곳 영도에 자리 잡은 뒤 한 번도 일본을 찾지 못했단다. 엄마와는 오래전 편지 연락마저 끊긴 것이다. 혜진, 혜영, 혜주는 각자의 바쁜 삶, 자기들의 꿈을 잠시 멈추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엄마는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고, 언제까지 기억하시려나.
이 영화는 혜영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혜영의 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때 일본에 건너갔으리라. 징용이었던 호구지책이었던 간에. 그곳에서 자리 잡고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딸을 낳은 것이다.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일본)아내를 두고, 어린 딸만 데리고 귀국선에 올랐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는 일본에 못 들어갈 줄을 몰랐을 것이다. 그 딸은 “일본에서 온 거 티내면 절대 안 된다. 쪽발이 피 섞인 거 알면 차별받으니..”라고 단단히 이르는 아버지 말에 따라 입을 꾹 다물고 반백년을 영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이제 다 큰 딸들이 ‘편지’를 앞에 두고 몰랐던,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엄마의 과거’를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 당시의 이야기, 실정을 안다면 영화의 설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 2차 대전 직후, 일본에는 200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 귀국선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전쟁, 한일 국교단절의 영향으로 50만 정도는 일본에 눌러앉았다. 아마 귀국을 앞두고 많은 사연이 펼쳐졌으리라. 일본인과 결혼한 경우에는 특히 복잡했으리라. 혜영의 엄마는 그때 고향을 떠나 단 한 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한 것이고, 엄마(외할머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리라.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를 만든 김민주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에 담았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인이었던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영도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의 삶을 영화로 풀어낸 것이란다.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조총련과 북송’을 다룬 다큐나 최양일 감독의 영화에서 보아왔던 정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살기 위해 만주로,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한국 사람이 어떻게든 돌아오고, 돌아오면서 또 다른 헤어짐이 있고, 그 헤어짐이 세월이 지나면서 피가 묽어지면서 생긴 사정일 것이다.
김민주 감독은 차미경 배우의 화자 이야기에 세 자매의 삶도 녹여 넣는다. 큰 딸은 영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가장의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고 영도에서 발을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그에게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표트로이다. 둘째는 야무진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가 발버둥 쳤지만 결국 내려온다. 셋째의 꿈은 진행형이다. 감독은 영도를 씨줄로, 자매를 날줄로 하여 고향을 떠나고, 돌아오고, 잊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 셈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하나코가 있다. 기억을 하든 못하든 말이다.
▶교토에서 온 편지 ▶감독:김민주 ▶출연: 한선화 차미경 한채아 송지현 ▶제작: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배급:판씨네마 ▶개봉:2023년12월6/12세관람가/102분
[사진=판씨네마]